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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런던 일기 07화

행운의 숫자 7

세븐 다이얼즈, 런던

by 일영

드라마 빅토리아에 푹 빠진 건 최근이다. 평소 듣지 않던 단어들이 오가는 대화와, 화를 낼 때조차 정제된 모습이 흥미롭지만,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빅토리아 시대의 런던이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몰랐던 런던의 이야기를 하나둘 알아가고 있다.


드라마에는 궁정 하녀 스케렛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녀는 얼마 되지 않는 봉급으로 사촌을 종종 돕는다. 하지만 그녀의 삶은 길목 어귀의 시궁창 같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역병이 돌자 ‘경찰조차 들어가기 꺼려하는 곳’이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그곳이 코벤트 가든의 세븐 다이얼스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현재 세인트 자일스 교회의 옆에 자리하는 하는 세븐 다이얼스는 항상 북적이는 활기로 가득하다. 과거와는 180도 달라진 모습이다. 많은 곳이 시간이 지나며 변화를 겪지만, 현재의 세븐 다이얼스를 생각하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길목마다 큼지막한 유리창 뒤로 각종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어, 사람들은 그저 지나치지 못하고 한 가게에서 또 다른 가게로 발걸음을 옮긴다. 얼마 전 한국에서 온 친구와 세븐 다이얼스 마켓에 방문했는데, 치즈 뷔페부터 만두, 차이라테까지 여러 나라의 먹거리가 자리하고 있어 세월이 만든 변화를 직접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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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모험은 5파운드짜리 포토부스에서 시작됐다. 몇 장을 뽑을지 선택할 수도 없지만, 누가 계산할지 고민하기도 전에 재빨리 선점해 버렸다. 언니의 커진 눈과 풀린 팔을 보며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스테이크집 앞에 있는 커다란 모형과 팔짱을 끼고 사진도 찍고, 든든한 아저씨라며 한참을 웃었다. 표정은 웃는 것 같기도, 먼 곳을 회상하는 것 같기도 애매해서 더 재미있었다. 마켓을 한참 돌아다니다 저녁 시간이 되어 밖으로 나섰다.


걸어가다 보니 친구가 들르고 싶어 하던 몬모스 커피가 보였다. 이곳은 원두로 유명해 관광객들이 기념품이나 선물로 자주 사간다. 내 캠퍼스 근처에도 몬모스 커피가 있는데, 처음 갔을 때 일회용 컵을 쓰지 않는다며 테이크아웃을 거절당해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여유롭게 커피를 즐겼는데, 그때의 고소한 향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오늘도 몬모스의 깊은 원두 향이 코끝을 자극했다. 원두를 고르며 향을 맡아도 되는지 물었더니, 직원이 “구분도 못 할 텐데 왜?”라며 비웃었다. 언니는 고심 끝에 하나를 골라 포장해 달라고 부탁했고, 당시에는 좀 불쾌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내가 좀 예민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작은 에피소드에 마음을 쓰기엔 우린 그날 해야 할 일이 많았다. 맛있는 음식도 먹고, 셀프리지에 있는 젤리캣 상점도 들러야 했으니까! 즐거워할 시간도 부족할 만큼, 우리의 하루는 꽉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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