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작가야 Jul 03. 2024

어쩌다 행복

4화

구급차 소리가 저 멀리서부터 가까워지고 있었다. 겨우 뜬 실눈 사이로 동생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모습이 보였다. 눈동자를 왼쪽으로 굴리니 조수석 너머에 창 밖으로 고꾸라진 엄마가 보였다. 몸을 움직일 수 없어서 아빠가 있는 운전석은 볼 수 없었다. 온 힘을 다해 가족들을 불렀다.


“대훈아”

“엄마… 아빠…”


아무도 내 목소리에 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내 목소리가 작아서 안 들렸다고 생각했다. 다시 힘을 짜내서 목소리를 내려는 순간 나는 어지럼을 느끼며 눈앞이 흐려졌고 이내 정신을 잃었다.


다시 정신을 차린 곳은 병실이었다. 오른쪽 다리에 쓰린 통증이 느껴져 눈을 떴다. 다리에는 기다란 철심이 꽂혀있었고 철심들을 잇는 조금은 더 굵은 철심들이 서로 연결되어 내 다리를 지탱하고 있었다. 오른팔과 목에도 깁스를 하고 있었지만 차갑고 단단한 다리만큼 신경이 쓰이지는 않았다. 그나마 움직여지는 왼팔의 손가락을 간신히 꼼지락거렸다. 차가운 병원 침대보가 느껴졌다. 실처럼 가는 시선 끝에는 할머니가 보였다. 내가 깨어난 것을 아직 모르시는 듯 가만히 앉아 계셨다가 낌새를 알아차리시곤 다급히 내 이름을 부르며 꼼지락거리던 손을 부여잡으셨다.


울먹거리는 아이 같은 표정의 할머니를 힘겹게 바라보다가 문득 정신을 잃기 전 차 안의 모습이 떠올랐다. 마른 입술을 겨우 떼며 할머니에게 엄마, 아빠, 동생은 어디 있냐고 물었다. 할머니는 대답 대신 거친 손으로 울음소리가 올라오지 못하게 입을 막고 한참을 눈물을 쏟아내셨다. 간신히 진정한 할머니의 입술이 무겁게 멀어졌다. 맞은편에 오던 차가 우리가 타고 있던 차와 부딪혔다고 한다. 차는 뒤집힌 채로 꽤 먼 거리를 밀려갔다고 했다. 엄마, 아빠는 먼저 하늘나라로 가셨다고 했다. 무슨 소리냐고 엄마, 아빠를 보러 가겠다고, 보고 싶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다시 가슴을 움켜잡고 끄윽거리다 목구멍을 겨우 타고 올라오는 힘겨운 목소리로 아빠는 현장에서, 엄마는 병원 이송 중에 돌아가셨다고 했다. 이제 엄마와 아빠는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럴 리 없다. 아빠는 나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했다. 거짓말쟁이. 갑자기 심장이 요동치더니 가슴 깊은 곳에서 눈물이 솟구쳤다. 밀려 올라오는 눈물과 북받치는 감정에 그대로 휩쓸려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엄마와 아빠가 옆에 있을 때보다 더 큰 소리로 엄마, 아빠를 불렀다. 아직 조막만 한 내 손이 굳은살로 가득한 할머니의 손을 더 꽉 잡았다. 


크게 다치지 않은 동생은 다행히 금세 건강을 회복했지만 한동안 내가 있던 병실에서 함께 지냈다. 사고로 다친 내 다리가 다시 걸을 수 있을 때까지는 병원 신세를 져야만 했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병원을 드나들며 나를 간호해 주셨다. 내가 눈을 뜬 지 2주 정도가 지나서 다리에 꽂혀있던 철심들을 모두 뺄 수 있었다. 의사 선생님이 재활훈련을 열심히 하면 다시 걸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연골과 관절이 으스러져서 원래의 형태를 잃어버린 무릎이 안쪽으로 밀린 상태로 굳어질 수밖에 없었고 그런 이유로 두 다리의 길이가 달라져서 걸으려고 할 때마다 오른쪽으로 조금씩 기울었다. 재활로 힘들 때마다 엄마와 아빠가 생각났다. 한 걸음을 뗄때마다 사고가 났던 그 순간이 스쳐 지나갔다. 눈물과 땀이 뒤섞이도록 재활을 열심히 했다. 내게는 지켜야 할 유일한 가족인 대훈이가 있었다. 이제는 대훈이를 내가 지켜줘야 한다고 할머니가 말했었다. 재활 덕인지 강한 의지 덕인지 꽤 짧은 시간에 걷는 데엔 제법 익숙해졌다. 하지만 엄마와 아빠가 없다는 사실만큼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병원을 퇴원하고 보호자가 없는 나와 동생은 이모네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할머니는 이모가 선뜻 나서서 우리 둘을 돌보겠다고 했다는 얘기를 해줬다. 이모의 고마운 마음과는 다르게 나는 할머니가 더 좋았지만 이미 어른들 사이에서 결정이 난 모양이었다. 어쩔 도리 없이 나는 이모에게 기댈 수밖에 없었다. 이모네 집은 자주 와본 적이 없어서 어색했다. 다행히도 이모네 집은 할머니 집과 멀지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버스를 타고도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였다.


