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그늘 내린 밭 귀퉁이에서 할머니와 참깨를 턴다.
보아하니 할머니는 슬슬 막대기질을 하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집에 돌아가고 싶은 젊은 나는
한 번을 내리치는 데도 힘을 더한다.
세상사에는 흔히 맛보기가 어려운 쾌감이
참깨를 털어 내는 일엔 희한하게 있는 것 같다.
한 번을 내리쳐도 셀 수 없이
솨아솨아 쏟아지는 무수한 흰 알맹이들
도시에서 십 년을 가차이 살아 본 나로선
기가 막히게 신나는 일인지라
휘파람을 불어 가며 몇 다발이고 연이어 털어 낸다.
사람도 아무 곳에나 한 번만 기분 좋게 내리치면
참깨처럼 솨아솨아 쏟아지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정신없이 털다가
"아가, 모가지까지 털어져선 안 되느니라"
할머니의 가엾어하는 꾸중을 듣기도 했다.
엄마는 팔순하고도 다섯이시다.
사 남매를 두셨지만 제일 가까이 사는 둘째 딸인 내가
병원 모시고 가기, 장보기 등 이런저런 엄마의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특히 연중행사로 멀리 사는 자식들을 챙긴다며
들기름을 짜러 방앗간에 가시는 날이면 두어말 넘는 깻자루를
실어다 방앗간에 갖다 주는 일과 고소하게 짜낸 기름병을
싣고 오는 일 역시 나의 몫이다.
대부분의 어르신들이 그렇듯 아침잠이 없는 엄마는
출근 준비에 바쁜 조금은 이른 아침에 전화를 해서
갑작스러운 부탁을 하실 때가 있는데,
그런 날은 나도 모르게 짜증이 밀려와
거친 말이 툭툭 나오기도 한다.
하루는
녹내장까지 앓고 있어
눈이 침침한 엄마 대신 싱크대와 가스레인지 주변,
화장실 등 대청소를 시작하는데,
또 스멀스멀 짜증이 올라왔다.
왜 나만 엄마를 보살펴야 하는가?
가까이 산다는 이유로?
딸이라는 이유로?
그러면서 마음 한 편에서 드는 생각은
이제 엄마는 늙고, 힘없고, 잘 알지도,
예의도 잊어버린 사람이
되었구나로 치우쳤다.
이 시에 나오는 손자의 마음 같지 않았을까.
도시에 살면서 젊어서 힘도 좋은,
그래서 참깨를 신나게 내리치며
할머니 보다 금방 끝낼 수 있을 것 같은 데다,
막상 해보니 살아가는 일도 참깨 터는 일처럼
솨아솨아 풀릴 것 같은 기분.
모가지까지 털어져선 안 된다는 할머니의 말은
참깨의 가장 중요한 열매,
마지막까지
털어져서는 안 되는 그 무엇이
삶에도 있다는 것이이라.
성인이 될 때까지
아니 성인이 되어서도 엄마에게 징징거렸던 나를,
언제나 따뜻하게 품어주었던 엄마.
그 엄마의 사랑이 나에겐
참깨의 모가지였음을,
시 속의 꾸중이 나를 향하는 월요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