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프로그램에서 지랄 같은 끝맺음을 하고 선배들의 소개로 새롭게 출근하게 된 곳은 목동에 위치한 또 다른 외주 제작사였다. 이 제작사에서는 기존에 있던 프로그램이 아닌 새로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었는데 종편채널 JTBC 방송국 개국의 포문을 함께 열어갈 새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혹시나 종편채널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간략히 설명하면 뉴스, 드라마, 예능, 다큐 등 장르의 제한 없이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지상파 3사를 제외한 모든 채널들은 특정 장르의 프로그램만 만들 수가 있었다. 하지만 ‘종합편성채널’ 일명 종편채널이 등장하며 지상파 3 사처럼 장르의 제한이 없는 지상파 3사와 같은 채널이 새롭게 더 추가되는 것이다.
종편채널이 생기니마니 말들이 많았을 당시 종편채널의 개국을 두고서 갑론을박이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간단히 이야기하면 지상파 3사와 비견될 수 있는 채널이 더 추가되면 시청자들의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방송계 일자리 창출의 긍정적인 효과와 함께 채널들이 편향된 정치색을 시청자들에게 주입시킬 수도 있지 않냐는 우려였다.
이보다 약 1~2년 전부터 종편채널의 등장에 대한 예고는 무수히 많았지만 실제로 언제 개국할지에 대해서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이 올해 초에 개국한다고 하더라, 내년이라고 하더라, 무기한 지연되었다고 하더라 등의 ‘카더라 통신’만 만연해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내부 사람들이야 정확한 시점에 대해 미리 알았겠지만 정확한 정보가 흘러 다니지는 않았었다.) 다만 종편채널들이 잇따라 개국을 하게 되면 적어도 작가들의 일자리가 넘쳐흘러 바야흐로 방송계의 전성기가 찾아올 거라는 기대감만큼은 모두 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나의 두 번째 프로그램은 이미 호시절이 지나고 사양길을 걷고 있던 <싸이월드>에서 다시 한번 재기를 꿈꾸며 과감하게 투자를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간략한 기획의도와 구성을 짚고 넘어가자면 평범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사연을 받아서 연예인이 찾아가 그들을 응원하고 특별한 하루를 만들어주는 몰래카메라 형식의 야외 구성물이었다. <싸이월드>에서는 이 사연을 자체 포털을 통해서 신청하게 만들어서 자연스러운 유입을 유도했었다.
이 당시 유행했던 것들 중 하나가 ‘플래시몹’이었는데 이 프로그램에서 사연 신청자를 몰래 찾아가 ‘플래시몹’으로 놀라게 해주고 감동을 선사하고자 했었다. 이전 프로그램에서 너무 올드한 MC와 올드한 게스트들만 만나다가 드디어 TV에서 자주 보던 잘 나가는 예능인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생각에 설렘이 가득했다.
하지만 설렘과 함께 토크쇼와는 아예 다른 구성의 프로그램에서 일을 시작해야 되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야외 버라이어티에 가까운 프로그램을 처음 접하게 된 나는 일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만 했는데 과연 내가 또 새로운 프로그램과 새로운 작가들, 피디들을 만나서 잘 적응할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물론 여기서도 나는 여전히 막내 작가였다.
긴장된 마음으로 첫 출근을 했고 긴장했던 것과는 다르게 너무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작가 선배들과 상식적인 피디들이 자리 잡고 있었고 나 역시 큰 탈 없이 분위기를 맞춰가며 금세 새 프로그램에 적응을 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