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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 파이터

by 김추억

요즘 우리 딸은 일요일만 되면 푸드 파이터가 된다. 친구들과 도장 깨기 하듯 식당 깨기? 비슷한 것을 한다.

금요일부터 그 사실을 내게 미리 공지해 준다.


"엄마, 저번에 아빠랑 갔던 뷔페집에 친구들이랑 일요일에 갈 건데요, 혹시 거기 태워다 줄 수 있어요? 오픈런을 해야 하는데요."


"몇 시 오픈인데?"


"11시요."


"알았어. 데려다줄게."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딸아이는 친구들에게 이 사실을 전화로 공지한다. 우리 엄마가 뷔페집에 데려다주시기로 했으니까 일요일 10시 반에 학교 앞에서 모이자는 공지사항이었다.

나는 문득 다른 아이들의 엄마나 아빠도 있을 텐데 왜 기사가 나여야 하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근데 다른 어머님들은 뭐 하시니? 왜 엄마가 선택된 거니?"


"엄마들 중에서 엄마가 제일 착해요."


사실 집이 바로 학교 앞이다 보니 친구들이 우리 집을 방앗간 드나들 듯 다닌다. 그래서 아무래도 딸아이 친구들은 나를 편하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호의가 호구? 가 될 까봐 살짝 조심스럽기도 하다.


당일 아침, 그동안 눕혀 놓았던 자동차 뒷좌석을 폈다. 오랜만에 8인승? 자동차로 변신을 했다.


자동차 안에서 아이들의 대화들이 너무 순수해서 웃음이 났다.


너 망고스틴 먹어봤어?

너 리치 먹어봤어?

나는 먼저 뷔페 가면 꼬마김밥부터 먹어.

너 그게 무슨 뷔페에서 꼬마짓이니?

나는 초밥이랑 횟감부터 먹는다.

나 오늘 목표는 네 접시로 정했다.

제한시간이 1시간 40분인데 무슨 네 접시야?

나는 여섯 접시.

나는 여덟 접시.


나는 뷔페 가격이 궁금해져 아이들에게 물어봤다. 초등은 15,000원, 중학생부터는 22,000원, 성인은 33,000원이라고 했다.

사실 뷔페 가서 먹는 양으로 치면 나는 15,000원, 딸아이는 33,000원을 받아야 마땅하다.


뷔페집 앞에서 아이들을 내려주자 아이들은 내게 감사인사를 얼른하고 진짜 달리기 시작했다. 오픈런의 현장을 직접 눈앞에서 목격했다.


잠시 후, 딸아이가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무슨 우정 인증 같은 손가락 별을 만들었다 싶지만 내가 봤을 때는 '오늘 뷔페 파이팅하자'는 결의처럼 느껴졌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직원분께서 성인은 없냐고 물어봤다고 한다. 그리고 딸아이는 초밥을 산처럼 쌓아서 먹었다고 한다. 자꾸 옆테이블에서 사람들이 힐끗힐끗 자신과 친구들을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고 한다.


이제 딸아이의 초등시절도 1년 반 남짓 남았다. 뷔페, 놀이공원, 목욕탕, 찜질방 등등 이곳저곳에서 초등요금을 봤을 때에 신나게 추억을 쌓고 다니는 딸아이의 모습이 흥미롭고 조금은 부럽기도 하다. 나 때는 그렇게 놀 수 있는 생각자체를 못해봤기에.


딸아이는 친구들과 놀러 갈 때 나에게 용돈을 달라는 소리를 안 한다. 당연히 자기 용돈으로 모든 걸 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딸아이는 노래방에서 친구들과 N빵?(N분의 1을 뜻하는 것 같다.)으로 만원을 지불하고 두 시간 동안 노래를 불렀단다. 그리고 두 명의 친구들을 집에 데려와서 2학기 임원선거 포스터를 제작했다.

갑자기 배가 고프다는 딸아이였다. 라면을 끓였다.

친구들과 라면을 무섭게 먹었다.

푸드 파이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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