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습관처럼 손을 뻗어 안경을 찾았다.
그러다 문득 멈췄다.
안경을 쓰지 않은 채로 하루를 시작하기로 했다.
커피 잔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이 흐릿하다.
창밖으로 스치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들의 윤곽이 뭉그러진다.
옆집에서 들려오는 대화 소리는 그저 울림으로만 다가온다.
거울 속 내 모습은 선명하지 않다.
굴곡 없이 매끈해 보이는 얼굴,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눈동자.
이런 모습도 나겠지.
어린 시절, 처음 안경을 썼을 때가 떠오른다.
세상은 갑자기 선명해졌다.
그와 동시에 뭔가 달라졌다.
마치 세상과 내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생긴 것 같았다.
그때부터 두 개의 세계를 오갔다.
안경을 쓴 세계와 벗은 세계.
두 세계는 때로 겹치고, 때로 충돌했다.
어느 쪽이 진짜일까, 생각했다.
어쩌면 둘 다 진짜일 수도 있고, 혹은 둘 다 아닐 수도 있겠다.
대학 시절 슈뢰딩거의 고양이 이야기를 들으며 안경이 떠올랐다.
관찰하기 전까지 고양이는 죽은 상태와 산 상태가 공존한다.
안경을 쓰기 전의 세상도 그럴까.
선명함과 흐릿함이 공존하는 상태.
결혼식 날, 의도적으로 안경을 벗었다.
흐릿한 세상 속에서 감정은 더욱 선명했다.
사랑, 기대, 두려움이 뒤섞였다.
선명하게 본다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도 안경을 벗은 채 아이를 안았다.
아이의 윤곽은 흐릿했지만, 그 존재감은 강렬했다.
때로는 흐릿함 속에서 더 본질적인 것을 느낄 수 있나 보다.
안경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관점이다.
안경을 통해 세상을 해석한다.
그 과정에서 무언가를 얻고, 또 무언가를 잃는다.
선명함을 얻는 대신 다양성을 포기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자주 안경을 벗게 된다.
흐릿한 세상 속에서 오히려 더 선명한 생각이 떠오르기도 한다.
선명함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면, 새로운 가능성이 보이기도 한다.
딸아이가 얼마 전 첫 안경을 썼을 때,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기쁨과 동시에 슬픔도 느꼈다.
그녀는 이제 더 선명한 세상을 볼 수 있겠지만, 동시에 그녀만의 독특한 시각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안경을 쓰고 벗는 행위는 단순한 일상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선택이다.
어떤 세상을 볼 것인지, 어떤 존재가 될 것인지 선택하는 것이다.
안경을 쓸 때마다 특정한 현실을 선택하고, 다른 가능성들을 배제한다.
우리의 인식은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안경을 쓴 채 보는 세상이 과연 '진짜' 세상일까.
아니면 우리가 만들어낸 환상일까.
그 답은 아무도 모른다.
완벽한 시력을 추구하는 것보다, 다양한 시각을 받아들이는 게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우리의 불완전한 인식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의미를 찾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일 것이다.
안경은 우리에게 선명한 세상을 약속한다.
하지만 그 약속에는 대가가 따른다.
선명함을 얻는 대신 직접성을 잃는다.
렌즈는 우리와 세상 사이의 장벽이 되어, 우리를 현실로부터 한 걸음 멀어지게 한다.
안경을 쓰고 벗는 행위는 하나의 명상이 될 수 있다.
그것은 우리의 인식이 얼마나 가변적이고 주관적인지를 깨닫는 순간이다.
안경을 벗을 때마다 새로운 세계의 가능성을 만난다.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렌즈를 가지고 있다.
그 렌즈는 우리의 경험, 믿음, 편견으로 만들어진다.
안경은 그저 그 렌즈의 물리적 현현일 뿐이다.
안경을 통해 본 세상이 전부라고 믿는 한, 우리는 현실의 일부분만을 경험하게 된다.
그 렌즈를 벗어던지고, 다양한 시각을 받아들일 때 새로운 경험이 시작된다.
매일 아침 선택한다. 안경을 쓸 것인가, 벗을 것인가.
그리고 그 선택을 통해 매일 새로운 세상을 만난다.
때로는 선명한 세상, 때로는 흐릿한 세상.
그 어느 쪽도 절대적인 진실은 아니다.
우리의 인식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안경을 쓰고 벗는 순간마다,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인다.
그리고 그때마다 우리는 새로운 존재가 된다.
안경은 단순한 시력 교정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현실 인식에 대한 은유다.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안경을 쓰고 살아간다.
그 안경을 통해 세상을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한다.
그 안경 자체도 우리가 만들어낸 것이라는 사실.
우리는 언제든 그것을 바꿀 수 있다.
다른 렌즈를 선택할 수 있고, 때로는 아예 안경을 벗어던질 수도 있다.
안경을 벗는 순간, 불확실성의 세계와 마주한다.
그곳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다.
선명함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때, 더 풍부한 현실을 경험할 수 있다.
결국, 안경은 우리에게 선택을 제시한다.
선명함과 불확실성 사이의 선택, 안정과 모험 사이의 선택, 익숙함과 새로움 사이의 선택.
그리고 그 선택을 통해 우리는 자신을 정의한다.
안경을 벗어던진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혼란이 시작될 수 있다.
하지만 그 혼란 속에서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고, 새로운 현실을 구성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살아간다.
안경은 그 경계를 넘나드는 도구다.
그것은 우리에게 특정한 현실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다른 가능성들을 감춘다.
안경을 쓰고 벗는 일상적인 행위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존재의 본질에 대해 질문한다.
우리가 보는 것이 진실인지, 우리의 인식이 신뢰할 만한 것인지, 그리고 궁극적으로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해.
오늘 하루, 의도적으로 안경을 벗고 살아보기로 했다.
흐릿한 세상 속에서 어떤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될까.
그리고 그 경험이 현실 인식을 어떻게 변화시킬까.
안경은 우리에게 선명한 시야를 제공한다.
하지만 때로는 그 선명함이 오히려 우리의 시야를 제한할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는 것들을 의심할 때 새로운 것들이 보인다.
안경을 쓰고, 벗는다.
그 사이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것이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