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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말하는 법

마구마구 사랑해, 사랑한다니까

by 미르

'사랑해'라는 말을 자주 쓴다.

이 말을 자주 쓰게 된 사정이 있다.


예전 친척모임에서 한 유치원생 친척 아이를 보았다.

유치원생인데도 '어머니, 아버지'라는 호칭을 쓰는 아주 의젓한 아이였다. 그런데 다른 친척 아이들이랑 아주 신나게 놀면서도 뜬금없이 멀리서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자신의 엄마에게 "어머니, 사랑해요."를 자주 외치고 있었다.


아니, 열심히 놀기에도 정신없는 나이인데......

한창 재미나게 놀다가 수시로 엄마를 흘깃흘깃 보면서 엄격한 엄마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새로운 놀이를 시작할 때면 엄마에게 와서 보고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머니, 이것하고 놀아도 돼요?"


아, 유치원생인데...

노는 것도 허락을 받다니!


나의 딸아이는 저만한 나이의 유치원생 때 높임말조차도 장착하지 않은 시기였다.

머리가 하얀 친척 어른들끼리 한창 이야기하고 있는데 "야, 너희들! 시끄러워. 조용히 해라!"라는 용감한 말을 외쳐 엄마를 기함하게 만들고 한바탕 웃고 넘어간 적도 있었다.


모임이 끝난 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안타깝게만 들렸던 '사랑해'라는 말에 대한 이야기를 남편과 딸아이에게 지나가는 말로 했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뒤.

딸아이가 갑자기 '사랑해'를 말끝마다 마침표처럼 붙이기 시작했다.

맛있는 밥을 먹고 나서 '엄마, 사랑해요.'

혹은 아침에 일어나서 '엄마, 사랑해요.'

아빠에게 용돈을 받으면서 '아빠, 사랑해요.'


진실되고 간절한 사랑의 느낌이 아니다.

씩 웃으며 말할 때마다 양념처럼 장난스럽게 첨가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말이 들을 때마다 웃음이 터졌다.


사랑해.

사랑한다는 말을 이렇게 가볍게 숨 쉬듯이 말할 수도 있었다.


밥이 맛있어서 기분이 좋아서 사랑해.

아침에 일어나서 아침 인사로 사랑해.

용돈을 받아서 감사해서 사랑해.


어색한 듯하면서도 묘하게 그 상황에 어울리는 말.

'사랑해'였다.


그 뒤 우리 집에서는 딸에게서 시작된 '사랑해' 대잔치가 열렸다.


아침 일어나서 벌써 서너 번의 '사랑해'가 나왔다.

아침에 일어나서 남편을 0.00001초 정도 안아 주고 "사랑해."라고 말해 주었다. 중년의 아침 인사는 한창때의 사랑의 모닝인사라기보다는 밤사이의 생존 확인으로 점차 나아가고 있다. 긍정적이다.


아침부터 노트북을 펴고 글을 쓰는 나를 보고 남편은 베란다에서 비둘기의 눈길을 받으며 잘 익은 대봉감을 골라서 가져와 씻어서 먹으라고 준다.

(베란다에 익으라고 감을 펼쳐 놓으면 비둘기가 와서 눈독을 들인다.

날아다니는 비둘기는 무섭지 않지만 가만히 앉아 있는 비둘기는 좀 무섭다.)


"와, 홍시다! 사랑해요!"

남편에게 인지 대봉감에게 인지 모를 감사의 인사를 '사랑해요'로 대신한다.


밥을 먹고 나서는 남편이 녹차까지 만들어 준다.

"오, 녹차까지! 사랑해요~"

남편이 나서서 해주니 신이 나서 '사랑해'가 나왔다.

얼핏 보면 장난처럼 말끝에 붙는 이 작은 단어 하나로 기분이 좋아진다.


'사랑해'라는 말을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기가 어렵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랑해'라는 말을 쓰는 것이 아주 힘든 분들,

아침에 일어날 때,

출근할 때,

기분 좋을 때,

신이 날 때,

감사할 때

'사랑해'라는 말을 넣어 사용해 보시라.


뭐, 어색할 수도 있다.

사랑이고 뭐고 간에 처음은 다 어색하다.


하지만 하다 보면 이 작은 말이 퍼져서 온 집안을 감돌고 나아가서 밖으로도 뻗어나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가?


아무렇게나 넣어서 사용해 보시기를!

기분이 바로 좋아진다.

작은 행복의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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