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울더라도, 매일 그리고 싶다.
프리랜서가 된 후 만나는 사람들이 많이 바뀌었다.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게 무섭고 소심한 나조차도 그림 그리는 사람들과 만나는 게 즐거워졌다. 인스타툰으로 시작한 세상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엔 항상 마음이 따뜻하고 벅차서, 열심히 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요즘은 따뜻함도 잠시, 울컥할 때가 많아졌다. 분명 예전엔 이 간질거리는 마음을 금방 넘길 수 있었는데 최근엔 감정을 조절할 수가 없다. 그날 울컥한 마음이 두고두고 마음에 남아 몇 날 며칠을 맴돈다. 그저 가을을 타는 것뿐이라고 믿고 싶지만, 사실은 알고 있다. 어느새 욕심이 감당하지 못할 만큼 커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림을 잘 그리고 싶다는 건 오래된 열망이었고 자연스러운 바람이었다. 매일 숨 쉬듯이 했던 생각이라 깊숙이 들여다보지 못한 게 화근이었다. 그림을 잘 그리고 싶다는 욕심은 단순히 기술적인 것뿐만이 아니었다. 어느새 돈이 되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외면하기 어려울 만큼 커져버렸다
돈은 그림을 오래 그리기 위한 도구이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는 목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창작자 중엔 돈이 목적이라고 말하길 주저하는 사람이 많다. 나라고 다르지 않다. 마음의 순수성을 훼손하는 것 같아 목적은 꼭꼭 숨겨두고 도구라고 말해왔었다. 이제는 진심을 하나 더 꺼낼 때가 되었다. 그림으로 먹고살고 싶다고 얘기해 온 뒷면엔 먹고 사는 것 이상의 것을 제법 바라왔었다. 돈은 때로 목적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돈은 가치다. 그림이 팔린다는 건 가치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팔리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 상업적인 눈이 없는가 하면 쉬이 답할 순 없다. 웹툰 피디는 작가님들의 작품이 잘 팔릴 수 있도록 피드백하고 가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일을 하는 내가 상업성을 모른다고 하면 클라이언트와 작가님들께 실례다. 그런데 어째선지 내 그림 앞에서만 서면, 내 그림을 그리려고만 하면 눈앞이 캄캄해진다. 스스로 스위치를 꺼버린다.
그림 그리는 길을 택한 후로는 마음이 자주 반짝인다. 그리는 즐거움은 그대로인데 불빛이 커져 다른 마음들이 보이기 시작했을 뿐이다. 사람들이 사고 싶은 그림을 그리고 싶어졌을 뿐이다. 돈을 지불할 가치가 있는 그림, 소장하고 싶은 그림을 그리고 싶다. 그림을 그려 돈을 번 게 언제 적인지 흐릿하다.
몇 달 전까진 의뢰를 받아 1년 정도 만화를 그렸는데, 지금은 중단되었다. 그 당시에도 기획서와 대본을 받아 그림을 그렸으니 내 그림으로 돈을 벌었다고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고작 5개월 정도 작품을 쉬었다고 견적서를 내미는 태도가 달라졌다. 거절을 여러 차례 받다 보니 돈을 주기만 한다면 노예처럼 그려도 좋다는 마음으로 메일을 쓰기도 한다. 다행히 아직은 전송 직전에 겨우 마음을 다잡는다.
시장이 원하지 않는다면 단가를 낮춘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이미 이 시장의 최저 단가도 붕괴한 마당에 그 아래로 견적을 내고 싶지도 않다. 답은 명료하다. 더 잘 그리면 된다. 그러니 잘 그리고 싶다는 욕심은 돈을 잘 버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말과 조금은 상응한다.
시장에서 원하는 그림은 대체로 ‘대중성’이란 카테고리 안에 속해 있다. 창작자들은 보통 그 안에 자신의 개성까지도 적절히 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잘 그리는 건 기본이고 그 외의 기획이나 마케팅 센스까지 갖춰야 한다니, 밤마다 한숨이 깊어진다.
그런데도, 욕심은 더욱 깊어진다. 포트폴리오를 보내지 않아도 클라이언트가 ‘나’를 찾아왔으면 좋겠다. 여러 군데 찔러본 게 뻔한 메일에 적당한 견적서를 보내 겨우 간택되어서 하는 일이 아니라, ‘나’여야만 하는 일을 하고 싶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몇 년이 걸릴지, 혹은 몇십 년이 걸릴지 모르겠다. 그러니 일단 다음 목표는, 지원하면 간택이라도 수월하게 받고 싶다.
