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왕징 꽁위엔_아직도 처음인 것이 이렇게나 많다.
40년을 살았지만 처음인 것이 아직도 많다. 해외여행도 해봤고, 어학연수도 다녀와봤지만, 내 새끼들을 데리고 외국에 나와서 살아보는 것은 처음이다. 그래서 우리(나와 비슷한 처지의 수많은 엄마들)는 우리 스스로를 ‘주재원 와이프’라고 칭한다.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 비자로 외국에서 살아가야 하고, 졸지에 문맹으로 전락하여 표지판 하나 제대로 읽지 못하며,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상태로 중국에서 살아내야 한다. 중국재료와 한국재료를 섞어서 한식을 뚝딱 만들어 가족에게 먹여야 한다. 어디서 무슨 정보를 얻어야 할지 알 수 없어 걷고 또 걷는다. 동네 커뮤니티에서 구전되어 오는 정보를 토대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여기 기웃, 저기 기웃 하며 제일 처음 가는 공원이 바로 따왕징(大望京) 공원이다. 한국어로 읽으면 대왕징 공원, 중국어로 읽으면 따왕징 꽁위엔으로 들리지만, 왕징의 우리들은 따왕징 공원이라고 부른다. 중국어와 한국어 중간 그 어디쯤, 그게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베이징에 사는 많은 한국인들이 왕징에 모여 산다. 베이징의 한인타운인 왕징은 조양구에 위치하고 있다. 따왕징공원은 왕징에 사는 사람들이 아마도 제일 먼저 방문해보는 공원일 것이다. 한달이나 걸리는 국제이사 후 집정리를 마치고 온갖 건강검진과 비자문제가 해결되고 숨을 돌릴 때쯤, 간신히 가볼 수 있는 곳이 이곳이다. 공원에는 포스코에서 이 건물 부지를 기부했다는 표지판과 함께 한글 안내판을 볼 수 있고, 알 수 없는 뿌듯함을 느끼며 중국에도 공원이 있구나 정도를 기억할 뿐이다. 여기가 내 집과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동서남북 중에 어디쯤 있는 건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보통 주재원들이 들어오는 6-7월이나 12-1월쯤 이 공원에 처음 들르곤 하는데, 덥거나 추운 베이징 날씨에 기겁을 하며 공원입구까지 잠깐 들러보고는, 에어컨이든 히터든 인공바람이 나오는 실내를 찾아 공원을 제대로 돌아보지도 않고 돌아오는 사람들이 많다. 나 또한 그랬으니까.
그리고 베이징에 온지 6개월쯤 지난 후였나, 베이징 국제학교의 긴 여름방학동안 아이들을 끌고 따왕징 공원을 산책했다. 부처님이 튀어나올 것 같은 연꽃공원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배가 터질 것 같은 물고기들이 아이들이 던져주는 과자를 먹으며 물위의 사람들과 눈을 맞춘다. 그 옆에 과자 부스러기를 얻어먹고 싶은 크고 작은 새들이 총총총총 뛰어다닌다. 베이징에는 지저분한 비둘기는 없다. 새들도 예쁜 아이들이 많은데, 정부에서 예쁘게 개량한 아이들만 풀어놓은 것인지 원래 살던 아이들인지는 알 수 없으나, 신기하게도 봄이되면 공원의 호수에는 어디서 왔는지 모를 새하얀 오리들과 귀여운 새끼들이 떼를 지어 다닌다. 겨울쯤 되어 호수가 얼면 관리인이 잡아먹는 다는 소문이 무성하지만, 모든 것이 그렇든 베이징에 무엇이 사실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유난히 비가 많이 왔던 작년과 올해 여름은 사우나보다 더 숨막히는 더위였지만, 땀을 뻘뻘흘리며 따왕징공원에서 뛰고 걸어다니며, 나는 문맹인 주제에 잘도 다녔다.
땀 흘리며 공원을 걸은 덕분이었을까? 국제학교 방학이 끝나고 새학기가 되면 전 세계의 바이러스가 국제학교 교실에 모여 서로 감기를 교환하곤 하는데, 우리 아이들은 아프지 않았다. 감기가 스쳐지나갔다. 아픈것이 가장 두려운 해외생활이다. 무서운 병원비와 성분을 알 수 없는 약을 받아서 내 아이에게 먹여야 할 때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 공원을 땀흘리며 걸은 덕분에 아이들이 아프지 않았다(라고 믿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나는 공원을 믿기 시작했다. 베이징에서 공원은 나에게 우리 가족의 건강을 지켜줄 운동장이고, 내 마음을 알아주는 큰 나무이며, 좋은 사람과 함께 걷고 싶은 길이었다. 그리고 그 길에서 많은 위안을 얻었다. 그리고 긴 걸음 끝에 글을 쓸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내가 걸은 이 길을 누군가 걸으며 또 다른 삶의 위안과 희망을 발견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써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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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왕징공원의 또 다른 좋은 점은 우리 동네에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포스코빌딩에 있는 작은 도서관에 간 김에 공원을 둘러보거나, 오는 길에 보성화팅 옆에 있는 궈슈하오 슈퍼마켓에 들러 장을 볼 수 있다. 올해는 호수공사를 한참 하는 바람에 연꽃구경을 하지는 못했지만, 다음해에는 할 수 있을 거라 믿어본다. 날씨 좋은 봄, 가을에는 서커스나 작은 축제도 열리는 것 같다. 포스코빌딩 앞에는 한국인들이 좋아할만한 맛집이 여럿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