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작가의 중요한 능력
내가 막내작가 일이 익숙해졌을 때의 일이다. 그때는 '과도기'인 만큼 이런저런 생각을 전부 했던 것 같다. 그때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막내작가한테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소통' 능력이다. 조연출도 해당이다. 방송가 막내들은 촬영감독, 믹싱감독, 음향감독, 그래픽감독, 자막감독, 피디님 1, 피디님 2, CP님, 부장님, 메인작가님, 선배작가님들과 같이 일을 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막내'라는 점이다. 어떤 마감기한을 조율할 때 피디님과 감독님들 사이에서 난감한 경우가 많다. 자막 하나를 넘기더라도, 피디님은 자신이 꼼꼼히 보고 싶어서 이틀 후로 마감기한을 늦추고 싶어 하면, 자막감독님은 여유로운 작업기간 확보를 위해 바로 내일을 마감기한으로 잡으시는 경우가 있다. 보통 마감일은 정해져 있지만, 휴일이 포함되는 경우에 그렇다. 이 가운데서 조율하는 것은 바로 '나', '막내작가'이다. 아다르고 어다르다는 말이 있듯, 쿠션어라도 붙여 서로의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중간에서 전달을 해야 한다.
"항상 좋은 자막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독님,
저희가 이번 연휴에 밤을 새워서 편집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
자막원고는 *월 *일 *요일 오후 1시까지 드릴 테니 천천히 작업하시고 주실 수 있을까요?
저희 때문에 연휴에 일하시게 되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먹으라고 과일 세트 보냅니다... "
이런 식으로 자막감독님께 전화를 드려 마음 상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만약 자막감독님이 감정이 상해서 "이럴 거면 외부에 맡겨!"라고 하면 우리는 제작비를 무리해서 써야 하고, 또 "나는 절대로 안돼! 방영날에 종편을 하든말든 알바야?"라고 하시면 우리 팀 연출진은 죽어나간다. 그렇기에 정말 최대한 감독님의 기분 상하지 않도록 말씀드려야 한다. 또 만약, 여기서 자막 감독님이 하루만 빨리 달라고 하시면 피디님께 전달하는 내용도 쿠션어를 넣어주어야 한다.
"피디님, 감독님이 가족들끼리 비행기 예약을 잡아두셔서...
11살 딸 초등학교 입학하고 여행을 간 적이 없데요...
하루만 마감을 늦춰달라고 하시는데... 원래 일정까지 꼭 해달라고 말씀드려야겠죠?"
보통 이렇게 말씀하시면, 피디님들도 자식이 있는 터라 하루정도는 일정을 미뤄주신다. 그렇다면, 이는 중간에서 조율을 잘하게 된 것이다. 최악의 상황은 자막감독님과 피디님이 만나서 이야기하신다고 하다가 아주 대판 싸워, 회차가 끝나고 두 분 중 한 명이 회사를 나가는 것이다... 조율은 정말로 중요하다.
1년 반정도하니, 나는 이 조율에 익숙해져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조율'을 통해 '관계'를 형성하면 그게 사회생활이 아닐까? 이때쯤에 방송계 사회생활이 익숙해진것도 같았다. 보도자료를 소설처럼 쓰던 나는 메인 작가님의 가르침을 받아 사실을 '보도'하는 성격의 글을 잘 쓸수 있게 되었다. 조연출, 피디님, 작가님 모두와 관계가 원만했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나도 입봉이라는 걸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