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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야 Jul 10. 2024

어쩌면 행복

5화

할머니는 우리를 참 많이 아끼셨다. 혹여나 나와 동생이 엄마와 아빠의 빈자리를 너무나도 잘 알아차려서 외롭거나 서럽지 않도록 아낌없이 지원해주려 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할머니의 배려 깊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엄마와 아빠의 품과 같을 수는 없었다. 키도 작은 할머니는 우리 둘을 안으면 손과 손이 닿지 않았다. 어쩌면 허술한 그 틈새를 본 내 어린 마음이 멋대로 삐죽거렸을지도 모르겠다. 할머니와 동생을 부둥켜안고 다짐했던 그날의 절실함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주눅 들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지만 삶의 쓴맛을 조금 일찍 알아버린 철부지 꼬맹이었을 뿐이다.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나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할머니와 살게 되면서 맞이한 사춘기는 그야말로 질풍노도였다. 비가 오면 비가 와서, 해가 뜨면 해가 떠서,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불어서 짜증 났다. 우리를 거두어준 잔소리쟁이 할머니를 조금은 멀리하고 내 말에 공감해 주는 친구들을 가까이했다. 밤새 친구들과 노는 날이 많아졌다. 공부하러 나간다고 말하고는 친구들과 어울려 어른 놀이를 했다. 책가방에 책도 한 권 없이 참 억지스러웠다. 다행스럽게도 방탕했던 시간에 비하면 어찌어찌해서 지방 어느 대학을 들어갔다. 대학은 가야 사회 나가서 밥이라도 빌어먹고 산다고 할머니가 억지를 부린 탓이었다. 동생을 지키려면 네가 동생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으셨다. 그 말을 들으면서 목구멍이 턱 막히는 기분은 동생을 유난히 챙기는 할머니 때문인지 그 덕에 상전 대접을 받고 있는 동생 때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어렴풋이 그날의 다짐이 떠올라서 그런 것 같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내가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동생 놈의 빌붙기가 날로 심해졌다. 용돈 달라는 말은 그리도 쉽게 나오는지 대학생인 내가 돈이 어디 있다고 손만 뻐끔거렸다. 나도 모질지 못했던 것 같다. 동생이 벌린 손 안으로 먹이를 퍼다 나르는 어미새 같은 느낌이 종종 들었다. 낮에는 학교, 밤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바쁘게 살았다. 분명 동생까지 신경 쓰느라 치열하고 힘든데도 자꾸만 할머니 탓을 하게 되었다. “할머니는 왜 맨날 대훈이만 챙겨? 나도 공부하고 일하느라 힘들어.”라며 아직 덜 익은 벼 같이 빳빳하게 투덜거렸다. 눈치 없는 동생은 영원한 편안함을 추구했고 나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긴 터널에 갇혀버린 기분이었다. 내가 의지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 지도 오래되었다. 중요한 순간마다 대훈이 편을 들어주는 할머니도 의지할 대상은 아니었다. 난 다시 친구들을 찾을 수밖에 없었고 그때마다 술로 기억이 아득해질 때까지 내 목구멍을 적시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운이 좋게도 굴지의 제약회사에 취업하게 되었다. 합격 소식을 들은 그날은 너무도 기뻤다. 어릴 적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치킨을 사들고 할머니와 동생이 있는 집으로 향했다. 손에 치킨을 들고 걸어가는 내내 아빠 생각이 많이 났다. 내 발걸음이 가벼운 것을 보니 아빠도 이런 기분으로 먹을 것을 사들고 오셨구나 싶었다. "아빠, 엄마 하늘 위에서 잘 지내지?"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를 기다리듯 잠시 멍하니 골목 어귀에 섰다. 하늘에 별이 촘촘히 박혀있었다. 유난히 밝은 두 개의 별이 나에게 대신 대답하듯 반짝였다. 알겠다는 듯 살짝 미소를 보이고는 다시 할머니와 동생이 있는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회생활은 드라마에서 보던 것처럼 활기차고 파이팅 넘치는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월급쟁이 생활은 나에게 금전적 풍요를 가져다줬고 그것만으로도 회사를 다녀야 할 이유가 되었다. 물론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에 비해서 그렇다는 말이지만 조금 더 생겨난 여유에 비하면 만족감이 컸다. 아마도 여유에서 오는 안정감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철부지 동생에게 들어가는 돈도 동시에 늘었지만 그곳에서 열심히 일에 몰두하고, 성과를 내고, 동료들과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좋은 추억들을 많이 만들었다. 회사 동료들은 내 과거사를 전혀 몰랐기 때문에 밝고 활달한 사람으로 기억해 줬다. 나도 굳이 어두운 옛이야기를 꺼내고 싶진 않았고 티 내지 않으려 애썼다. 그 덕분에 진심으로 친해진 동료들도 많았다.


