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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와 천재

by 김추억

예전에 직장 생활할 때의 일이다. 뜻하지 않은 성과를 이루어낼 때면 인재(人才)라는 소리를 듣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손사래를 치며 가슴 깊이 우러나오는 가장 겸손한 말을 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저는 인재가 아니고 천재(天才)입니다.”


사람들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다가도 ‘제가 하는 일은 항상 하늘이 돕는 것 같아서요’라는 뒷말을 듣고 나면 모두 웃으며 수긍했다.


자칭 천재라는 말이 자칫 교만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 말은 내가 세상에서 쓸 수 있는 가장 겸손한 표현이다. 모든 일을 이룬 것이 내 힘과 능력이 아님을 인정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정말 천재가 될 수밖에 없다. 선택권이 없다. 인재가 되려면 많은 학식과 능력을 갖추기 위한 노력과 에너지가 필요한데 나는 갈수록 쇠약해지고 있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글을 읽고 글을 끄적이는 일이다.


내가 아프지 않았다면 나는 어디서 어떤 인재가 되어 있을까. 내가 아프지 않았다면 이 공간에서 글을 쓰고 있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막다른 골목에서 글을 쓰게 만든 하늘이 다행히 나를 돕고 있다. 끄적이는 운명으로 태어났을까. 아무런 고충 없이 이상한 글들이 써진다. 오늘 어떤 글을 쓸 것인지 고민도 하지 않는다. 정해진 주제 하나 없어도 곧 생겨날 것을 알고 있다.


지금 같은 추위에는 외출을 했다가는 큰일이 난다. 온종일 갇혀 있지만 그래도 갈 곳은 있다. 저녁식사 후에 어슬렁어슬렁 남의 글과 사진을 보다가 영감을 얻고 짧게는 5분 이내, 길게는 30분 안에 글쓰기를 마친다.


작년까지만 해도 하늘의 도움을 굳이 받지 않는 인재가 부러웠는데 이제는 평범한 일상의 재주를 가진 범재凡才들이 부럽다. 인재가 될 에너지가 현재 없다. 일상생활의 어려움이 가득한 나는 범재도 될 수 없는 운명이다.


하늘의 재주꾼, 고약하고 겸손한 천재밖에 될 수 없다. 어쨌거나 오늘도 하늘이 도와서 이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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