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 워싱턴 시간여행
높이 170미터에 이르는 화강암 오벨리스크인 워싱턴 기념탑(Washington Monument), 링컨 기념관, 백악관 등 워싱턴DC에 오면 미국을 대표하는 각종 상징물과 만나게 된다.
지하철을 타고 백악관에 갈려면 메트로(Metro) 오렌지 라인 '맥퍼슨 스퀘어 역'에 내리면 된다.
그런데 지하철에서 내려 지상으로 올라오는 에스컬레이터 끝에서 맞닥뜨리기 쉬운 건 바로 홈리스, 노숙자들이다. 백악관 가는 길을 알려주는 화살표와 그 아래에서 쉬고 있는 노숙자의 모습은 묘한 대조를 이룬다.
차를 타고 워싱턴 DC에 갈 때도 마찬가지다.
특히 출퇴근시간대나 차가 밀릴 때면 팻말을 들고 구걸하는 노숙자들의 모습을 심심찮게 찾아 볼 수 있다. 한 퇴역군인 출신인 노숙자는 자신의 생일을 축하해 달라며 사람들의 온정을 호소하고 있다.
미국에서 노숙자 문제는 오래된 사회문제이다. 가난 구제는 나랏님도 하지 못한다는 옛말이 맞는 것일까 ?
미국의 한 노숙자 지원 단체(National Alliance to End Homelessness)의 조사 결과 미국의 노숙자 수는 2005년 현재 약 75만 명에 이른다. 지난 96년의 미국 노숙자 추정치가 45만명에서 80만명 수준이었다고 하니 10년 동안에 노숙자가 증가했거나 아니면 적어도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 전체 인구가 2억 9천 만 명이니까 노숙자는 전체 인구에서 약 0.3%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노숙자가 가장 많은 곳은 캘리포니아 주로 약 17 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인구 비율로 따질 경우 워싱턴 DC의 노숙자 비율이 미국 내에서 가장 높다는 거다.
이 조사에서는 워싱턴 DC의 노숙자는 약 5천 6백 명이라고 밝히고 있는데 이는 워싱턴 DC 전체 인구 57만명의 1%에 해당하는 수치다. 미국 전체 평균을 훨씬 웃돈다.
노숙자가 가장 많다는 캘리포니아 주의 경우도 전체 인구 3천6백 만 명 가운데 노숙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약 0.5%가 조금 못된다.
이처럼 워싱턴 DC의 노숙자 비율이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한 교회에서 운영하는 Food Bank에서 자원 봉사하는 마이클 바우드(Michael Baud)씨는 이렇게 분석했다.
“노숙자들이 살기에 좋은 조건이 있다. 날씨가 온화하던지 아니면 쉽게 먹을 거리를 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있어야 한다. 기후가 좋은 캘리포니아 주에 노숙자가 많이 몰리는 것은 크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반면 워싱턴 DC는 미국의 수도이다. 그만큼 NGO와 각종 자선 단체들이 많다. 노숙자들이 이 단체들로부터 쉽게 음식을 구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워싱턴 DC 당국 차원에서도 각종 쉼터(Shelter)를 만드는 등 노숙자 정책에 신경을 기울이고 있다. 이 같은 이유 때문에 워싱턴 DC에 노숙자가 많은 거라고 본다.”
이런 이유 때문이라면 워싱턴DC에서 노숙자를 완전히 구제하기란 매우 힘들 것 같다. 노숙자들을 위한 쉼터와 음식 제공이 오히려 더 많은 노숙자를 불러오는 결과를 가져 올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먹을 게 없는 노숙자에게 음식을 제공하지만 이 선행이 오히려 노숙자의 자립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안타까운 역설이 언제쯤 통하지 않게 될까? ///T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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