이모네에는 3살 터울의 사촌 언니가 있었다. 우리가 이모의 집으로 들어간 날 언니는 이모 뒤에서 나를 새초롬하게 쳐다보았다. 그 표정 뒤에 어떤 감정이 숨어 있는지도 모르고 나는 살며시 미소 지으며 인사를 건네었다. 어색한 공기가 무겁게 우리를 감싸는 느낌이었다. 이모는 우리 남매가 지낼 방을 소개해주었다. 작은 방이었지만 어린이 두 명이 자기에는 그리 좁지 않았다. 방 한편에는 도톰한 이불들이 켜켜이 쌓여있었다. 우리는 이불 옆에 가방과 옷 짐을 놓고 집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그 사이 이모는 저녁 식사를 준비하시느라 분주해지셨다. 거실에 있는 텔레비전 앞에서 나와 대훈이는 긴장된 모습으로 두리번거리다가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온 소리에 정신이 팔리고 말았다. 이모가 해준 첫 식사는 엄마가 해준 밥만큼 따뜻하고 맛있었다. 허겁지겁 밥을 먹어치운 나와 대훈이는 병원 생활에 지쳤는지 나란히 누워 금세 골아떨어졌다. 




사촌언니는 사춘기의 한가운데 있었던 것 같다. 매 순간이 날카롭고 매서웠다. 조금씩 기우뚱하며 걷는 내가 만만해 보였는지 장애인이라며 비아냥대며 놀려댔다. 나는 장애인이 아니라 다친 것이라고 했다. 놀리는 것으로는 부족했는지 언젠가부터는 이모가 집에 없는 시간이면 항상 나를 자기 방으로 오라고 했다. 처음에는 그저 언니가 놀아주기 위해서 방으로 부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내 착각일 뿐이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는 그리 오래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언니는 이모 앞에서 참았던 감정의 파도를 나에게 쏟아냈다. 나는 거의 매일 언니의 방에 불려 갔다. 내가 불려 가는 덕에 내 동생은 언니가 무섭다는 사실을 몰랐다. 언니는 나를 때리면서 이러니 저러니 내 잘못에 대해 늘어놓았지만 나는 잘못한 게 없었다. 다리가 불편한 것도, 엄마와 아빠가 없는 것도, 내가 이 집에 들어온 것도 모두 내가 한 것이 아니다. 내가 방구석에서 쪼그려 앉아 아파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언니는 행복해하는 듯 보였다. 언니는 그런 상황을 제법 즐기는 듯했다. 그렇게 나는 수개월을 어둠 속으로 점점 더 깊이 들어가고 있었다.


참다못한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용기 내어 이모에게 사촌언니가 나를 때린다고 얘기했다. 맞을 때마다 너무 아팠고 이렇게 맞고만 살기 싫었다. 이모는 내 마음을 알아줄 것이고 이 상황을 해결해 줄거라 믿었다. 이모는 내 얘기를 끝까지 듣고는 사촌언니를 불러내 호되게 혼을 내었다. 하지만 적어도 언니가 나를 때리는 것만큼 격정적이지는 않았다. 단지 약간 화를 조금 냈을 뿐이었다. 이모의 훈계를 한참 듣던 언니는 고개를 숙이고 떨리는 목소리로 이모의 말에 알겠다는 대답만 반복했다. 이제는 언니가 나를 때리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훈계가 끝난 이모는 일이 있다며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이모에게 잘 다녀오시라는 인사를 했고 현관문이 닫혔다. 잠시 후 내 머리가 뒤로 확 재껴졌다. 언니가 내 머리채를 뒤에서 낚아챈 것이다. 그대로 언니에게 질질 끌려간 나는 다시 언니 방의 문 뒤에 내팽개쳐졌다. 뺨, 가슴, 배, 다리 가릴 곳 없이 맞았다. 나는 잘못했다고 싹싹 빌었고 그런 내 말에도 아랑곳없이 달아오른 손과 발은 쉴 새 없이 날아들었다. 


