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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야 Jul 17. 2024

어쩌면 행복

6화

방문이 열리고 희미한 빛이 새어 들어왔다.

"여보!"

남편의 목소리였다. 때마침 퇴근하고 들어온 남편이 아무런 인기척도 없는 집안 분위기에 방 곳곳을 찾아다니다 잠들어 있는 아이들을 미리 확인하곤 다른 방구석에 축 늘어진 나를 발견했던 것이다. 방의 불을 켤 생각도 못한 채 내게로 다가와 스윽 훑어보곤 다시 후다닥 들어온 곳으로 돌아가 벽을 더듬어 불을 밝혔다. 밝은 전등 빛이 나를 부끄럽게 비추었다. 내가 한눈에 들어오자 남편은 다급하게 전화기를 만지작거렸다. 나와 방 어딘가의 허공을 번갈아 눈길을 주면서 얼굴은 사색이 되어 말을 더듬듯이 이어갔다. 통화를 마친 남편이 괜찮은 거냐며, 왜 이랬냐며, 정신없이 질문을 쏟아냈다. 인생의 고단 함이었는지, 외로움이었는지 무언가에 취해있던 나는 그 질문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날 이후 나는 깊은 우물 속에 갇힌 것처럼 어두운 곳에서 나만의 둥지를 틀고 한껏 웅크리게 되었다. 살아 있지만 세상이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곳으로 스스로 기어들어갔다. 우물에는 항상 물이 고여 있었기에 내가 흘리는 눈물이 아무렇지 않았다. 매일 그곳에 수시로 드나들며 마르지 않도록 눈물을 쏟아냈다. 아이들과 남편을 생각하면 우물 근처도 가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가도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면 우물 앞에 서있거나 그 아래에 내려가서 가슴까지 축축해지는 것을 느끼고서야 알아차리곤 했다. 가끔은 한 번쯤 본 것만 같은 끔찍한 장면이 내 눈앞에 펼쳐졌고 그때마다 나는 우물로 숨어드는 일을 반복했다.


나를 옆에서 지켜보던 남편은 언젠가부터 말이 없어졌다. 끝도 없이 어둠 속으로 가라앉는 나를 다시 끌어올리기도 수십, 수백 번이다. 블랙홀처럼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고단함을 알아채기에는 우물이 너무도 깊어서 하늘에 난 조그맣고 동그란 구멍에 빼꼼히 내려다보던 남편의 얼굴에는 그림자만이 드리워져 표정을 알 수 없었다.


어느 날 남편은 내 앞에 노랗고 큰 봉투를 내밀었다.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고 언제나 그런 예감은 빗나가질 않는다. 자기도 고민 많이 했다며 충분히 생각해 보고 알려달라는 마지막 배려의 말을 남기고 남편은 집을 나섰다. 나는 잠시 멍하니 앉아 밖을 내다봤다. 어릴 적 동네를 휘젓고 다니며 호령하던 홍매화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어졌고 눈에 초점도 없이 어깨를 늘어뜨리고 앉아있는 사람이 창문에 흐리게 비쳤다.

"그래, 끝내는 게 맞겠지."

힘없이 혼잣말을 내뱉고 옅은 한숨을 연거푸 내쉬었다. 언젠가부터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지만 숨 쉴 틈 없이 밀려 올라오는 감정은 주체할 수 없었다. 뜨거운 것이 눈앞으로 순식간에 넘쳐흘렀다.   






나는 급히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 내 품에 아이들을 꼭 끌어 안은채 누군가에게 쫓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빠르게 요동치는 심장 박동에 맞춰 걷는 걸음에 아이들은 뛰다시피 하며 딸려왔다. 마지막 남은 희망이자 행복이 이 아이들이라 확신했으니까. 적어도 이 정도 행복할 자격은 있잖아. 그런데 내 발걸음은 왜 그리도 초조했을까. 익숙한 골목에 들어서자 더 힘차게 걸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할머니가 뛰쳐나오셨다. 영문도 모르고 땀을 뻘뻘 흘리며 두 아이들 꼭 잡고 온 나를 보시곤 재빨리 아이들에게 손을 뻗어 품으로 끌어당기셨다. 끌려만 오던 아이들이 할머니 품에서 당혹스러움과 두려움이 섞인 울음을 터뜨렸다. 마당을 울린 소리에 나도 목구멍에서 묵직한 것이 밀려 올라왔다. 할머니에게는 내가 이혼하게 될 것이라는 것과 아이들을 내가 행복하게 키우겠다는 생각으로 옷가지만 조금 챙겨 부랴부랴 왔음을 설명했다. 할머니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잠시 보더니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들어갔다. 나도 뒤를 따라 손을 꼼지락거리며 들어갔다. 나와 동생이 함께 지내던 작은 방에 나와 내 아이들이 짐을 겨우 내려놓고 앉았다. 이유 모를 편안한 느낌에 초조했던 몸이 사르르 녹았다. 아이들도 긴장이 풀린 것인지 따뜻한 바닥에 배를 깔고 금세 잠이 들었다. 그래 집을 나오길 잘했어. 나는 아이들이랑 행복하게 살 거야. 나른한 기분에 눈꺼풀이 무거워지더니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얼마 만에 깊게 잠들었는지 모르겠다.


