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도
예순 중반의
유승도 시인은
창작 노동가로 강원도 영월 망경대산 중턱
외딴집에서 아내와 함께 살고 있다.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번번이 실패한 신춘문예.
생계를 위해 막노동판과 탄광촌,
심지어
옥돔잡이 연안어선도 마다하지 않았던 그.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가는 것처럼
세상을 등지고 살았던 청년의 때에
자꾸만 안으로 숨고 싶었던 시인을
새 한 마리가 이끈다.
온몸으로 지저귀며.
그렇게 시인은 1995년 문예중앙 신춘문예에
'나의 새'가 당선되면서
계속 쓸 수 있는 힘을,
세상을 담담하게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되찾았다.
최근에 읽었던 책
마리나 반 주일렌의
'평범하여 찬란한 삶을 향한 찬사'에 이런 문장이 있다.
대수롭지 않은 삶을 조명하는 것이 문학의 역할이다. 우리는 자신이 이미 이룬 것과 이루지 못한 것을 비교하며 이루지 못한 것에 더 애석한 감정을 드러낸다. 살아보지 못한 삶이 왜 우리를 피해 가며, 그 삶은 왜 절대로 실현되지 않는지에 의문을 제기한다. 존재하지 않는 삶, ‘그렇게 될 수도 있었던 또 다른 나’는 왜 그토록 우리를 괴롭히는 것일까?
시인도 자신이 원했다면
세상에서 말하는 성공과, 행복을 잣대 삼아
넓은 길로 갈 수 있었으리라.
시인은
꼭 삶이 유의미할 필요도,
꼭 행복할 필요도,
꼭 존재의 이유를 찾아 헤맬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저 새 한 마리가 나에게 말을 걸어주고,
나도 새에게 말을 걸 수 있는 마음만으로도
생명력을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궁금해진다.
시인은 그 새와 얼마나 많은 대화를 했을까.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자신의 내면을 바라봤을까.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질문을 했을까.
이런 질문을 수없이 반복하며
넓은 길이 아닌 좁은 길을 선택한 모든 사람에게
감히,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