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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복 Oct 27. 2024

보조 강사를 하자! 1편



“보조 강사 섭외 요청드립니다.”


 공모전 준비를 이유로 지인 두 분과 모여 잠시(?) 수다를 즐기던 중이었다. 하고 싶은 일이나 앞으로 무슨 일을 할지가 주제였으니 제법(!!) 건설적인 대화였다. 나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그림 관련 프로그램을 진행해 보고 싶은데, 동네에서 시작하는 게 두렵다고 말하고 있었다. 두 분은 다른 동네에서 해도 된다고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셨고, 나는 얼마 전 타지역에 보조강사를 지원해봤다고 하며 머쓱히 웃었다.




 지원한 건 초등학생 대상의 웹툰 강의였는데, 주 강사님이 계시고 보조강사를 따로 한 명 더 채용한다는 구인글이었다. 나는 미대를 나온 적도, 웹툰을 연재한 적도, 책을 출간한 적도 없고, 그렇다고 유명하지도 않고, 강의를 해 본 적도 없었다. 이 요건들은 항상 내 발목을 잡는 한계점들이었다. 구인글을 보고 또 보면서 자격요건을 계속 확인했다. 평소라면 빠르게 포기했을텐데 누군가 속삭였다. “그냥 해, 하고 싶잖아.” 용기였다. 자격요건 어디에도 내가 지원하지 못할 요건이 없었다. 오랜만에 용기를 내어 메일을 써 내려갔다.


 작성하는 동안 머릿속에선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고 있었다. 아이들이 왁자지껄 그림을 그리는 가운데 정신없다고 느끼면서도 보람찰 거야. 프로그램이 끝나면 신나서 집으로 뛰어가겠지? 전날 밤에는 두근대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부푼 마음을 안고 잠들 거야.


 포트폴리오를 첨부하고 구구절절 메일을 써 내려갔다. 웹툰 연재를 한 적은 없지만 어시스트와 피디 경험이 있고, 말씀하신 프로그램을 활용한 만화를 매주 연재하고 있으며, 그 계정은 여기 있고, 어쩌고저쩌고…. 메일을 열어 볼 담당자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생각하면 낯부끄러웠지만 그만큼 절실했다. 단 한 명밖에 구하지 않아서, 오랜만에 용기를 내서,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아서 등 여러 이유로 간절했다.




 그리고 다시 다음 날, 셋이 모여 하고 싶은 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던 그때! 그러니까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그림 프로그램을 해 보고 싶다고 얘기하던 그때! 때마침 기적 같은 타이밍에, 메일함에 1이 뜨고야 말았다. 내용이 어떨지 모르는 데다 이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표정을 유지한 채 1을 눌렀다. 긴장은 오래가지 않았다. 제목부터 합격을 알리고 있었다. 그제야 광대를 한껏 끌어올리고 두 분께 핸드폰 화면을 보여드렸다.


“저 아까 말씀드린 보조강사요! 합격했어요! 우와아!!!”


 두 분의 응원과 축하가 이어지는동안 뿌듯한 마음에 가슴 언저리가 뜨끈해졌다. 좋아하는 사람들의 진심 어린 축하는 마음에 오래 머문다. 헤어지고 난 후에도 마음은 여전히 들썩이고 있었다. 집에 가는 길에는 단짝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선 냅다 좋은 소식이 있다고, 11월에 어느 뮤지엄에서 보조 강사를 한다고, 1명만 뽑는 건데 내가 되었다고 주절댔다. 갑작스레 쏟아지는 소식들에 당황할 법도 한데 다정한 친구는 미소를 담고 넌지시 묻는다. 대체 언제 그런 걸 준비하고 지원했냐고.


 포트폴리오는 이미 여러 버전으로 준비되어 있었다. 주기적으로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분야별로 업데이트 해두고 있었다. 구인글을 보자마자 새로 만들 것 없이 적합한 걸 골라 첨부했으니 준비 기간은 짧았다. 오히려 온 마음을 눌러 담느라 메일 쓰는 시간이 더 길었다. 하지만 질문의 의도는 “세상에, 갑자기 이게 무슨 소식이야? 정말 놀랐다!” 에 가깝다. 포트폴리오 얘기는 빠르게 넘기고, 사실 내 스펙이 너무 부족해 보여 기대가 없었던지라 조용히 지원하고 묻어 두었었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 더 기쁘고 어안이 벙벙하다는 말도 함께 전했다. 너무 잘 됐다며 축하해주는 친구의 목소리에서 사랑이 묻어 나왔다.




 사무실로 돌아가는 동안에는 근무지를 확인했다. 집에서는 3시간 거리였지만, 문제될 건 없었다. 언니 집에서는 도보로도 가능해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소식을 전하며 축하받고 싶은 마음도 숨기지 않았다. 전날 밤에 와서 자도 된다는 허락을 받고, 응원을 받으며 전화를 끊었다. 동네방네 소문내는 내 모습이 우습기도 했지만, 들뜬 마음을 주체하고 싶지 않았던 날이었다.


 프리랜서가 되고 수없이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마음은 좀처럼 무뎌지지 않는다. 의미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수신확인을 새로고침하고, 몇 달 전 메일을 지금은 읽으셨는지 주기적으로 확인한다. 내가 그런 사람이란 걸 받아들인 후로는 마음을 다른 방식으로 어루만진다. 힘듦을 가벼이 넘기지 못하겠다면, 기쁜 소식엔 한가득 기뻐하자. 행복한 순간을 끈질기게 붙들고 늘어지자. 설레고 기대되는 마음을 두려워하지 말자.


사무실로 도착하자마자 요청 사항에 대한 답변과 질문을 정리해 넘겼다. 그리고 머지않아 도착한 답변에 다시 또 마음이 철렁이고 말았다.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미리 말씀드리자면, 합격이 취소된 건 아니예요.

혹시 누군가의 마음을 안타깝게 할까 싶어 (?) 미리 전해요.

저는 여전히 11월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어요.


이 글을 도전 일지 매거진에 올릴까,

성장 일지 브런치북에 올릴지 고민했는데요.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거기도 하니까요!)


이 과정이 제게 남긴 의미는 내적 성장인 것 같아요.

평소와 달리 용기 내어 지원한 점과,

다음 편에 연재될 마음가짐까지 모두 제가 성장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성장 일지에 올리게 되었어요.


다음 주 일요일,

제가 또 어떤 마음의 성장을 했는지 보여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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