눈을 떠보니 아이들은 깨어 있었다. 아이들을 황급히 끌어안으며 엄마가 행복하게 해 줄게라는 말만 연거푸 내뱉었다. 우리 엄마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을까. 서툴고 거칠게 느껴졌던 엄마의 행동과 말들이 나와 동생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당신의 방어수단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미어졌다.

"엄마, 보고 있지? 보란 듯이 행복하게 살고 싶었는데, 이렇게 되었네. 이 아이들만이라도 행복하게 잘 키워볼게."

듣고 있을지 모를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그때 오래된 철문이 찌그덕거리며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아이들을 다급히 찾으며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고 무슨 일이냐며 진정하고 말로 하자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다급히 들렸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시누이와 시어머니였다.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사라진 것을 알고는 곧장 이곳으로 달려온 모양이었다. 방 이곳저곳을 열어보더니 이윽고 내가 있는 곳의 문이 열렸다. 순간 아이들을 지켜야겠다는 기분이 들어 그대로 아이들을 더 당겨 안았다. 시누이와 시어머니는 아이들을 내어달라고 했다. 아이들이 자라는데 안정적인 환경이 필요하대나 했던 것 같다. 아이들과의 행복한 날을 약속하던 차였기에 내어줄 수 없다고 했다. 몇 분간 실랑이가 오가다 시누이가 큰 아이를 당겨 채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겁을 잔뜩 집어 먹었고 작은 아이를 지키려 온몸으로 감쌌다. 시어머니와 시누이는 작은 아이의 발 하나씩을 잡고 자기들 쪽으로 당기기 시작했다. 아이의 몸이 늘어나며 허공에 떠있었다. 내 아이를 지키고 싶은 마음에 절대로 놓지 않을 작정이었다. 마지막 행복의 씨앗을 빼앗길 수 없었으니까. 나는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이성으로 아이가 다치니 놓아달라고 했다. 눈물이 눈앞을 멀게 하고 콧물과 만나 거대한 파도처럼 내 얼굴을 타고 흘러 바닥으로 떨어졌다. 어른들의 힘겨루기에 아이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 괴로웠다. 손에 쥐여있던 아이의 옷자락이 맥없이 스르르 풀리면서 내 손에서 벗어났다. 아이는 질질 끌려 두 사람의 품에 들어갔고 엄마를 부르는 울부짖는 소리와 함께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점점 멀어졌고 결국 아무것도 들리지 않게 되었을 때 나는 그대로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마지막까지 말리러 나갔던 할머니도 얼마 있지 않아 돌아왔다. 내가 앉은자리 옆으로 할머니가 털썩 엉덩이를 던지며 이제 어떻게 할 거냐면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이들까지 잃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생이별이라니. 아이들에게서 엄마를 지워버리는 건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하다가 문득 나도 아이들에게서 아빠를 지우려 했다는 사실을 눈치채곤 온몸이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이기적인 것은 오히려 나였을지도 모른다.


몇 날 며칠을 감정 없는 표정으로 방안에 처박혀 있었는지 모르겠다. 할머니도 체념한 듯 끼니는 거르지 말라면서 때가 되면 밥을 한 상 차려다가 방 안에 밀어 넣어주곤 하셨지만 나는 힐끗 쳐다보곤 다시 익숙한 우물 속으로 기어들어갈 뿐이었다. 그 사이 소식을 들은 동생도 나를 찾아왔다. 위로의 말을 건네었던 것 같은데 잘 들리지 않았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싫었고 무언가 하는 것도 싫었다. 그냥 이대로 아무 쓸모없는 쓰레기가 되어 버려지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살아 있는 것이 무의미했다.


할머니가 나가고 없을 때 조용히 주방에서 날카로운 것을 가져왔다. 그리고는 불도 켜지 않은 어두운 방구석으로 가서 등을 기대었다. 내 숨소리조차 없는 정적이 나를 더 외롭게 만들었다. 잠시 가만히 있다가 부스럭거리며 날이 선 오른손을 들었다. 아주 천천히, 조금씩 흐느끼는 호흡에 차가운 날붙이는 내 손목에서 멀어졌다가 다시 가까워졌다. 드디어 내 손목에 닿았을 때 많은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다. 나지막이 나를 외롭게 만든 인생에 욕을 내뱉고 약간의 망설임이나 두려움 없이 익숙하게 날붙이가 내 손목을 가로질렀다. 손목에는 몇 번이나 삶을 포기했던 흔적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오늘이 마지막이 되길 간절히 바랐다. 온몸에 생기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의식이 흐려지는 대로 내버려 뒀다. 얼마 안 되어서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지난날들이 스쳐 지나갔고, 내 눈은 서서히 빛을 잃었다.






