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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내식당 한 달.

사회생활 적응하기 3탄

by 잉크 뭉치

많은 일이 있었다.



주 5일, 하루 5시간씩 빡센 구내식당 알바를 하면서

여러 인간 군상의 마찰을 겪었고,

잠시나마 쓸데없는 고민 속에서 도망칠 수 있었다.



다음 주 수요일이면 이 알바를 그만둔다.

정이 쌓인 곳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날 새로 들어왔던 신입은 2주도 못 채우고,

무단결근으로 알바를 그만뒀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더니.



초보 엄마가 참다 참다 결국 좋게 내뱉은 비판이

그 신입 아줌마에게는 껄끄러웠나 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람 눈치 보며 요령 피우는 신입의 모습은 참 능구렁이 같았다.



산처럼 쌓인 설거지 그릇 앞에서 핸드폰을 만지던 그녀,

일하는 중에도 후루룩 잡채를 먹던 탐욕스러운 모습에

나도 쌓이던 화를 참지 못했다.



결국, 소쿠리에 담긴 설거지 그릇을 일부러 콰과광 쏟아버리면서

내 분노를 표출했다.

지금 생각해도 충분히 그럴 만했다.



그녀가 무단결근으로 사라진 뒤로는

일이 조금 늘었지만, 오히려 일이 수월해졌다.



일이란, 역시 사람과 합이 맞아야 한다는 걸 새삼 느꼈다.



점심을 먹을 때쯤이면,

나간 사람의 험담이 종종 오갔다.

그런 대화 속에서 우리는 조금 더 친해졌고,

또 역정을 내며 생색내는 사람은 주변 사람의 기분을 얼마나 망치는지도 뼈저리게 배웠다.



이곳에서 한 달을 일하며 변한 점도 있다.



이제 집안 청소와 정리는 정말 애들 소꿉놀이처럼 느껴진다.

집안 설거지가 아무리 쌓였어도,

기름 범벅된 프라이팬이 5~6개 있어도.



500인분이 넘는 그릇과 식판,

수십 개의 업소용 바트와 밥솥,

다라이나 기름 범벅이 된 초대용량 통과 조리기구들을

초 단위로 닦아내던 경험 앞에서는,

집안일은 정말 애들 장난처럼 느껴졌다.

준비 운동이라고 부르기에도 미안할 정도였다.



설거지가 끝나고 나서 바닥을 쓸고, 걸레질하는 홀청소까지 마치고 나면,

교회에서 하는 설거지와 청소는 정말 쉬워 보였다.



(그렇다고, 쉬우니 '너가 해줘'라고 하면

신앙심으로 하는 개인의 일을 타인에게 떠넘기는 것만큼이나 믿음이 없는.. 어쩌고 저쩌고 등등

나만의 반박 멘트도 만드는 중이다.)



아무튼, 나는 교회에서 설거지를 할 때,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을 설거지에 대해서만큼은 절대 하지 않는다.



교만해서, 혹은 예의를 상실해서 그런 게 아니다.

대부분의 설거지를 내가 다 끝내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그건 '수고'라고 부를 만큼 힘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지만.



처음 구내식당에 왔을 때는 1인분 몫을 해내기도 힘들었지만,

그만두기 5일 전쯤에는

나 혼자 주방 설거지 시간을 15분이나 단축시키는 기염을 토했다.



덕분에, 자신감도 한층 더 쌓인 것 같다.



밑에 쓰인 에피소드와 같은 일 말이다.




큰 이모:뭐~야 오늘 왜 이렇게 일찍 끝냈어? 설거지가 빨랐나?

초보 엄마: 오늘 빠른 이유가 있어요

초보 엄마의 눈길이 나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초보 엄마: 오늘 대영 씨가 엄청 빨리 왔다 갔다 했거든요.

큰 이모: 정말~? 하.. 우리 아들이 일을 잘하게 되는데, 이제 가버리면 참 그리울 거야. 숟가락, 젓가락을 이제 누가 옮기냐고..

나: 하하, 좋은 사람이 오겠죠.! 이게 다 오늘 실장님이 쏜 커피, 레모네이드 덕분이죠.

큰 이모: 나는 좋은 사람 말고, 힘센 사람이 왔으면 좋겠다. 그때처럼 능구렁이 말고

초보 엄마: 참.. 이제야 겨우 손발이 맞고, 1인분 이상을 할 때쯤에 가다니.. 배신자!

흐뭇한 미소가 입가를 그리며, 이곳에서의 추억을 짧게나마 음미하는 순간이었다.

큰 이모: 나중에 일 없으면 시장님께 전화해서 1주일만 일하겠다고 해 ㅋㅋ

나: 알겠습니다 이모 ㅋㅋ


손이 아파서 파스라도 붙였다.

물론 설거지&청소 실력과 등가교환한 것은

손에 존재하는 모든 근육과 뼈에 골병이 들고,

부었다.



그래서 알바를 그만두는 다음날, 병원을 가볼 것이다.

앞으로도 글은 계속 쓴다.


책도 계속 읽고 있다.

최근 <매미 돌아오다>라는 추리 소설에 빠졌다. 강력 추천한다.


그거와는 별개로,


오늘.


한 달 만에 간 도서관에서 읽는 책이

어쩌나 데이트 갔던지,

오늘은 이만 글을 마친다.


그리고 글 보면 구독 부탁드려요.

이야기 나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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