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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복 Nov 03. 2024

보조 강사를 하자! 2편(완)


 그럼 그렇지, 내가 수행할 역할은 말 그대로 ‘보조’였다. 수업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컴퓨터를 세팅하고, 수업이 끝나면 기기를 정리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수업은 모두 주 강사님이 진행하시고, 그 외 필요한 모든 준비도 주 강사님이 할 예정이었다. 왠지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이보다 더 많이 돕고 싶었는데….


 오만해!


 그쯤 생각하다 스스로가 오만하게 느껴졌다. 이게 대체 무슨 생각이야? 사람이 화장실 들어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르다더니 메일 한 통에 이럴 수가 있나? 메일 보낼 때만 해도 절실한 마음에 구구절절했고, 내 스펙이 부족하다고 생각해 조용히 지원했었다. 그런데 합격하자마자 이렇게 다른 태도라니 거만해진 스스로에게 소름이 돋았다.


 하고 싶었던 건 아이들과 그림 그리는 프로그램 경험 그 자체였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스트레칭을 했다. 마음을 다시 먹었다. 초심으로 돌아가자.


 천천히 진정하며 내린 결론은 다시 ‘욕심’이었다. 적절한 욕심이 나를 간절히 만들어 기회를 얻어냈고, 그 욕심이 흘러넘치며 오만하게 만들었었다.


 돈과 이력만 보고 지원한 건 아니었다. 아이들과 하는 프로그램을 직접 경험해 보고 싶었다. 딱 여기까지가 적절한 욕심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더 잘 해내고 싶은 마음’ ‘더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마음’ 그리고 ‘다음에 또 불러줬으면 하는 마음’과 ‘새로운 기회가 생겼으면 하는 마음’ 등이 슬그머니 나도 모르게 붙었던 모양이다. 모두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내 능력 밖의 과한 욕심이었다.


 지나친 욕심들을 흘려보내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이미 나는 욕심껏 기회를 얻었다. 지금부터는 주어진 일을 모두 잘 수행하는 데에 전념하기로 했다.


 달라진 마음으로 답장을 보내고 다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았다. 기대와 설렘과 긴장감 속에서 꿈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마음이 또 한 번 반짝이는 게 느껴졌다. 이제 한 발 내디뎠을 뿐이다.


 어쨌든 수입이 끊기면 언제든 회사로 돌아가야 하는 길을 걷고 있다. 언제까지 발버둥을 칠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다. 그런데 기회를 하나 더 잡았고, 그만큼의 프리랜서 수명이 연장되었다. 그건 도전할 수 있는 기간이 늘어났다는 뜻이기도 했다. 무척 감사한 일이었다.


 웹툰을 감독하고, 보조하고, 인스타툰을 그리고, 브런치에 글을 쓰고, 일러스트를 그리고, 포트폴리오를 업데이트하고…. 이 중 당장의 성과를 위해 움직이는 활동이 몇이나 될까? 대부분은 성과를 얻기 전까지의 도전 과정에 가깝다. 계속해서 도전하고, 기회를 얻고, 수명을 연장받아 다시 또 도전하는 일. 그 반복 끝에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이 있지 않을까? 그 모습과 과정이 스스로 보기에 부끄러운 모습은 아니길 바란다.


  내게 주어진 이 기회를 더 겸손하고 감사하게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만해지지 말자.






사람이 어쩜 이리 오만할 수 있는지,

제 이중성에 놀랐던 일이었어요.

이 부끄러운 이야기를 남기는 건,

언젠가 또 비슷한 일을 반복하고 싶지 않아서예요.


과유불급.

적당한 욕심은 저를 간절히 만들어주지만,

과한 욕심은 좋지 않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예상대로 2일에는 수업을 잘 다녀왔고,

실제로도 그 시간 속에서 저는 매우 행복했습니다.

거리가 꽤 멀었는데도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어요.

수업 하는 내내 즐거웠고, 수업이 끝나고서도 하루종일 친구에게 자랑을 했어요.

그래서 역시 저의 오만함은 잘 하고 싶은 욕심이 과해지면서 생긴 거였구나. 깨달았고,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저는 11월부터 굉장히 또 많이 바쁠 예정입니다.

정말 감사한 일이죠.


부디 11월의 제가 이때의 제 마음가짐을 잊지 않기를 바라며 올리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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