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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내릴 곳을 놓칠 뻔하다

by 미르

앗, 이번 정류장에서 내려야 하는데.

치이익 소리를 내며 벌써 버스 문이 닫히고 있다.

이런 일이!

목적지에 갈 때는 그나마 정신을 꽉 잡고 가느라 놓치는 일이 없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마음을 확 놓아 버려서 그런지 내려야 할 때를 놓치는 일이 있다.


요즘 글을 쓰느라 생긴 일이다. 버스에서 내릴 곳을 지나치기도 하고 지하철에서 한 정류장을 더 가기도 한다. 한 번은 집 앞 마트에 가는 길에 재활용 분리수거 쓰레기를 버리고 가려고 작은 카트에 쓰레기를 가득 담고 글에 대한 생각을 하며 가다가 마트 앞에 가서야 카트에 쓰레기를 가득 싣고 온 것을 보고 다시 발길을 돌린 적도 있다.

위험하다.

정신을 이리 놓고 살다니!

집에서는 노트북으로 글을 쓰지만 이동 중에는 생각에 빠져 있거나 휴대폰으로 글을 쓰다가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난다.

정류장 간격이 비교적 짧고 어차피 집이 두 정류장 가운데쯤 있으니 걸어도 괜찮다. 가방을 챙겨 들고 앉아 있던 버스 제일 뒷좌석에서 내리는 뒷문 쪽으로 천천히 걸어 나온다.

앞쪽에 다른 버스도 정차를 하고 있어 버스가 계속 정차 중이다.

혹 용감한 사람들이라면 '여기서 내려주세요'라고 말할 법도 하다.

하지만 소심한 부끄럼쟁이라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부끄럽다. 차라리 한 코스 걷는 것을 선택하리라.


가만히 뒷문 앞에 서 있는데 슬그머니 치익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문이 열린다.

앗, 놀란 마음으로 앞쪽을 향해 고개를 돌려 보니 운전석 앞에 달린 거울 속에서 버스 기사님께서 눈을 맞추며 미소를 짓고 있다.


어떻게 아셨나?

그저 가만히 문 앞에 서 있었는데.

"아, 감사합니다. 여기서 내릴게요."

황급히 인사를 하고 얼른 내린다. 버스 옆을 지나치면서 기사님께 다시 한번 더 고개 숙여 인사를 한다.


그나저나 기사님은 내가 이번에 내리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하다.

운전석 앞쪽에 붙은 거울로 버스 안을 항상 살펴보고 있는 걸까?

나처럼 휴대폰만 보다가 내릴 곳을 지나치는 사람들을 많이 봐 왔을까?


마치 버스 안 승객들의 동향을 다 파악하고 있는 능력자, 달인 같았다. 일의 최고 경지에 이르러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능력을 가진 듯했다. 하나의 일을 직업으로 삼고 계속하다 보면 능숙해지고 뜻하지 않은 능력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런 능력이 있어도 귀찮다고 사용하지 않아도 아무 상관이 없지만 기사님은 승객을 위하는 마음으로 그 능력을 사용하고 있다.


다른 이를 위하는 마음으로 진심을 다하다.


오늘 나는 기사님의 초능력과 진심을 보았다.

덕분에 집으로 가는 길이 더욱 짧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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