어디선가 들리는 TV 소리, 짹짹 거리는 새소리와 함께 눈꺼풀을 홍시처럼 물들인 눈부신 햇빛에 슬며시 눈을 떴다. 아주 잠깐 여기가 천국인 줄 알았지만 피부에서 느껴지는 빳빳하고 차가운 이불의 감촉과 눈앞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링거를 보곤 내가 죽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나는 죽는 것도 마음대로 못하네라고 속으로 투덜대며 미간을 찌푸렸다. 잠시 더 눈을 감고 있다가 안 되겠다 싶어 몸을 일으키려고 부스럭거렸다. 내 발치에 앉아 있던 동생이 그제야 내가 깬 것을 보고는 손에 있던 핸드폰을 내려놓고 내 손이 닿는 곳까지 옮겨 앉았다.

"누나 괜찮아? 좀 어때? 일어날 수 있겠어?"

"나 물 좀 줄래?"

"어, 잠깐만"

옆에 있던 물컵을 들고는 병실 문을 열고 나가는 동생의 뒷모습에서 안도하는 표정이 슬쩍 보였지만 모른 척했다. 겨우 자세를 고쳐서 침대 프레임과 베개에 기대어 창 밖을 내다봤다. 얄궂게도 맑은 하늘이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를 따라 시선을 옮기니 물컵을 들고 있는 동생과 할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할머니가 동생보다 조금 더 빠른 걸음으로 내 옆으로 오더니 눈시울을 붉히셨다.

"너까지 죽으면 대훈이는 어쩌라고 그랬어!"

이 상황에서도 동생을 생각하는 할머니의 태도에 잊고 있던 오싹함에 정수리가 쭈뼛 섰지만 정작 미워지는 건 할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동생이었다.


할머니의 잔소리가 휩쓸고 간 자리에는 동생과 나의 어색한 분위기만이 남아 누군가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많이 힘들었냐는 동생의 질문에 목구멍이 막혀 잠시 숨을 깊게 들이켜고 내뱉었다. 그간 있었던 일들을 동생에게 모두 털어놓았다. 가슴 깊은 곳이 시원해지면서도 이렇게 얘기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하는 의심은 거두지 않았다. 내 얘기가 끝나자 동생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실은 누나가 힘든 거 알고 있었다고, 할머니가 저럴 때마다 누나 표정을 보면 알 수 있었다고, 그래서 매번 미안했고 누나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다고 했다.

"학교 다닐 때도 안 하던 공부를?"

"어. 나도 평생 누나한테 빌붙을 수는 없잖아."

믿기 어려웠지만 세무사가 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고 시험 결과가 곧 나올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을 땐 정말 내 앞에 있는 이놈이 동생의 탈을 쓰고 있는 다른 사람인 것만 같았다. 나는 동생과 얘기를 나누면서 동생의 행보가 궁금해졌다. 겉으로는 넌 합격 못할 것이라는 둥 저주 같은 말을 퍼부었지만 내심 좋은 소식이 기다려졌다.


병원을 퇴원한 다음날 나는 어릴 때 자주 놀러 가던 산을 올랐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아주 조금씩 위를 향해 올라가다 보니 거대하게 나를 짓누르던 생각들이 힘없이 한 꺼풀씩 벗겨져 나갔다. 얼마 높지도 않은 산 꼭대기에 도착하자 주변이 시원하게 내려다 보였다. 그 자리에 그대로 털썩 앉아서 한참을 동네를 내려다봤다. 그러다가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엄마와 아빠를 떠올렸다.

"엄마, 아빠"

밀고 올라오는 눈물을 억지로 눌렀다.

"나 살아볼게. 엄마, 아빠한테 가는 건 조금 미뤄둘게. 섭섭해하지 말고 둘이 잘 지내고 있어."

"그리고 나.. 오늘까지만 울게..."

쏟아지려는 눈물을 감추듯 잽싸게 무릎을 감싸고 있는 팔 사이로 얼굴을 파묻었다. 참아낸 숨만큼 어깨가 크게 들썩였다. 따뜻한 바람이 살며시 불어와 내 주변을 맴돌았고, 키가 큰 나무들은 가지를 떨어 울음소리를 감추었다. 덕분에 마음껏 소리 내어 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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