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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복 Nov 17. 2024

나는 오늘도 딱 내가 행복한만큼의 힐링툰을 그린다.

힐링툰을 그리는 이유


 

 인스타툰에는 여러 장르가 있다. 일상툰이 가장 많은데 그 안에서도 개그, 연애, 부부, 육아, 썰툰 등으로 나뉜다. 그 외에도 공포나 호러, 로맨스 등을 연재하는 작가님들도 계신다. 힐링툰은 가장 수요가 없고, 팔로워 증가도 더딘 장르다. 내가 그리는 행복을 전하는 말복툰이 바로 힐링툰이다.


 가장 오래된 첫 번째 기억 때부터 얼마 전까지 줄곧 마음이 아팠었다. 물론 여기서 마음이 아팠다는 건 우울증이었다는 뜻이다. 굳이 담지도 않겠지만,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일들이 있었다. 어렸을 때가 마냥 우울하기만 했냐면 그건 아니지만, 원래 우울증이라는 게 그렇다. 신나게 놀다가도 집에 혼자 돌아가고 나면은 언제 그랬냐는 듯 끈덕진 슬라임이 된다. 이불 속에 자신을 스스로 가두고 방바닥에 몸을 붙인다.


 대충 짐작하기에도 15년 넘게 우울증을 앓았다. 소아 우울증을 앓던 시기에는 다 그런 줄 알고 지냈고, 청소년기에는 상담 센터를 찾았다. 성인이 되고서는 약을 먹고 상담을 다녔다. 그 비용도 만만찮은 터라 공백기들이 있었지만, 어떻게든 삶을 이어갔다. 그럴 때면 이 우울함에 끝이 있을까 무기력해지기도 했다. 다행히 지금은 제법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올해 4월, 오랜 우울증을 배웅해 주었다.


말복툰 중 일부


 하루하루가 행복하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답할 순 없다. 그런데 마음의 병이 낫고 행복한 삶이라는 게 행복하기만 한 삶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감정에는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이 모두 있다. 기쁜 사람이 슬퍼하기도 하고, 화가 많은 사람도 사랑을 느낀다. 그러니까 우울증이 없는 사람이라고 해서 부정적 감정을 겪지 않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다만 힘들었더라도 다시 올라가는 힘, 그 에너지가 얼마나 있냐의 차이일 것 같다.


 제법 안정적인 생활에 접어들고나니까 그 시기에 내가 얼마나 많은 걸 놓쳤는지 깨달았다. 처음엔 그 시간이 많이 아까워 후회도 했다. 그러나 이내 그마저도 내 인생임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대신 남들은 조금이라도 빨리 헤어나왔으면 하는 마음이 생겼다. 하지만 함부로 조언하는 건 무례한 일이므로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기로 했다. 힐링툰을 그리는 일이었다.


 나는 유쾌하거나 밝은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은 아니어서 만화에 진심을 담는 순간 재미가 훅 떨어졌다. 재미를 추구할 것인가, 그럼에도 진정성을 담을 것인가 고민 끝에 내 마음을 전하는 게 우선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와하하하고 웃을 수 있는 만화는 못 그려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만화는 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우울증에 걸렸을 때를 상상해 보며 오늘의 만화는 불편한 게 없는지를 판단하며 그렸다.


 마음 같아서는 우울증에 걸린 모든 사람의 집에 찾아가서 문을 두드리고 나오라고 끌어내고 싶었다. 하나하나 다 들어주고 안아주고 다독여주고 싶었다. 속상하지만 물리적 한계가 분명했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인터넷 너머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기로 했다. 당신이 어떤 상태이든 내 만화를 보는 순간만큼은 마음이 편안해졌으면 좋겠어요. 당신의 시간에 내 마음이 조금씩 스며 들었으면 좋겠어요. 오늘 당장 일어날 힘이 생기지 않더라도, 오늘 당장 꺼지지 않을 힘 정도는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마음들을 담아서.


말복툰 중 일부


 그렇게 행복을 전하는 말복툰이 만들어졌다. 웃다가 눈물이 날 정도로 재밌는 만화는 아니지만, 그냥 보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만화.


 사실 아직도 마음이 완전히 모두 회복이 되진 않았다. 우울증과 작별한 게 아니라, 배웅했다고 표현한 것도 그 때문이다. 어제도 우울한 마음에 다시 우울증을 앓게 될까 불안하고 무서웠다. 그러니 아무리 행복에 대한 만화를 그리고 싶어도 “우울증에서 탈출하는 방법”이나 “행복해지는 방법” 같은 만화를 그릴 순 없다. 그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건 확신할 수 있을 만큼의 행복한 이야기를 전하는 것.


 그래서 나는 오늘도 딱 내가 행복한 만큼의 힐링툰을 그린다.


 아주 천천히, 아주 조심스럽게, 그러나 진심을 담아.





가끔 제가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서 힐링툰을 그린다고는 얘기해도,

왜 힐링툰을 그리는지 자세히 얘기해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또 힐링툰을 그린다고 하면서 힐링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잘 안 다루고,

일상을 그저 편하게 그리는 이유에 대해서도요.

그건 딱 제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제 진심을 담을 수 있을 만큼만 그리기 때문이예요.

오늘 글은 그걸 조금 더 자세히 써보았어요.


말복툰이 궁금하거나 필요하시면 언제든 인스타로 찾아주세요.


오늘도, 행복하세요.

진심을 담아.

말복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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