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생활을 하면서 장성한 자녀들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오는 주제가 바로 공부와 진로 이야기다.
주로 10대 중, 후반부터 20대 중반 정도의 자녀를 둔 직원들 사이에 나오는 이야기들인데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 우연히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들은 서로의 아이들이 어느 정도의 대학을 가며 어디에 취업을 할지 등에 대한 이야기를 자녀에 대한 푸념과 섞으며 마구 쏟아낸다.
특히 대기업에 다니고, 교수가 되어 있으며, 의사, 판검사가 된 자녀분을 가진 윗분들은 또 얼마나 많은 지 그들이 하는 자식에 대한 자랑을 듣고 나면 귀가 피곤해질 지경이다.
나는 그때 문득 내 아버지를 떠올렸다.
아버지 또한 자기 직장 내에서 얼마나 자식 자랑을 하고 싶었을까?
하지만 아마 그와 관련한 이야기들이 나올 때마다 침묵을 일관했을 것이다.
나는 공부를 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니, 아버지의 기대에 못 미쳤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학생들을 가르치시는 교사셨다.
그렇기에 교사의 자식들은 공부를 잘할 것이라는 고정관념 속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특히 수학을 가르치셨기에 수학은 무조건 잘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으셨다.
그리고 나는 그런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아버지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런 기대가 내겐 압박으로 다가왔고, 기대를 채우지 못하면 실패한 인생이라는 생각에 두려운 마음이 커졌다.
아버지께 들을 질책, 어머니와 할머니께서 하실 실망, 주변 친척들의 눈초리 등 예상되는 시나리오가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뜻대로 공부는 되지 않았다.
중학교 때까지는 어느 정도 성적을 유지했지만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성적은 끝없이 추락했다.
자존감이 떨어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아버지의 기대에 미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한 나를 자책했다.
문제는 자책만 하고 공부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악착같이 공부를 해야 했지만, 나는 회피를 선택했고, 그 결과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성적표를 감추는 범행 아닌 범행을 해야 했다.
이는 나와 가족을 숨길 수는 있었지만 내 미래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나는 기대치가 높았던 아버지가 원망스럽다.
만약 내게 기대치가 높지 않았더라면 그때보다 공부를 잘했을지도 모른다.
눈치와 압박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공부했을 테니까!
나의 성적은 아버지의 기대치와 반비례했다!
인생에 감성을 더하다~!
감성부산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