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타운
이곳에 살다 보면 국적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물론 나 스스로가 느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는 시선에서 그렇다. 카페에서 대뜸 “곤니치와”라고 인사하며 일본어로 대화를 시도하는 직원이나, 중국인 친구와 함께 있을 때 굳이 나에게 중국어로 길을 묻는 아주머니를 만나면 어색한 웃음만 지을 수밖에 없다. “오... 아임 코리안”이라고 말하면 상대도 멋쩍은 미소를 짓는다. 이런 일이 너무 잦아 이제는 그냥 웃어넘기는 편이다.
대히트를 기록한 베이퍼스(Vapors)의 Turning Japanese도 ‘일본인이 되어가는 기분’을 노래한다면서, 첫 소절을 중국식 멜로디로 시작한다. ‘오리엔탈’ 느낌을 주려고 했다던데, 일본에서도 큰 인기를 끌며 어디에서나 들렸다고 하니 정작 당사자들은 문제 삼지 않은 듯하다. 모든 걸 문제 삼으면 내 삶만 피곤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지금 같은 시대였다면 인터넷에서 한바탕 시끄러웠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워 부 스 중궈런” (저는 중국인이 아닙니다)이라 해도 차이나타운은 내가 애정하는 곳 중 하나다. 환율 계산을 해보니 한국 음식을 사 먹는 건 부담스러워 직접 요리하게 됐지만, 중국 음식은 여러 향신료와 재료 덕분에 사 먹는 것이 훨씬 간편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래서 중국인 친구보다도 내가 더 자주 찾는 곳이 차이나타운이다. 딤섬부터 아시안 베이커리와 디저트까지 모든 것을 찾을 수 있다. 음식뿐만 아니라 영화관, 카지노도 이곳에 있다. 친구가 미성년자라 입장 거부당했던 웃지 못할 이야기를 나누며 다시 웃음 짓기도 했다.
한국인 세 명이 중국식 볶음밥과 돼지고기 요리를 먹으며 둘러앉았다. 한 언니의 생일 파티에서 만난 친구들로, 나보다 한 학년 아래이지만 동갑인 친구와 한 살 어린 친구였다. “이제 슬슬 런던에 적응해 가는 것 같다”는 친구의 말에 기뻐졌다. 1년 전 내 모습이 떠올랐다. 고등학생 때는 외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늘 집에 있었지만, 대학에 오고 나서 이런저런 음식을 신나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중식은 그중에서도 단연 최고였다. 다른 유명한 요리들보다도 쫀득한 청펀의 매력에 푹 빠졌던 기억이 있다. 대부분의 가게에서 오후 5시까지만 판매하는 메뉴라 일찍 찾아가야 하는 게 아쉽지만.
새 친구들도 중국 음식의 매력에 푹 빠진 듯했다. 온 지 몇 달밖에 안 되었는데 차이나타운 지리를 거의 완벽히 깨고 있었다. 여기서 조금만 걸어가면 타이야키를 파는 베이커리가 있다는 정보도 척척 알려줬다. 우리는 밥을 야무지게 먹고 타이야키를 호호 불어가며 디저트까지 완벽히 즐겼다. “1학년이니까 마음껏 즐기라”고 말하자 친구들은 늙은이 같다며 웃었다. 주말 계획을 얘기하다 보니 친구들은 클럽에 갈 예정이었다. 모르는 사람이 주는 음료에는 뭔가 들어 있을 수도 있다며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해줘서, 클럽에 갈 일은 없더라도 머릿속에 유념해 두기로 했다.
우리가 다시 모이게 된다면, 건너편 골목에 있는 중식당에서 만나기로 했다. 다음에 또 무얼 먹을지 벌써부터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