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희비’의 엇갈림 속에서

by 코모레비

10월 10일 금요일, 어제는 희비가 엇갈리는 날이었다. 9일(한글날)에 이어 재량휴일로 정한 학교나 회사도 많았기에, 누군가에게는 쉬는 날의 연속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다시 일상으로 복귀해야 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서는 단 한 명, 중2 아들만 등교를 했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아들이 들어오자마자 원망과 안타까움이 섞인 목소리로 하소연한다.


“아~ 오늘 애들(친구들)은 축구 본다고 했는데~ 나는!!”


금요일 저녁은 영어 학원을 가야 하는 날이라 자신은 축구를 볼 수 없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리라 바로 짐작했다. 남편은 축구 시작하는 시간에 맞춰 치킨을 시키겠다고 했고, 아들과 함께 볼 수 없게 된 것을 아쉬워했다.


엄마인 나도 살짝 고민스러웠다. 3시간짜리 영어 수업을 빠지게 하고 아빠와의 축구 관람을 허락해야 할까. 약간 풀이 죽어(내 마음의 눈이 그렇게 본 거겠지만) 저녁을 먹고 있는 아들 옆모습을 보다가 슬쩍 말을 건넸다.


“영어 학원을 갈지, 아빠랑 축구를 볼지, 니가 하지 않으면 후회하겠다 싶은 걸로 결정해.”


아들은 고민해 보겠다(했겠지..?ㅋ) 하더니 잠시 후 다시 내게 다가와서는 배시시 웃는다. 무슨 말 할지 이미 직감한 내가,


“축구 볼 거지?”


“네.”


브라질과의 축구 경기는 잠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정말 골이 먹힐까 조마조마했다. 이미 2골을 실점한 상황.

“못 보겠어~”


마침 몸을 움직이고 싶었던 나는 운동할 채비를 하고 공원으로 향했다. 공원 트랙을 30분간 걷고 뛴 후 집으로 돌아왔다.


“오 마이 갓~~”


거실에서 울려 퍼지는 탄성. ‘지고 있구나.‘

결국 5:0 참패로 경기가 끝났다.

브라질은 역시 브라질이었다.


아들이 아빠 배를 베고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하고, 아빠는 아들 이마를 쓰다듬으며 맞장구를 쳐주고 있다.

중2 아들과 아빠가 서로 살을 부대끼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참 예뻤다.(남편도 자식 같은 느낌이랄까..)


“음..괜찮은 선택이었던 거 같아. 아빠 혼자 저 경기 끝까지 보기나 했겠니? 니가 있어서 그나마 궁시렁하면서도 재밌게 봤을 거야.”


“저도 열심히 긍정적으로 합리화 중이에요!ㅎㅎ“


그래, 한 번쯤은 룰을 벗어나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은 듯하다. 그때만 느낄 수 있는 만족감과 기쁨이 있으니. 모든 선택에는 기회비용이라는 것이 존재하겠지만, 그 기준 또한 각자에게 주어진 자신만의 것이니.


희비 속에 또 다른 희비가 생겨난다. 축구를 볼 수 있어 기뻤지만 참패해 슬펐고, 그럼에도 그 시간을 아빠와의 한 조각 추억으로 만든 건 또 다른 기쁨이었으리라. 어쩌면 우리는 수많은 희비 속에서 끊임없이 보이지 않는 시소 타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가치 있다 여기는 것, 어느 것에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기울어지는 쪽도 달라진다. 불운이 끝까지 불운으로 이어지지 않으며, 나에게 닥친 불행이 꼭 불행으로만 끝나지 않을 수 있는 것 또한, 내가 힘을 싣고 있는 무게의 중심이 나를 단단하게 붙들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기나긴 연휴가 끝나간다. 자, 다시 뛰어들 준비를 해볼까? 살아있는 저 ‘희비’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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