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이 날짜로 결정한 거지?" 내가 말했다.
드디어 리아의 그리스-한국행 비행기를 예약했다. 온라인상에서 만나고 인연이 된 사이지만, 언제까지 안 볼 수는 없었다. 당시 나는 직장인이었고, 리아는 고등학교 졸업 후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이었다. 한국의 경우, 무비자로 최대 90일까지 체류가 가능하여, 가능한 한 알차게 꽉 채워 비행기 일정을 잡았다. 미래 계획이 불투명했던 우리에게, 만남의 기약이 생기니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너무 기대를 한 걸까. 시간이 고장 났는지, 도무지 흐를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하루는 느리게 가지만 일주일은 빨리 가고, 한 달은 느리게 가지만, 일 년은 빨리 간다는 말을 들어봤는가. 영영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만남의 날까지 드디어 하루가 남았다. 공교롭게도 일정 조율을 실패하여, 야간 근무 후 인천국제공항으로 올라가야 했다. 근무를 마친 아침, 샤워를 하고 만발의 준비를 했다. 적당히 깔끔한 옷을 고르고, 리아의 선물(한겨울이었으므로 롱패딩을 준비했다)도 챙겼다.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 공항철도를 이용해 인천국제공항으로 갔다. 해외여행을 간 적이 없었던 나는, 인천국제공항이 너무 넓고 복잡했다. 리아를 본다고 생각하니 떨리기 시작했고,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입맛이 영 없었다. 어느덧 시계는 저녁 6시를 가리켰고 리아가 입국할 시간이 됐다. TV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게이트 앞에서 팻말을 들고 환영하는 모습을 상상했으나 현실과는 괴리가 있었다. 한 시간을 기다려도 리아는 나오지 않았고, 지난 야간 근무로 인해 피로에게 지배당하고 말았다.
'지금은 너무 중요한 순간인데..' 생각하며 참아보려 했으나 나부터 살고 봐야 했다. 결국 빈 의자를 찾아, 게이트와 멀어졌고 쉬고 있던 중 핸드폰이 울렸다.
'나 이제 나왔는데 어딨어?' 리아의 카카오톡이 왔다.
'하늘도 무심하셔라.. 어떻게 잠시 비운 틈에 리아가 나와버리다니..' 나는 생각했다.
게이트 만남의 상상은 이렇게 산산조각 나 버렸다. 결국 특정 장소에서 만나기로 하고, 두 눈을 부릅뜨고 리아를 찾기 시작했다. 갑자기 피로가 사라지고 심장박동이 쿵쾅쿵쾅 느껴졌다. 리아가 나와 같은 장소에 있다는 것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저멀리 수많은 사람들 틈에서 리아가 보였고, 우린 눈을 마주쳤다. 멋쩍은 미소와 함께 우리의 첫 만남의 장소는 인천국제공항이 되었다. 그날은 우리가 온라인상으로 사귄 지 75일이 되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