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6개월. 코로나로 인해 하늘길이 막히면서 나와 리아가 실제로 만나지 못했던 기간이다. 지금에야 코로나가 4급 감염병으로 전환됐지만, 다들 알다시피 초기에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코로나가 종식되길 기다린다는 게 그만, 시간이 꽤나 흘러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영영 리아를 만나지 않을 순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혼인 신고를 하여 배우자 비자를 받고, 리아가 한국에 넘어올 계획을 짰다.
남들에게 우리가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던 이야기를 하면 꼭 받는 질문이 있다.
"어떤 계기로 결혼을 결심하게 됐나요?"
"그렇게 오래 만나지 못했는데 관계를 어떻게 유지했나요?"
남들은 떨어져 있던 상황을 걱정했지만, 나는 오히려 그 기간 동안 리아가 보여준 태도로 인해 결혼을 마음먹었다. 리아는 몸이 떨어져 있어도, 단 한 번도 나에 대한 마음이 식은 적이 없었다. 항상 한결같이 나를 사랑해 주고, 보고 싶어 했다.
'이 사람 정도면 결혼을 해도 후회는 없겠다'라고 나는 생각했다.
우리의 상황은 매우 특이했다. 코로나로 인해 리아는 그리스에, 나는 한국에 있었다. 이 시기에 해외에 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고, 직접 만날 수 없는 상황에서 서류상 혼인신고를 해야 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가장 만만한 네이버 검색부터 시작했으나, 국제결혼은 상황이 가지각색이어서 우리 상황에 맞는 매뉴얼이란 없었다. 대사관에도 메일을 주고받아봤지만, 설명이 두리뭉실하고 무엇보다 메일 하나의 답변을 받는 데 일주일 정도는 걸렸다. 이 복잡한 절차를 하나하나 물어보며 언제까지 시간을 낭비할 수가 없었다. 결국 가장 쉬운 방법을 쓰기로 했다. 바로 돈을 쓰는 것이었다. 시내에 있는 행정사무소를 검색해 찾아가기로 했다.
"어서 오세요" 행정사가 밝게 인사를 했다.
나의 상황을 설명하니, 행정사는 여유롭다는 듯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시간은 총 얼마나 걸릴까요?" 내가 물었다.
"혼인신고부터 배우자 비자 발급까지 세 달이면 됩니다" 행정사가 말했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어둠 속의 한 줄기 빛이라고 한다던가. 행정사는 내게 산소요, 절대자였다.
행정사는 우리에게 첫 번째 임무를 주었다. 그리스에서 발급 가능한 '미혼증명서'를 떼오라고 했다. 혼인 신고에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서류라는 것이다. 나는 리아에게 전달했고, 리아는 미혼증명서가 그리스어로 어떻게 명명되는지 확인을 해야 했다. 하지만 역시나 내가 하는 일이 순조로울 리가 없었다. 리아는 아무리 찾아봐도 미혼증명서라는 서류는 없다고 했다. 심지어 변호사를 찾아가 물어봐도 그런 서류는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나는 다시 행정사무소에 찾아가, 리아의 말을 전달하여도 행정사는 일관된 답변뿐이었다. 미혼증명서가 없다면, 모든 일을 진행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가 그렇다고 하니, 별수 있겠는가. 나는 리아에게 조금만 더 잘 찾아보라고 말을 할 뿐,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한 달, 두 달 지나가고 있었다.
"아니, 진짜 그런 서류가 없다니까?" 리아가 소리쳤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서류대행업체에서 말하는 서류인데 없을 리가 없을 거야. 한번만 더 잘 찾아보자" 내가 말했다.
급기야 통화 너머로, 리아의 서글픈 울음소리가 들렸다. 나라고 답답하지 않겠는가. 돈은 돈대로 썼고, 시간은 가고 있고, 진전은 없고, 스트레스는 쌓여갔다.
우리는 마음을 가다듬고 처음부터 차근차근 준비해 보기로 했다. 대사관에 문의를 넣어보고, 하루는 국제결혼을 담당하는 시청 직원을 찾아가 보기도 했다.
"국제결혼을 할 때 필요한 서류가 궁금해서 왔는데요" 내가 말했다.
"상대방의 국적이 어딘가요?" 시청 직원이 내게 물었다.
"그리스입니다.." 시원한 답변이 나오길 기대하며, 사뭇 간절한 느낌을 담아 나는 말했다.
"아.. 그리스는 처음인데.. 잠시만요.." 직원은 요란하게 서랍장을 뒤지더니 두꺼운 책 한 권을 꺼내왔다. 그리고는 가나, 가봉, 가이아나, 감비아.. 목차를 보더니 그리스를 찾았다.
"보통 국제결혼은 미혼증명서가 필요한데, 가끔 해당 서류 양식이 없는 나라들이 있거든요." 직원은 책 중앙쯤 특정 부분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계속 말했다. "그리스 같은 경우는 '결혼허가서'라는 서류로 준비해 주시면 됩니다"
순간 온몸에 번개가 관통해 지나갔다. 미혼증명서를 고집하던 행정사가 틀렸고, 리아가 맞았던 것이었다. 3개월이면 비자발급까지 된다던 절차를, 6개월이 지나도록 첫 계단도 오르지 못했던 나로서는 너무 화가 났다. 당장 행정사무소에 전화를 해, 이 사실을 이야기하니 행정사는 실토하기 시작했다.
"사실 그리스 서류는 처음이었습니다.. 하지만 국제결혼의 서류들은 다 비슷합니다.."
반성의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았고, 따지고 따져 계약금의 100%를 전부 돌려받았다.
우리는 큰 결심을 내렸다. 행정사도 믿을 게 못됐고, 모든 과정을 둘이서 준비해 보리라 생각했다. 준비의 기본은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었다. 눈에 불을 켜고, 대사관과 집요하게 메일을 주고받으며, 인터넷 검색을 통해 필요한 서류 목록을 작성했다. 할일이 너무 많았고 오래 걸렸다(혼인신고를 위한 서류를 준비하는 데 몇 달, 서류를 받고 신청하는 데 한 달, 배우자 비자 서류를 준비하는 데 몇 달, 비자 발급까지 몇 달 등). 이것이 말로만 듣던 사랑의 힘이었던가. 서류대행업체에서도 하지 못했던 업무를,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가 하나부터 열까지 알아보고 준비해서, 마침내 혼인신고와 비자발급까지 무사히 끝낸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이 1년 이상 걸렸고, 현재 리아와 행복하게 한 지붕 아래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