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후지산, 현대미술관, 이태원, 그리고 미국 유타
이혼이 흠이 아닌 것은 당연하고, 인생의 여러 선택 중 하나라는데 동의한다.
과거에는 이혼이 곧 낙인이었고, 대기업에서 돌싱은 임원이 될 수 없던 시절도 있었다는데
자기 가정도 평안하도록 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직원을 잘 관리할 수 있겠냐는 시각이었다.
당시와 비교하면 '배우자와 억지로 살면서 불행'한 것보다
홀로 살며, 혹은 새 배우자와 행복한 인생을 사는 게 더 나은 건 분명해 보인다.
다만 연예인들의 이혼 소식을 자주 접하고,
우스갯소리로 돌싱 프로그램이 이렇게 많아질 줄 알았으면 '나도 이혼할 걸 그랬다'는
일부 연예인들의 농담이 농담으로만은 안 들린다.
과장해 말하자면 TV만 틀면 '이혼 찬가'가 들려오는 상황에서
반대로 우리는 어떻게 한 배우자와 평생을 함께 할 수 있을까.
오래 연애를 하고 심지어 동거를 한 뒤 결혼하는 지인들에게 물어도
내 배우자의 정확한 성격은 모른 채 결혼했고 경제관념은 더더욱 알수 없으며
외모는 시간이 갈수록 변하고 심지어 건강한지는 자신도 모른다.
쉰이 다 된 동창들이 모였을 때 물었더니
사랑은 젊은 날 한 순간의 열병일 수 있고
종족 번식을 위한 찰나의 본능일 수 있으며
부모로부터 독립할 가장 효과적이고 법적 도피방법 일수도 있단다.
뒤를 돌아보면
부산으로 도망친 애순이와 관식이의 풋사랑 같은 때도 있었고
세상 시름 다 짊어진 심각한 사랑을 하던 때도 있었으며
열이 40도까지 오른 아이 앞에서 우리가 대신 아팠으면 하며 함께 눈물 훔치던 때도 있었다.
여전히 배우자의 얼굴에서 새파랗던 시절 아름다움을 보냐고 묻는다면
중년의 얼굴에도 언뜻 언뜻 처음으로 손을 잡고 걷던 옆모습이 비치고
퇴근하고 앉아 과자 안주와 맥주 한 잔에 행복했던 웃음이 비치고
또 순간 순간 결혼식장 주례 선생님 앞에서 수줍게 고개를 숙이고 있던 얼굴이 보이니
아마도 7080이 되어서도 비슷할테다.
혹자는 힘든 시간을 같이 했으니 의리로 산다고 하고,
옛말에 糟糠之妻(조강지처/지게미와 쌀겨로 끼니를 이을 때의 아내)라 했으니
나 역시 조강지부(힘들 때는 같이 한 남편)로 함께 하며 서로 이뻐하면 될 일이다.
또 사람은 순간 순간 변화무쌍하니 사랑도 나이 때나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으로 부부 곁에 머문다.
두려운 건 함께 고생해 일군 것들을 함께 누리지 못할까 하는 걱정이다.
40대 중반에 아이를 따라 화실을 다니며 부인을 그려봤다.
정확하고 깨끗한 사진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많은 감정을 칠해두고 싶었다.
사랑은 오래 함께 한 시간이고 현재이며 오래 함께 할 미래이고,
본질은 같이나 겉모습은 각양각색이니
부부가 오래 함께 살수 있는 이유인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