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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

by 김추억 Mar 17. 2025
담양 소쇄원 협문에서담양 소쇄원 협문에서


"어머니, 잠시 여기서 입 맞추고 가시지요."
"뭔 소리여?"

아이가 가리킨 곳에 입술 모양 비슷한 돌이 있더라
내가 입을 맞추려 하니 세상의 이목이 집중되더라
먼저는 해가 노을 지기를 멈췄고
일순간 대나무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경직된 채로 나를 보더라
배롱나무는 오글오글 몸을 배배 꼬더니 눈을 아주 크게 뜨더라
물소리를 들어보니 콜콜콜 흐르던 물줄기가 갑자기 졸졸졸 느리게 흘러가더라
까치가 난리 났다
깍 깍 깍 깍 소리가 인간의 언어로는 어 머 어 머 소리더라
그 상황에서 입맞춤은 차마 못 하겠더라
건조한 입술에 묻은 흙을 그저 손으로 털어주었는데
갑자기 그 입술 위쪽으로 코와 눈과 얼굴 윤곽까지도 머릿속에서 그려지더라
여자였네, 시집도 안 간 처녀였네
큰일 날 뻔했었네
그런데 다 어디 가고 어쩌다 입술만 남았으려나
할 말이 남았는가 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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