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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저녁을 호사스럽게

by 미르

이것은 아주 주관적인 현관의 신발 정리 방법에 관한 이야기이다.

혹시나 이 글을 읽고 바람처럼 흔들릴 사람이 있을까 싶어 결론부터 쓰고 시작을 한다.

현관에 신발을 정리할 때는 신발의 방향을 집 안으로 향하기!

운을 가져온다 하여 풍수학적 관점에서 추천하는 방법이다.


많이 늘어놓지 말고 신는 신발만 현관에 두고 방향은 안쪽으로.

반대로 사업체 같은 곳에서는 바깥으로 두라고 조언을 한다.



그런데 나는 가끔씩 현관 청소를 하고 나서 신발을 양옆 쪽에서 나란히 마주 보게 배치를 한다.

이렇게 신발을 두면 아침에 나갈 때와 저녁에 들어올 때 마치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의 인사를 받는 듯한 기분이 든다.


운동화와 슬리퍼의 색들이 어쩌다 보니 흰색, 검은색이다.

영화에 나오는 집사와 메이드들이 단정한 희고 검은 옷들을 입고 쭉 나란히 줄을 서서 인사를 하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손에 음식물 쓰레기, 재활용 분리수거를 가득 들고나갈 때 집사와 메이드들이 흰옷, 검은 옷을 차려입고 양옆으로 나란히 줄을 서서 고개를 숙이며 배웅을 한다.

'주인님, 잘 다녀오세요.'

오후에 어깨에 하나 손에 하나 장바구니를 들고 집으로 들어오면 인사를 한다.

'주인님, 잘 다녀오셨어요?'


굉장한 일을 하러 가는 것도 아니고 그저 이렇게 다니는 데 인사를 받고서 기분이 좋아진다.

특히 양옆으로 쫙 배열해 있는 신발들 사이를 지나 나의 신발 한 켤레만 안으로 향하게 벗고 들어가면 당당한 주인님 같은 기분이다.


가끔씩 오후에 신발 정리를 이렇게 해 놓는데 저녁에 들어오는 남편은 이 기분을 느끼는지 모르겠다.

지금 물어보니 어리둥절해하며 "어, 기분 좋다."라고 한다.


허, 모르고 있었군!

나의 이 작은 배려를 알아채지 못했다니.

이제부터는 오후에 정리해 주지 말아야겠다.


그저 가끔씩 재미로 이렇게 정리한다.


매번 드나드는 현관은 바로 신발들로 또 어지러워지지만 이렇게 정리를 하면서 작은 즐거움을 숨겨 놓는다.


아침저녁으로 호사스러운 기분을 느낀다.

집사와 메이드들이 줄을 서서 배웅을 받는 귀족들처럼.

양옆으로 쫘악 줄 선 신하들 사이를 당당히 걸어가는 여왕처럼.


현관에서 자신감을 가득 장착하고 집 밖으로 나가 오늘 하루를 시작한다.

지친 오후 공손한 인사를 받으며 돌아와 기분 좋은 편안함을 느낀다.


우리 집의 슬리퍼, 운동화들의 인사.

그 인사로 인해 나의 어깨가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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