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욱 Jun 04. 2024

19화. 미국 교포들의 향수와 소외

@ 2007 워싱턴 시간여행

미국 동부의 한 한국 교포 집.  


60대 초반의 남편이 갑자기 심장마비를 일으키자 50대 후반의 부인이 긴급 전화를 걸어 비상상황임을 알리려 했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전화는 걸리지 않았고 결국 이웃의 도움으로 겨우 응급차량을 부를 수 있었다.


비상 전화가 걸리지 않은 이유가 뭘까? 부인이 119를 계속 돌린 것이었다. 미국에서의 비상 전화는 911인데도 말이다.


평소 한국 TV 연속극을 즐겨보던 이 부인이 급박한 상황에 처하자 자기도 모르게 119를 돌렸다는 거다. 미국에 살면서도 한국 연속극 때문에 순간 착각한 것이다.    


2007년 추수감사절을 맞아 미국에 정착한 지 20년에서 많게는 40년이 넘은 교포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는데 그때 들은 이야기다.


한국 TV 연속극은 중독성이 매우 높다. 타국에 나와 있는 교포들에게는 더 할 것이다.      


그 날 파티에도 단연 한국 TV 연속극이 제일의 화젯거리였다. 한국 지상파의 드라마들은 교포사회에서도 인기가 높아 빼놓지 않고 본다고 했다.


다만 한국에서 방영된 지 적어도 한 달 이상 지난 시점에야 미국 내 한인 케이블등으로 볼 수 있다. 이 시차를 참지 못하는 열성파는 한국의 친척에게 전화를 걸어 미리 줄거리를 파악하기도 한단다.

미 뉴욕 코리아타운 모습 (출처:위키피디아)

교회에서도 웃지 못 할 일이 종종 발생한다.


한국 TV 드라마 속의 악역을 두고 교민들이 교회에서 이런저런 나쁜 평을 했다고 한다. 워낙 인기 드라마였던 탓에 거의 모든 교민들이 자연스럽게 한마디씩 거들었는데, 드라마 속 가공 인물인 줄 몰랐던 교회 목사가 이 상황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였다고 한다.


모든 사람이 비난할 정도면 심각하다고 판단한 목사님이 설교 시간에 특별히 그 사람을 위해 기도까지 한 것인다. 물론 목사님은  해당 인물이 드라마 속 인물이 아닌 실존인물로 알았다.


이렇듯 한국 연속극은 교민사회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생활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그 날 만난 한 60대 교포는 ‘미국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한국 드라마를 멀리해야 한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었지만 세월이 지나니까 그게 변하더라’ 라고 털어놓았다.      

미 워싱턴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비

왜 그럴까?


80년대 중반 미국에 정착해 두 아들을 훌륭하게 키워내고 잘 살고 있는 50대 후반 교포의 말이 그 해답이다.     

“처음에 미국 와서 자리 잡을 땐 바쁘니까 잘 모른다. 하지만 어느 정도 살 만해 지면 고국에 대한 궁금증이 인다. 서울은 어떻게 변했을까? 거리 모습은?  사람들 사는 모습은? 아파트는? 이런 게 궁금해지니까 자연 한국 연속극에 눈이 가게 되더라.


고국에 대한 향수이지. 한국 연속극을 보면 서울 도심 속 빌딩들, 각종 간판들, 사람과 차들 지나가는 모습 이런 것들이 한 눈에 들어오고 그러면 궁금증도 많이 해소돼.     


그런데 말이야 이런 향수는 역으로 말하면 미국 사회에서의 소외를 뜻하기도 해. 


애들도 성장해 어른이 됐고, 어느 정도 살만해졌는데, 여가 시간에 따로 할 만한 일이 없어. 뮤지컬 보는 것도 하루 이틀이고 그렇다고 미국 사람들과 무슨, 무슨 파티를 통해 어울리기는 것도 한계가 있지.  


미국 주류 사회나 문화에 동화되기가 이민 1세대에겐 쉽지가 않아. 나름대로 미국에서 성공했다고 해도 말이야, 그러니 자연스럽게 한국 연속극, 한국 뉴스에 관심이 갈 수 밖에 없는 거지”     


‘향수와 소외’  미국 내 한인 사회에서 한국 연속극이 중독성 있게 파고드는 이유다.  ///TOK///   


이전 19화 18화. 줄서기 대행과 피케팅 아웃소싱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