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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욱 Jun 03. 2024

18화. 줄서기 대행과 피케팅 아웃소싱

@ 2007 워싱턴 시간여행

2007년 7월 19일 새벽 5시.


대학원생 마이클은 미 국회 의사당의 한 청문회장 앞으로 출근했다. 자신이 속한 인력알선업체 근무자와 업무 교대를 하기 위해서다.


그가 할 일은 청문회장 앞에 늘어선 줄의 한 자리를 지키는 것, 이른바 ‘라인 스탠딩(Line-Standing)’ 혹은 ‘라인 홀딩(Line-Holding)’이다.


“앞으로 4시간 동안 내가 이 자리에서 책을 보든, 잠을 자든, 누구도 간섭하지 않습니다. 이 자리만 지키면 돼요.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도 않죠. 이렇게 해서 받는 돈이 한 시간에 17달러니까 벌이도 괜찮은 편입니다.”

 

오전 9시, 청문회 시작 직전 모습을 드러낸 인력알선업체 매니저에게 그 자리를 넘기면 ‘라인 스탠더(Line Stander)’로서의 임무는 끝난다. 매니저는 다시 자기 회사와 계약을 맺은 로비스트에게 그 자리를 넘긴다.    

미 의회 내에 ‘라인 스탠딩(Line Standing)’이라는 것과 이를 대행하는 업체가 본격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중반부터다. 로비스트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기 시작한 것과 때를 같이한다고 한다.      


미국 의회에서는 상하원을 가리지 않고 각종 청문회가 수시로 열린다.


청문회는 이익단체를 대변하는 로비스트나 변호사들이 정책결정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의원이나 보좌관, 정부 관리를 만나거나, 하다못해 눈도장이라도 찍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공간이라고 한다.       


그런데 청문회장의 공간이 매우 제한적이다. 의원과 보좌관, 정부 관리, 취재기자들에게 제공되는 자리를 제외하면 일반인들에게 공급되는 자리는 매우 적다.  


그래서 일반인들에겐 대개 선착순으로 자리를 배분하는 데 청문회장의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로비스트나 변호사들이 인력알선업체와 라인 스탠딩에 관한 계약을 맺었고 그래서 생겨난 게 바로 ‘라인 스탠더’ 라는 직종이다.      


 ‘라인 스탠더’의 탄생으로 아르바이트를 원하는 대학원생이나 파트 타임 고용원, 오토바이 배달원에 노숙자까지 적지 않은 돈을 벌 수 있게 됐다고 한다. 또 라인 스탠딩 업체 또한 꽤 괜찮은 수익을 올린다고 한다.  


라인 스탠딩 업체는 시간당 3-40달러 정도를 로비스트들로부터 받아 60% 정도는 자신들이 챙기고 40% 가량을 라인 스탠더에게 지불한다고 한다. 


그런데 주요 청문회의 경우는 적어도 50시간이나 많게는 72시간 전부터 줄을 서야 된다고 하니 청문회 한 건 당, 수 천 달러의 돈이 오고 간다는 얘기다.  물론 로비스트들도  라인스탠딩 업체 덕분에 줄서기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돼 좋다고 한다.     


‘라인 스탠더’ 들이 밤에도 줄을 서야 할 경우엔 침낭이나 텐트 같은 걸 가지고 와서 의사당 밖에서 노숙한다. 밤에는 의사당 건물 밖으로 나와야 하기 때문이라고. 이럴 경우 건물 내에서의 순서를 기록한 리스트를 만들어 공유한다.


다음날 새벽 그 순서대로 줄을 서는 데 만약 새벽 시간 의사당 문을 열 때 곧바로 나타나지 않으면 리스트에서 삭제된다고 한다.


밤새 줄을 서는 모습은 우리에게도 익숙하지만 미국 의사당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게, 그것도 알선 업체까지 생겨나 돈을 주고받으며 줄서기를 대행한다는 게 재미있다.


돈이 작동하는 미국 정치 과정의 또 다른 단면인 것 같다.      

‘라인 스탠더’가 최저 임금보다 많은 돈을 번다는 데, 이와 유사한 걸로 ‘피케팅 아웃소싱’도 있다.      


노조원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알리는 수단 중의 하나가 피케팅(Picketing)이다.


그런데 미국의 한 ‘목수 노조’가 2007년 7월 23일 노조원이 아닌 일반인을 고용해 워싱턴 DC 도심에서 피케팅을 벌였다. 노조 관계자는 “노조원들이 일이 바쁘고 작업 현장을 떠날 수 없어 노조원 대신 다른 사람을 고용해 피케팅을 벌였다”고 한다.      


피케팅에 고용된 사람들은 노숙자이거나, 일용직 노동자, 학생이었다고 워싱턴 포스트 신문이 전하고 있다.

한때 노숙자였던 한 사람은 ‘대리 피케팅’을 시작으로 돈을 모으기 시작해 지금은 어엿한 직장인이 됐다고 이 신문은 소개하고 있다.


노조가 자신들의 주장을 알리기 위해 노조원이 아닌 사람을 고용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에 대한 논란도 있겠지만 더 재미있는 건 미국이라는 사회가 이렇게도 작동하고 있다는 거다.  ///T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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