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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의 팬이 되었습니다

by 미르


야구팬인 딸아이를 키운다.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된 야구사랑은 방학 때 전국의 야구장을 도장 깨기 하듯 돌아도 그 관심이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더 커지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팀 경기뿐만 아니라 다른 팀의 경기에도 신경을 쓰며 복잡한 순위 계산을 순식간에 해내는 모습을 보면 야구 관련 직종을 직업으로 삼아야 하지 않나 싶다.


딸을 따라 야구 경기를 시청한다. 애매한 상황에서는 딸아이에게 질문을 하고 해설가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자세한 설명을 듣고는 오~이해를 하고는 다음에 다 잊어버린다.


이 이야기는 야구이야기가 아니다. 올해 초 같이 야구 경기를 TV로 시청하다가 많은 키움의 팬들 중에서 아주 열정적으로 응원을 하는 청년을 보았다.

곱슬머리는 땀에 젖어 온통 머리에 들러붙어 있는 상태에서 커다란 눈이 튀어나오고 커다란 입이 더 커질 수 없을 정도로 입을 크게 벌리고 두 팔을 번쩍번쩍 들어 올리며 응원을 하고 있다. 야구 중계 화면에 자주 잡히는데 볼 때마다 한시도 가만히 앉아 있지 않고 일어서서 응원을 열심히 하고 있다.

누군가를 열렬히 응원한다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온통 내주는 것이지 않나 싶다. 아무런 대가 없이 자신이 즐거워서,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다.


자주 보다 보니 어느새 나도 이 팬의 팬이 되었다. TV를 켜고 한 공간에 앉아서 딸은 야구를 보고 나는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그러다 키움의 이 팬이 나오면 딸이 호들갑을 떨면서 알려 준다.

"엄마, 그분이다. 그분!" 성도 이름도 모르니 우리 집에서 그분의 호칭은 ‘그분’이다.

그분의 응원하는 모습만 봐도 흐뭇하고 기분이 좋아진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분 생각이 나서 미소가 지어진다. 이렇게 열렬한 팬이 되나 보다.

그분이 팔을 위로 힘차게 올렸다 내리고 가슴을 활짝 펴고 어찌 보면 운동 같은 몸놀림을 기분 좋게 열심히 쳐다본다.


그리고 드디어 직접 따라 하게 된다.

아침에 집을 나서기 위해 현관에서 신을 신고 있는 남편한테 '그분'식의 아침 인사를 한다. 음치, 박치에 이어 몸치이고 구호도 제멋대로 그때그때 바뀌지만 집안인데 어떠랴. 절도 있는 몸놀림이라기보다는 팔을 허공에 허우적허우적거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팔을 위로 올렸다 내렸다 옆으로 벌렸다 닫았다를 반복한다.

'힘내라, 힘! 힘내라 힘!'

'좋은 아침! 좋은 아침!'

아침부터 이 요란스러운 인사를 보고 좋아서 웃는지 웃겨서 웃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웃는다.

성공이다!

나의 이 작은 응원이 남편이 힘든 바깥일을 할 때 작은 힘이 되기를 바란다.

아침에 한 번이라도 크게 웃고 세상에 나가서 일을 마음껏 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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