얼마나 맞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언니는 씩씩거리며 때리는 것도 힘들다고, 다시 눈앞에 나타나면 죽여버린다는 둥 온갖 저주를 퍼부으며 나가라고 소리쳤다. 주섬주섬 겨우 몸을 가누고 정신없이 밖으로 나왔을 때는 세상에 캄캄한 어둠만이 남아 있었고, 골목 사이사이 가로등이 반딧불이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그 불빛 사이로 발걸을음 조금씩 옮겼다. 다리를 옮겨 놓을 때마다 온 몸이 언니가 때린걸 기억하듯 울부짓었다. 나는 지친 눈물을 똑똑 떨구며 큰길로 나갔다. 지나다니는 차들이 밝은 빛을 내고 있었다. 걸어 다니는 사람들의 표정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나를 제외하면 모두가 따스한 행복 속에 있었다. 그 사람들이 밉지는 않았다. 다만 이 사람들과 같은 온도 속에서 살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나를 더욱더 외톨이로 만들었을 뿐이다.


무한한 쓸쓸함 속에서 넋이 나간채로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내 발걸음은 차들이 신나게 달리고 있는 인도와 도로의 경계에 아슬아슬 멈추었다. 내 발끝은 언제든 인도 밑으로 떨어질 것 같았다. 한동안 멍하니 엄마와 아빠를 떠올렸다. 오래오래 행복하자고 약속하던 아빠는 거짓말같이 사라졌다. 엄하게 다그치다가도 한없이 사랑을 주었던 엄마도 없다. 아빠, 엄마를 소리 내어 부르면 눈물이 왈칵 밀려 나올 것 같아 차마 입 밖으로 내지는 못했다. 눈앞이 흐려졌다. 그래 내 동생 대훈이도 있었지. 누나가 미안해. 안녕.


내 나이 고작 13살이었다. 나는 다가오는 불빛 속으로 몸을 던졌다. 흐렸던 눈앞이 갑자기 환하게 밝아졌다. 이어서 끼익 칠판 긁는 듯하는 소리와 고무 탄 냄새가 밀려왔다. 나를 멀리 날려버릴 것처럼 달려오던 차는 내 앞에서 멈추었다. 멈춘 차에서 아저씨 한 분이 다급하게 내렸다. 내 생태를 확인하더니 조심하라며 호통을 쳤다. 맞다. 나는 불행하게도 목숨을 건졌다. 참았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내가 목놓아 울고 있는 이유는 아저씨의 호통에 겁을 먹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다시 마주해야 하는 지독한 현실로 돌아왔다는 사실이 감당할 수 없이 내 가슴을 옥죄어 왔을 뿐이었고 나는 그걸 이겨낼 자신이 없었다.


한참을 길가에서 울다 보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모집에 두고 나온 동생이 생각났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죽으려 걸어 나온 길을 살기 위해 다시 돌아갔다. 이모네 집으로 돌아간 나는 잠들어 있던 동생을 흔들어 깨웠다. 옷과 가방을 챙겨 들고는 그대로 그곳을 빠져나왔다. 엄마와 타고 다니던 버스가 생각났다. 늦은 시간 비어있는 버스를 타고 가까운 할머니 집으로 갔다. 도망치듯 나온 내 심장 박동 소리도 몰라주고 버스는 느릿느릿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동생은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버스에서 다시 깊이 잠들었다. 누나가 널 지켜줄게. 두고 봐. 우린 다시 행복 해질 거야.


어느덧 버스가 할머니 집 근처의 정류장에 끼익 소리를 내며 멈춰 섰다. 나는 대훈이를 데리고 버스를 내렸다. 할머니 집으로 가는 길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둠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걸어가는 내내 동생에게 앞으로 우리는 할머니 집에서 살 거라는 얘기를 했다. 제대로 이해를 한 것인지 모르겠는 표정으로 눈을 비비며 이모도 우리를 떠난 거냐는 말에 나는 잠시 머뭇거리고는 우리가 떠난 것이라고 당당히 답해주었다. 우리의 잔걸음이 벌써 할머니의 집에 다다랐다. 얼굴에 눈물 자국이 선명한 내가 결연한 자세로 서서 할머니를 부르며 문을 두드렸다. 몇 번 부르지도 않았을 때 마당을 가로지르는 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문이 열리고 할머니가 놀란 표정으로 우리 이름을 차례로 부르시곤 우리의 뒤꿈치가 들리도록 가득 안아주었다. 할머니 품에 들자 내 눈에는 말랐을 것 같던 눈물이 다시 차올랐다. 어린아이들의 엉엉 우는 소리가 어두운 하늘을 가득 메웠다.



이전 03화 어쩌면 행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