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기에 나와 온전한 평일을 공유하게 된 딸아이는 엄마가 그동안 매일 책만 보고 영화를 보는 줄 알았다고 말하며 하루 종일 종종거리며 다니는 나에게 '콩쥐'라는 별명을 지어 주었다. 작은 키로 커다란 빨래 바구니를 들고 거실을 오가는 모습이 콩쥐를 닮았다나? 해피 엔딩으로 끝나기는 하지만 구박받고 일만 하는 콩쥐의 이미지가 마음에 들지 않아 항의하는 나에게 이번에는 '요정'이라는 별명을 붙여 준다. 작은 내가 지나가고 나면 순식간에 깨끗해진다고.
예쁜 녀석.
작다라는 말이 들어가기는 하지만 요정이라는 말에 기분이 좋아진다. '예쁜 말을 하는 놈에게 떡 하나 더 준다'라는 속담이 있던가? 없다면 하나 만들어져야 한다. 이렇게 사탕발림으로 자기 일을 더 떠넘기려는 수작임을 뻔히 알면서도 기분이 좋아진다. 예쁜 말을 하는 녀석에게 더 잘해주고 싶다.
만약 이 요정이 반짝반짝 날개 달린 요정이 아니라 해리 포터의 도비라면 나는 바로 외치리라.
I am free~~~
다 놓아 버릴 것이야.
부엌에서 가까운 곳은 뒷베란다이지만 다소 좁은 편이라 앞베란다에 드나들 일이 많다. 베란다로 나가려면 커다란 TV 앞을 지나쳐 간다. 문제는 소파에 앉아 한창 TV를 보고 있는 가족들이 있으면 괜히 미안해진다. 그러면 '나 지나간다.'라고 말하고 쌩하고 지나쳤다.
그러다,
어느 날,
생각해 본다.
아니! 내가! 노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일하는데!
생쥐처럼
쌩하고 다니다니!
그래서 뻔뻔해지기로 마음을 먹는다.
우아하게 뻔뻔해지기로 결심한다.
오른손에 일단 음식물 쓰레기나 재활용 쓰레기 같은 것들을 든다.
허리를 꼿꼿이 세운다.
몸은 베란다로 향하고 고개만 소파 쪽 가족들을 향한다.
미스코리아 미소를 장착하고 왼손을 들어 올리고 부드럽게 흔들며 천천히 지나간다.
'나는 미스코리아다~'
베란다에서 다시 돌아올 때도 방향만 바꾼다.
'더워서 정수리에 노비 스타일로 묶어 놓은 똥 머리는 왕관이다~'
마치 옛이야기의 공주가 백성들에게 손을 흔드는 것처럼 인자한 미소를 띠고 손을 흔들어 준다.
어제도 매미가 베란다 방범창에 붙어 울고 있었다. 매미가 땅 속에서 5년을 버티고 여름에 나와서 2주밖에 못 산다고 하길래 내가 너그러운 마음으로 봐주려고 했는데 방범창에 붙어 울어 대는 녀석은 견딜 수가 없다.
폭탄이 터지기 10초 전의 긴급한 상황처럼 그 울음소리로 온 집 안을 흔들며 영화 속의 긴박한 장면을 연출한다. 그래서 부직포 막대 걸레를 들고 우아하게 출동해서 방충망을 두드려 매미를 내쫓고 다시 돌아왔다.
하루에도 몇 번씩 미스코리아처럼 걷고 손을 흔든다. 참으로 아쉽게도 이제 미스가 아니라 미스코리아에 못 나간다. 이 글을 읽으시는 많은 미스들은 이렇게 집에서 많은 연습을 하시고 미스코리아에 나가보시기를 추천을 해 본다. 혹시라도 우아하게 손 흔들고 인사하기 상이 있다면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솔직히 고백한다.
미스코리아라기보다는 미키마우스에 가깝다. 설거지나 빨래를 할 때 고무장갑 안에 하얀 면장갑을 낀다.
일하다 보면 고무장갑을 벗고 하얀 장갑만 낀 채로 돌아다닐 때가 종종 있다. 여름을 맞아 더 까매진 팔에 하얀 장갑을 끼고 어쩌다 검은 윗도리를 입고 빨간 바지는 아니지만 베이지 반바지를 입고 다니면 이건 미키마우스인데?라는 생각이 든다. 퍼레이드에서처럼 발뒤꿈치가 엉덩이에 닿을 정도로 발랄하게 발을 구르고 손을 힘차게 흔들어야 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