그중 한 동료가 어느 날 지인의 지인을 소개해준다며 생각 있으면 알려달라고 했다. 혹시 사진이 있냐고 물었더니 잠시 후 사진들 구해다가 보여줬다. 준수한 외모에 훤칠한 키가 돌아가신 아빠와 비슷한 것 같았다. 고민할 것 없이 만나보겠다며 소개해달라고 했다. 직접 만난 그 사람은 너무 마음에 들었다. 말이 잘 통했고 열정적이었으며 활달한 성격까지 갖춘 이 남자를 놓칠 순 없었다. 두어 번 만나다가 내가 먼저 고백했고, 그는 기다렸다는 듯 귀에 걸릴듯한 미소와 함께 흔쾌히 받아주었다. 그는 항상 나를 배려했고 아꼈다. 나의 아픈 이야기를 그에게 했던 날도 외롭고 고통스러웠을 어린 홍매화를 어루만지며 달래주었다. 내 깊은 아픔까지 보듬어주는 사람이 또 어디에 있을까? 나는 그에게 더 깊이 빠져들었다. 할머니에겐 미안하지만 이제 내가 온전히 기댈 수 있는 사람은 이 사람이 유일했다.


짧고 굵은 연애 기간을 거친 우리는 이듬해 결혼을 하게 되었고 그해 첫 아이를 갖게 되었다. 주변에서는 모두 축하를 해주었지만 정작 나는 불안했다. 엄마와 아빠를 떠나보낸 채 10여 년을 살아온 내가 이 아이에게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괜찮다 해낼 수 있다 자기 암시를 걸어 보았지만 좀처럼 불안은 가시질 않았다. 적어도 부끄러운 엄마가 되지는 말자고 다짐하면서 해야 할 일들을 부지런히 찾아서 했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을 안정시키려 노력했고 건강한 몸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아이를 위한 요리도 배우고 육아 교육을 찾아다니면서 불안함을 떨쳤다.


첫 째 아이의 태명은 사랑이었다. 사고 이후 나에게 너무도 절실했던 사랑을 이 아이에게는 아낌없이 주겠다는 나의 결연한 의지가 담긴 이름이었다. 내 노력을 알아준 것인지 기특하게도 사랑이는 뱃속에서 10개월을 건강하게 자라 우렁찬 울음소리와 함께 우리 앞에 모습을 보였다. 핏덩이 같은 아이가 너무나 신기하고 사랑스러웠다. 2년 후엔 둘 째까지 생겼다. 하루가 지옥같이 느리게 흘러가던 어린 시절과 달리 내 인생은 사랑을 가득 싣고 빠르게 지나갔다. 나는 매일을 벅찬 사랑으로 채울 수 있었다. 이 아이들은 어느새 내 전부가 되었다.




동생 대훈이는 아직도 변변한 직장도 없이 망나니 생활을 했다. 나에게 손을 벌리던 버릇이 이제는 내 남편에게까지 닿았다는 것과 그걸 당연시하는 할머니의 일관된 태도는 나뿐만 아니라 남편에게도 불편한 일이 되었다. 할머니가 돈을 보내주면 안 되겠냐는 둥 부탁 같은 강요를 할 때면 남편 보기가 부끄러워졌다. 괜찮다며 매번 도움을 주는 남편에게 고마우면서도 미안했다. 맞벌이를 해야겠다고 얘기했더니 잠시 고민하던 남편은 괜찮으니 아이들을 키우는데만 집중해 달라고 부탁했다. 남편 덕에 안정감을 누리며 살 수 있는 것에 감사했다.


몇 년이 지나자 남편은 회사 업무와 승진에 대한 스트레스로 많이 힘들어했다. 그토록 자상하고 배려심 가득하던 사람이 집에 들어와서도 나와 함께 하는 시간이 줄어들게 되었다. 아이들과 셋이서만 잠드는 날도 많아졌다. 처음엔 남편이 힘들게 일하는 것을 이해하려 하고 위로하였지만 한 해 두 해 반복되니 나도 점점 지쳐갔다. 내가 기댈 수 있는 큰 기둥 두 개 중 하나가 점점 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다쳤던 오른쪽 다리가 씁쓸하게 저려왔다. 기분 나쁜 고통을 잊기 위해 한동안 외면하고 살았던 술을 다시 찾았다. 아이들을 재우고 홀로 거실에 앉아 술을 마시는 날이 잦아졌다. 남편이 없는 텅 빈 옆 자리를 잊어야 잠을 잘 수 있었다. "술에게 맡기면 이렇게 편해지는 것을..." 하며 텁텁한 혼잣말을 하는 것이 입버릇이 되었다.


술로 외로움을 달래는 날이 많아질수록 나와 남편의 사이는 멀어져 갔다. 남편은 지켜보다 못해 싫은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외롭다고 얘기했지만 미안하다는 말만 돌아올 뿐이었다. 인생이 술보다 쓴 맛인 줄 알았다면 도로에 뛰어들었던 그날 나는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이 나았다. 오래 묵은 어린 날의 감정이 주체할 수 없이 밀려왔다. 감정의 쓰나미는 나를 어두운 방구석으로 몰고 갔다. 잠시 정적이 있었고 내 손목에서 뜨거운 것이 흘러나왔다. 쎄엑쎄엑 아이들이 자면서 내는 숨소리만이 온 집안을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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