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의 골절된 꼬리뼈가 잘 붙었다. 골절된 발가락도 성장판을 덮지 않고 잘 붙었다.
이렇게 하나의 사건이 과거 속으로 지나갔다.
휴~
딸아이는 학생수가 별로 없는 학교에서 합창단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6월 중순에 열리는 대회에 나갈 준비 중에 뼈가 골절되었으니... 딸아이는 한동안 실의에 빠져 있었다. 5월 5일에 있었던 큰 행사에도 나가지 못했다.
할 수 있다고, 하나도 안 아프다고, 제발 어린이날 행사무대에 서게 해달라고 애원하다가 또 짜증 내다가 급기야 눈물을 흘리던 딸아이였다.
동요만 부르면 상관없는데 격한 율동이 동반되기에 가당치도 않은 딸아이의 부탁을 외면하고 외면해야 했던 나도 지쳐버렸다.
딸아이는 목청이 크고 춤을 좋아하다 보니 또래에 비해 춤도 잘 췄다. 그래서 합창단의 큰 보탬이 되어주다 보니 합창단 지도 선생님 또한 근심이 크셨다.
병문안을 오셔서는 바로 의사 선생님을 찾아가셨던 선생님이셨다. 언제 뼈가 붙고 언제부터 연습을 할 수 있냐고 여쭤보시려고 그러셨단다.
열정이 max이신 선생님이셨다.
문제는 대회 참가 최소 인원을 채우지 못하면 채점할 때에 채점관의 점수와는 상관없이 자동 감점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노래를 아무리 잘하고 춤을 아무리 잘 춰서 감동이 있더라도 감점 요소를 안고 대회를 준비하고 출전한다는 자체가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시작부터가 감점이라니...
엑스레이 찍고 케스트를 풀던 날, 딸아이는 무척 기뻐했다. 의사 선생님께로부터 합창연습을 해도 된다라는 설명을 들었기 때문이다.
하기 싫은 공부는 떠밀어도 안 하지만 합창 연습 시간만은 칼 같이 지키는 딸아이였다. 겨울 방학 때도 자기가 알아서 합창연습을 하러 학교에 갔다. 그 시간만은 다른 일로 겹치지 않게 신경을 쓰는 딸아이였다.
합창 지도 교사 선생님은 아이들이 특출 나게 잘하는 건 아니지만 아이들이 합창 연습시간을 너무나도 좋아하고 무척이나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시고서 거기서 희망을 봤다고 하셨다.
딸아이의 연습시간은 누적되어 갔고 그렇게 오매불망 대회날을 손꼽고 있다가 학교 현장체험에서 루지를 타다 부상을 당했으니 그 절망감이 어찌나 컸을지 싶다.
나도 하고 싶은 게 많았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그러나 못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들 속에서 나는 딸아이처럼 저렇게 눈물을 흘려본 적이 없다. 어느 순간 상황의 벽에서 좌절을 당연하게 여겼던 나였다.
딸아이가 다시 연습에 참여하고 대회날을 손꼽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고 감사하다. 무대 위에서 누구보다도 기쁨이 클 우리 딸이다.
"엄마, 합창 선생님이 요즘 많이 예민하세요."
"많이 예민하시니?"
"네, 대회가 가까워 올수록."
엊그제 오후 6시에 학교 강당에서 합창 연습을 딱 40분만 한다는 지도교사 선생님의 메시지가 있었다. 딸아이는 자신의 모습을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었는지 나를 데리고 갔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아이들의 대열, 힘찬 목소리에 이건 대상감이다 싶었다. 작은 학교, 작은 합창단이 전국대회에서 기적을 일으킬 수 있게 되길 나는 강당 뒤에서 조용한 마음으로 깊게 응원했다.
요즘 우리 딸, 행복하다.
하고 싶은 걸 하고 살아서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