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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잘 된 일이다.

by 감성부산댁

극심한 취업난, 특출 난 재능도 든든한 가정배경도 없던 내게는 주어진 길이 많지 않았다.

오히려 이미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타인이 정해준 길에 접어들었다.


나는 시험을 대학교 4학년때부터 준비했다.

마침 나와 비슷한 길을 가려는 친구들이 있어 함께 공부를 시작했다.

학교 도서관에서 주로 공부를 했으며 시험 기간에는 학과 공부와 병행하며 시험을 준비했다.

고등학교 때 하던 과목들이지만 공무원 시험은 또 다른 유형이기에 준비하는 것이 마냥 쉽지는 않았다.

게다가 고등학교 시절 워낙에 공부를 하지 않아 남들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필요로 했다.


그럼에도 시험 준비를 선택한 것을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적어도 아버지의 눈치는 보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고 하면 모든 것이 용인되었다.

명절 때 친척들을 뵙는 일도, 각종 가족 행사 일에도 열외가 허용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삶에 큰 비중을 차지하던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었지만 적어도 나를 키워주셨다.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큰 역할을 하셨는데 나의 공무원 합격 소식은 듣지 못하고 눈을 감으셨다.


그때 나의 기분은 슬프지 않았다.

오히려 슬픔이 너무 컸기에 울음조차 나오지 않은 것이었다.

할머니의 영정사진을 들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다짐했다.

'할머니 앞에 반드시 당당한 손자가 되어 돌아오겠다!'

'지금의 극한 슬픔을 잊지 않겠다!'


하지만 나는 시험 준비 첫 해에는 합격하지 못했다.

공무원 시험공부와 학과 공부를 병행하느라 한 방향으로 집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고, 아버지를 위해, 그리고 돌아가신 할머니를 위해 이를 악물었다.


곧 아버지 퇴직이 얼마 안 남은 시점에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졸업과 동시에 학원에 등록했고 오로지 공무원 시험에만 올인하여

마침내 합격하였다.

큰 기쁨보다는 후련함, 안도, 그리고 이제 아버지로부터 인정을 받겠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어쩌면 그때의 상황은 내게 잘 된 일일 지도 모른다.


인생에 감성을 더하다~!

감성부산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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