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햇살에 평소보다 빨리 눈이 떠졌다.
일어나자마자 아름다운 음악을 한곡 듣고 이 멋진 음악이 오늘 바쁜 하루를 보낼 때 문득문득 생각나기를 바라며 운동 나갈 채비를 했다.
현관에 줄이 약간 흐트러졌지만 그래서 약간은 더 자연스러운 까맣고 하얀 신발들의 배웅을 뒤로하고 집을 나선다.
밤사이에 내린 비 덕분에 예전보다 한결 시원해진 새벽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셨다.
공기에 냄새도 있고 맛도 있다.
발걸음을 옮기다 아파트 안 벤치에 놓인 먹다 남은 테이크아웃 음료 2잔이 눈에 들어왔다.
나란히 놓여 있지 않고 대각선으로 놓인 벤치에 각각 놓여 있는 음료수.
얼핏 3분의 1쯤 남아 있는 걸로 보아 음료가 목적이 아니라 그저 앉아서 이야기가 필요한 시간이지 않았을까? 한창 사랑에 빠져 옆에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픈 연인은 아니었나 보다. 혹은 밤새 심각한 이야기를 를 하는 친구들이었을 수도 있겠다.
음료가 목적이 아니라 그저 이야기가 목적이다.
나에게는 커피가 그러하다.
어린 시절 세상 향긋한 냄새에 이끌려 마셔 본 커피 한 모금의 쓰디쓴 맛에 놀라서 한동안 입에도 대지 않았다.
이렇게 이율배반적인 맛이라니!
그 진한 향과 어울리지 않는 맛에 놀랐었다.
학창 시절 공부할 때 잠을 깨기 위해 먹었던 커피에도 에이스 과자가 함께 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쓴 커피, 달달한 커피 가리지 않고 맛도 모르고 하루에 여러 잔을 마셨다.
그저 향에 감탄할 뿐 원산지나 원두 볶는 정도 이런 미세한 차이를 잘 느끼지 못한다.
오전 집안일을 끝내고 커피 한 잔?
마시지 않는다.
어느 순간부터 커피 한 잔만 마셔도 가슴이 두근두근한다. 카페인에 민감하다고 한다. 뭔가 액션을 취해야 할 것 같은 두근거림을 안고 많은 일을 재빨리 처리해야 할 때 충전하듯 한 잔씩 마실 뿐이다.
그리고 또 마신다.
친구들과 지인들과의 만남!
음료가 목적이 아니라 그들과의 이야기가 즐겁다. 아무것도 넣지 않은 아메리카를 마실 때도 있고 이름을 차마 외우지도 못할 기나긴 영어 이름의 커피를 마실 때도 있다.
뜨거운 여름에도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향을 즐긴다.
커피 한 모금 이야기 하나 커피 한 모금 이야기 둘 이렇게 이어간다.
나에게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소중한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을 떠올린다.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은 짧은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혹시나 싶어 그 벤치 앞을 지나간다. 벌써 청소하시는 분이 깨끗하게 치워 버렸다.
내가 놓치지 않고 그 순간을 보았구나.
그 벤치는 이제 또 다른 이야기를 나눌 누군가를 기다리며 환한 아침햇살 속에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