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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복 Nov 10. 2024

겨울이 오고 있다.

2월에 태어난 나도 30년 넘게 삶에 발을 딛고 있으니까



 날씨가 추워졌다. 자연스럽게 미리 사 둔 도라지차를 끓여 마시며 아침을 시작한다. 포근한 수면잠옷 차림 그대로 따뜻한 차를 한 모금 넘기고 제법 쌀쌀해진 방 안을 둘러본다. 중문을 열면 쏜살같이 베란다로 달려가던 고양이도 이불 속에서 눈을 끔뻑인다. 밤새 전기장판에 달아오른 이불 속이 포근한지 그르릉대며 쳐다만 보고 있다.


 겨울이 오고 있다. 아직 11월 초입이지만, 면역력이 약한 내겐 지금이 겨울이나 다름없다. 추워지기 시작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단어들이 있다. 크리스마스. 눈사람. 니트. 핫초코. 그리고 예산. 응?


 그렇다. 직원 중 누구도 난방비를 걱정하지 않아 따끈따끈한 사무실에서 지낼 땐 몰랐다. 연말엔 많은 회사들이 남은 예산을 소진하기 위해, 혹은 예산을 끌어오기 위해 다양한 이유로 프리랜서들을 찾는다는 걸. 작년에 프리랜서로서 첫 연말을 보낼 때 나는 그야말로 내가 화려한 작가의 길로 들어서는 줄 알았다. 그 정도로 연말엔 매우 바빴고, 그 덕분에 많이 울었다.


  작년, 가을이 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썰렁한 메일함에 문의가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었다. 이제 드디어 좀 안정화되나 싶어 기쁜 마음으로 답변을 보냈다. 그중 대부분은 재회신이 되지 않았고, 회신이 된 메일 중 절반은 취소, 절반은 진행하다가 취소되었다. 갑자기 다시 썰렁해진 스케쥴표를 볼 때쯤, 그러니까 11월에 급한 의뢰 건들이 도착했다. 물불 가릴 처지가 아니라 급하다는 말에도 덥석 물었다. 그리고 겨울 내내 새벽같이 일하다 몸살을 앓았다. 독감인 줄 착각했을 정도로 쉼 없이 콜록대며 연말을 보냈다.


 일이 있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지만, 삼십 대의 몸으로 매해 겨울마다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겨울을 두려워하지 않으려면 잘 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약해지면 마음도 약해지기 쉽고, 마음도 약해지면 우울의 늪에 빠져 흑역사들을 생성할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일이 없을 적에도 겨울에는 늘 골골대고 있었다. 선천적으로 면역력이 좋지 않은 탓이다. 가장 어릴 적의 기억을 꼽으라면 독감에 걸려 비바람을 뚫고 조퇴하던 일. 가장 고마웠던 기억을 꼽으라면 독감에 걸린 나에게 직접 배와 대추, 도라지, 꿀 등을 넣어 달여 주었던 언니. 가장 아팠던 기억을 꼽으라면 그것도 겨울의 일. 늦겨울에 태어나 매해 겨울마다 무너졌었다.


 올해는 다른 겨울을 보내겠다고 무려 올해 초부터 약속했다. 누구와? 상담 선생님과. 꽤 오래 상담을 다녔었는데, 올해 초에야 드디어 상담이 끝났다. 그때에도 나는 겨울을 보낸 후 서러워하고 있었고, 올해 겨울은 달라지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이제 드디어 그 겨울이 오고 있다.


 가을이 오기 시작하자마자 마트로 달려가 도라지차를 샀다. 전기장판을 새로 사고, 수면 잠옷을 꺼내고, 침구도 겨울 이불로 교체했다. 비타민도 빠트리지 않으려 노력하고, 조금만 으슬으슬해져도 쌍화탕을 사다 마셨다. 그 덕에 11월이 다가오도록 아직 몸살 한 번 걸리지 않았다. 원래의 나라면 10월에 이미 한 번 몸살을 앓고 추워지려는 가보다. 하는데 말이다.


 그런데 11월이 되고 나서 상황이 매우 빠르게 바뀌기 시작했다. 올해는 별로 안 추우려나? 싶었을 정도로 가을이 오고도 더웠었는데, 정말 갑자기 추워졌다. 카페에 다녀오는 길, 저 멀리서부터 만둣집의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다. 여름엔 그 옆을 지나가는 게 괴로웠는데, 이제는 되려 마음속까지 따뜻해지는 것 같아 코를 킁킁댄다.


 하나 더 바뀐 게 있었다. 작년엔 회신을 드려도 대부분 계약 불발이었는데 올해는 조금 더 이어지고 있다. 올해도 이래 놓고 별일 없을까 봐 개인적으로도 일을 많이 벌여놨었기 때문에 당혹감이 크다. 물론 당혹감보다도 감사하고 기쁜 마음이 수 배는 더 크다. 비교할 바가 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매일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이제 나도 더 바뀌어야 할 차례라 생각이 들었다. 매일 산책을 하고, 아무리 바빠도 제때 밥을 차려 먹고 자기 전엔 따뜻한 물에 샤워하고 있다. 정신이 없어도 카페에 가 생각을 비우고, 일기를 쓰고, 개인 그림을 그리며 마음도 채운다. 아주 잠깐이지만 운동과 스트레칭도 꾸준히 하고 있다. 일이 바쁘고 나를 챙긴다고 주변에 소홀해지는 건 원하는 삶이 아니다. 조금 더 늦게 자더라도 주변 사람들을 한 번씩 살피고 한 마디라도 더 건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덕분일까? 지금까지 마음은 전혀 타격이 없다. 새벽 두 시까지 퀭한 눈으로 일하고, 아침에 일어나 기지개를 켜면서 골골 앓는 소리를 내지만 마음은 든든하다. 피곤하고 힘들 때면 우울하게 축 처져 있지 않고 그냥 소리 한 번 치고 만다.


 “피곤해! 힘들어! 그래도! 일하기 싫은 건! 아니야!!!“


 이렇게 작은 일상들을 지키다 보니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겨울이 마냥 무섭지만은 않다. 사실 전혀 두렵지 않다. 겨울 내내 행복하고 건강하면 좋겠지만, 그건 봄 여름 가을에도 어려운 일이다. 분명 힘든 시기도 있겠지만, 어쩐지 그냥 막연히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겨울에게는 진 기억밖에 없었는데 올해부터는 이겨내 보고 싶다.


 정말 이겼는지, 비겼는지, 졌는지는 올해가 지나고서도 2개월이 더 지나 봐야 알겠지만 약간의 긴장감과 기대감이 든다. 스스로를 응원하고 싶은 마음에 더 그렇다. 내가 잘 이겨내길 바라는 마음이 생겨났다. 봄에 상담을 끝내며 다진 내 마음의 땅 위에 어느새 새싹이 돋아나기 시작했는가 보다. 하필 추운 겨울에 태어난 새싹이 안쓰럽지만, 2월에 태어난 나도 30년 넘게 삶에 발을 딛고 있으니까 분명 이 새싹도 자기만의 속도로 피어오르길 기대한다.


 힘내자. 파이팅!



 

오늘은 글을 못 올리려나 싶었는데,

23:30 에 기적처럼 글을 올리네요.

그만큼 정말 바쁜 날들입니다.


작년과는 다르게 바쁜 시기를 울지 않고 씩씩하게 보내고 있어요.

그런데 이 글의 초고를 쓰던 때와 다르게 이제는 슬슬 몸살의 징조가 보입니다.

어서 마무리하고 오늘도 따뜻히 잠들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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