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딸, 긍정적이다 못해 매우 낙천적이다.
결코 웃지 못할 상황인데 웃기다.
엊그제 딸아이 학교에서 놀이공원의 루지를 타러 갔다.
딸아이는 며칠 전부터 굉장히 설레어했다.
그리고 당일 아침에 엄마가 깨우지 않아도 스스로 일찍 일어나 등교를 했다.
오후에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학교에서 전화가 걸려오면 어쩐지 느낌이 싸하다.
딸아이가 루지를 타다가 다쳐서 양호실에서 다친 부분을 응급처치했단다. 병원에 가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 선생님께 잠깐 아이와 통화할 수 있냐고 했더니 딸아이가 엄마 목소리를 듣고는 운다.
여태 안 울고 있었는데 엄마 목소리를 들으니 눈물이 난다고 했다.
딸아이가 생각보다 상태가 심각했다. 2층에 못 올라가겠다고 1층에 서 있었다. 부축해서 집 앞에 있는 종합병원에 갔다.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다시 CT를 찍으란다. 꼬리뼈 골절, 오른쪽 네 번째 발가락에 금이 갔는데 성장판을 지나가서 발가락이 더는 자랄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앉는 것도 힘들어하는 딸아이였고 내가 휠체어를 끌다가 아주 살짝 문짝에 부딪혔는데 자지러진다.
딸아이의 헬멧이 깨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찔했다. 우리 딸이 살아있는 것이 기적 같아서 너무나 감사했다.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았고 루지에서 몸이 벗어나 붕 떠서 쿵 떨어졌다고 했다.
딸아이는 그 와중에 의료진들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다 한다. 의사 선생님께 협박 아닌 협박을 하는 딸아이 었다.
"선생님, 웬만하면 수술은 안 하는 쪽으로 하시죠."
"응, 그래그래. 수술은 안 해도 되고 한 달 정도만 최대한 움직이지 않으면 될 것 같아."
아이 다리에 반 깁스를 하고 채혈을 하러 갔는데...
"그런데 꼬리뼈 부러진 거랑 피 뽑는 거랑 무슨 상관관계가 있을까요?"
"입원 절차야."
딸아이는 그 와중에 깁스 사진을 찍어서 친구들에게 보내는 여유를 보였다.
딸아이 소변 검사 중에 속옷에 피가 묻어 있는 걸 보고 나는 기겁을 했다. 산부인과 진료를 받아야 했다. 처녀막이 충격에 의해 찢어진 것 같다는 소리를 아이가 듣고 그게 뭐냐고 물어보는 딸아이 었다. 대충 설명을 해주니 딸아이는 매우 쿨하다.
"어차피 한 번은 찢어지는 거였네. 나는 좀 일찍 찢어진 거네. 맨날 자전거 타는 세똥이도 벌써 찢어졌을 수도 있겠고만. 엄마, 너무 그렇게 호들갑 떨지 마세요."
딸아이가 일찍 잠들었다. 어찌 그 고통을 참고 있었을까 싶었다. 루지를 첫 타임에 탔고, 사고가 있었고, 친구들이 다른 놀이 기구 타고 놀 때 자기는 아파서 구경만 했단다.
음료수 하나를 쓸쓸하게 사 마시려는데 직원의 표정이 띠겁고? 반말을 찍찍해서 기분이 나빴단다. 그래서 옆에 무슨 레고로 글씨 쓰는 게 있었는데 '직원 싸가지'라고 적고 왔단다.
어제는 딸아이 컨디션이 사고 첫날에 비해 좋아 보여서 구체적으로 사고 현장에 대해 물어봤다.
"뽀짝아, 루지에서 붕 떴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어? 날았다면서. 날았을 때 기분이 어떠든?"
"그렇게 많이 날지는 않았어요. 참새만큼 날았어요. 참새 엄마 정도만큼만 날았어요. 몸이 붕 떴을 때 아, 망했다! 그러면서 눈물이 나려고 했는데 눈물은 안 나오더라구요. 나 때문에 위에서 다 막혔고 안전 요원들이 서로 무전 치는데 그게 미안했어요."
"야, 다친 네가 중요하지, 뭔 그런 생각까지 다했냐."
"쿵 떨어지는 순간에 엉덩이가 용광로 150도에 세 번 돌리고 나온 뜨거움이었어요. 설사가 나오나 했어요. 그때 괄약근 제어 조절기를 써버렸어요. 일 년에 한 번밖에 못쓰는 괄약근 제어 조절기인데 아, 아껴 써야 하는데 써버려서 이제 남은 일 년 조심해야 해요."
딸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교장 선생님과 통화를 했다.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 말씀드렸다. 야생마인 딸아이, 한 달은 꼼짝없이 휴식이다.
딸아이가 병원밥이 신통치 않아 배달 앱을 휴대폰에 깔게 해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배달 앱 속에 음식 사진을 보며 행복하고 싶단다. 현대판 자린고비를 찍고 싶었나 보다. 미성년자가 배달 앱을 깔려면 부모가 먼저 깔아야 해서 나의 휴대폰에 배달 앱이 깔리고야 말았다.
외삼촌이 거액을 딸아이에게 송금해 줬다. 딸아이는 몇 달 전 아빠를 졸라서 계좌를 하나 만들어 놓았었다.
딸아이는 외삼촌이 보내 준 용돈 금액이 찍힌 토스뱅크 거래 내역을 캡처해서 친구들에게 보냈다.
[이게 바로 우리 외삼촌의 금융치료다. 금융치료 스케일 좀 봐라.]
요즘 우리 딸, 아픈 중에 행복하다. 긍정적이다 못해 매우 낙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