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적 있는가. 우울하거나 너무 힘든 하루를 보낸 끝에 맛있는 음식으로 기분이 좋아진 적이? 아니면 금요일 밤 동료들과 치킨에 맥주 한 잔 마시며 일주일간 잘 보냈다고 한 주를 위로한 적이? 아마도 대부분 이 정도의 경험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정말 친한 친구와 오랜만에 기울이는 술잔이나 혹은 사랑하는 연인과 먹었던 많은 음식들도 잊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오늘은 그런 이야기를 해보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정말로 맛있게 먹은 많은 식당들을 적어 내려갔다. 그러다보니 하지만 그 곳들은 전부 내 기억속에 있는 곳이고, 또 맛있어서 기억하지 딱히 추억이 되는 곳은 아니다. 물론 지금 당장이라도 친구가 그 식당들에 데려다 달라면 나도 헐레벌떡 짐을 챙겨 전국 어디로든 떠나고 싶을 정도의 맛이긴 하다. 그럼에도 이 음식들을 적지 않는건, 최소한 이 공간은 미각을 건드리기 보다 생각을 건드리는 곳이길 바래서이다.
이제야 생각이 난다. 대전 성심당 근처에 커닝이라는 카페가. 그 곳에서 먹었던 수박주스와 초당옥수수라떼. 그리고 카이막을 친구에게 처음 맛보여준 장소이기도 하다. 그땐 아마 사이가 서로 좋았나? 이제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행복했던 기억은 남아있다. 그런 추억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창 밖의 사람들을 보며 맛있는 음식에 눈이 희둥그레 떠지며 옆에선 좋은 샴푸 향이 느껴지는 순간. 또 이 순간이 끝나지 않을 것 처럼 여겨져 딱히 추억이 되지 않을거라 생각했던 그런 순간 말이다.
이제는 또 부산이다. 내가 주로 있는 장전이 아닌 화명에 장미를 보러갔던 때이다. 날은 너무나도 덥고 서로 좀 지쳐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사진을 많이 찍고 꽤 행복했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우연히 들어간 삼겹살 집에서 뭐가 그렇게 맛있게 느껴졌는지, 서로 대화도 하지 않고 허겁지겁 먹었다. 배가 그렇게 고팠던건 아니다. 그냥 서로가 너무 편했던 것 같다. 삼겹살집에서 누구랑 그렇게 편하게 먹을 수 있을까. 참 특이하게 삼겹살집에 추억이 많은 것 같다. 그저 둥근 판에 다 구워진 삼겹살이 나왔을 뿐인데 말이다. 그냥 그랬는데, 지나고 보니 다시 가기 쉽지 않더라.
화명의 어느 고깃집
서울로 한 번 가볼까. 누구나 아는 BHC의 뿌링클을 먹었다. 가끔 시켜먹긴 했지만 그 날은 좀 특별했다. 그냥 서로 어떤 감정인지도 모른체, 서로가 모르게 서로에 대한 노력을 하는 순간이었다고 기억된다. 하루종일 광화문을 걷다가 중간에 식혜를 먹기도 하고, 또 서점에 들어가 서로 어떤 책을 읽고 싶은지 하루종일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러고 숙소에 돌아와 배가 많이 고프지도 않은데 뿌링클에 치즈볼까지 시켰다. 평소엔 항상 남겼는데 무엇이 우리를 그렇게 허기지게 만들었을까, 남김없이 다 먹어버렸다. 아마 나는 혼자서 뿌링클을 먹을 일은 다시는 없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여수로 떠나보자. 풀빌라를 처음 가보기도 했고, 또 운전해서 처음 여행을 가는 곳이기도 했다. 이 곳에서 했던 물놀이도 기억나지만, 아마 간장게장을 처음으로 맛있게 먹었다는 사람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여수는 꽤 자주왔고 또 간장게장도 자주 먹어봤지만, 왜 꼭 이 말이 기억에 남을까. 대전에서 초밥을 좋아하게 되고 여수에선 간장게장을 맛있게 먹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가, 나도 꼭 그 식당에 다시 가고싶은 마음이 든다. 최상의 맛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주, 많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긴 한가보다.
음식에는 그런 힘이 있다. 그 자체로도 강한 위로를 주지만, 기억과 합쳐지며 하나의 추억으로 남게 된다. 추억은 꼭 좋은 기억이 아닐지도 모른다. 언제 떠올리냐에 따라 아프기도 행복하기도 하다. 음식도 그렇다. 어느 날 정말 맛있게 먹은 것이 다음 날 아무것도 아닌 맛이 되는 경험을 해본 적 있는가. 삶은 그냥 그런 것이다. 우리의 경험에 따라 기분이 결정되는게 아니라, 기분에 따라 경험이 결정된다. 모든건 '잘' 생각하는 것에 달려있다. 그러니까 좋은 말보다 맛있는 음식이, 맛있는 음식보단 또 기억나는 사람이 건네는 위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