"저는 국제결혼을 했습니다. 와이프는 그리스인입니다." 내가 말했다.
"외국인과 결혼을 했다라.. 용감한 청년일세." 나이가 지긋한 직장 상사가 말했다.
이 상사는 신기하다거나 특이하다는 게 아니라 왜 용감하다고 표현했을까.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땐 딱히 인상적이지 않아 기억에 남지 않았다. 그런데 외국인과 살다 보니, 전반적인 의사소통은 가능하지만 섬세한 면에서 언어장벽이 있었고 식단과 문화가 달랐으며 생활 패턴이 상이했다. 그제야 나는 그 상사의 말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결혼은 현실이었고, 내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행위다. 그 인생을 걸고 굳이 외국인을 선택했다는 건, 비교적 안정적인 삶을 뒤로하고 현실적인 문제들에 맞설 용기가 필요했다.
나도 사실 서양인보다 동양인(한국인)이 더 좋다. 나는 어려서부터 유별난 적이 없었고, 남들과 차별에 대한 관심에도 딱히 미련이 없었다. 그저 나와 어울리는, 적당히 참한 여자를 만나서 결혼을 했다면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생각은 결혼 후에 처음 들었던 생각이 아니다. 사실 리아와 사귀는 동안에도 해왔던 생각이다. 주위에서 직장 동료들이 장난 삼아 이런 질문을 자주 한다.
"결혼 전으로 돌아가면 지금 와이프랑 결혼할 거야?"
"무조건 결혼하지" 나는 대답했다.
한국인이 더 좋다고 생각하는 나에게서, 왜 이런 대답이 나올까. 내 마음속 작은 목소리에 귀기울여 봤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인종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연스럽게 찾아온 소중한 인연을, 현실적인 조건으로 인해 떨쳐내고 싶지 않았던 것이었다. 현실보단 낭만이 더 좋았다. 리아는 현실적인 조건만 본다면 1등 신붓감이라고 보긴 어려운 면들이 많았다. 어렸을 적에 부모님이 이혼했고, 집이 가난하며, 성인이 돼서도 대학교에 가지 않았다. 외면과 달리 내면이 건강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위험부담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결혼을 선택했다. 8,500km를 극복한 우리의 인연이 무엇보다 아름다웠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