좋아하는 일을 어떻게 찾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 더 잘하고 싶은 걸 찾으면 된다. 잘하고 싶은 게 너무 많거나 없을 땐 두 번째, 욕심이 가장 없는 순으로 가지치기한다. 욕심은 잘하고 싶은 마음에서 온다. 잘하고 싶으면 알아서 배우게 되어 있다. 성장은 알아서 따라오고, 성취는 그 일을 더 깊게 좋아하게 만든다. 물론 성장만으로는 클라이언트가 찾아오는 인재가 될 수 없다. 그때부터는 더 욕심내서 배우거나 거기에 머무르거나 혹은 다른 일을 찾아야 한다.
나도 즐겁게 그리고 싶은데 종종 속상했고 답답했고 마음이 아팠었다. 봐도 봐도 부족해 보였고, 부족함을 받아들일 때마다 이런 그림이 돈이 될 리가 없다고 스스로 마음에 못을 박았었다. 평생 그림은 취미로만 두고 싶었다. 못이 박힌 자리에 녹이 슬어 탈이 난 것도 얼마 전, 그래서 그 못을 빼내고 이 길을 걷게 된 것도 얼마 전이다. 스스로를 아프게 한 벌을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놈의 그림. 그림 때문에 아팠고 그림 때문에 일어섰다. 아파도 보고, 살아도 보니까 아파하면서도 이렇게 살고 싶다. 먹고 살 만큼만 벌어도 좋지만, 그 이상을 벌어 더 마음껏 펼치고 싶기도 하다. 무료로 그림을 뿌리면 더 많은 사람들이 봐주지 않을까? 하는 철없는 상상도 해봤었다. 그런데 그 중 몇이나 그걸 안 버릴지 생각하면 애초에 소비되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진다. 매일 여러 자아가 치열하게 싸우는 과정을 보니 애증이 맞는 것 같다.
그래, 이 욕심은 역시 사랑에서 왔다.
언젠가 많은 사랑을 받는 유명한 작가가 되는 날이 온다면 그땐 좀 편안해질까? 아니, 그런 날이 온대도 더 큰 욕심을 부리며 울컥할 게 뻔하다. 이 길에 대한 내 사랑은 구질구질하다. 한참을 아파했어도 조금의 사랑이면 지속할 수 있다. 미련이 끝없이 이어지다가도 누군가의 한마디에 다시 불타오르기도 한다. 이쯤이면 그림이 지긋지긋할 법도 한데 아주 작은 불씨로도 충분하다. 매일 울더라도, 매일 그리고 싶다.
매일.
그림 때문에 울고 웃는 나날들인데도 이상하게 놓고 싶지 않은 이 반짝임은 분명 사랑이겠지요.
매일 울걸 예상했음에도 선택한 길, 예상보다 많이 웃으며 나아가고 있어요.
오히려 많이 울지 않았기에, 너무 행복하게 이 길을 걷고 있기에 울컥함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뭐든 그렇잖아요.
처음엔 좋아서 시작하고, 일정 구간까진 아주 빠르게 성장해요.
그래서 더 즐겁고, 행복하고, 욕심이 아무렇지 않아요.
그런데 일로 마음먹기 시작한 순간부터는 욕심이 더 커져버리고, 눈이 높아져버려요.
스스로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면서 많이 아파하기 시작해요.
이 때 아파서 그만두느냐, 아니면 아픈데도 다시 하느냐 라는 선택의 기로에 서는데요.
저는 아플까 미리 그만뒀고, 아플 걸 예상하면서 길에 들어섰어요.
들어와보니 아파서 그만두는 선택지는 늘 옆에 있더라고요.
그러니 매일 다짐하고, 매일 행복을 붙들어요. 어떻게든 이 길을 계속 걷기 위해 찰나의 행복도 꼬옥 끌어안아요.
한참 아팠던 날 썼던 글이라 주절주절 사담도 길어졌네요.
지금은 또 잘 받아들이고 마무리하는 밤입니다.
오늘 올린 만화에 많은 분들이 사랑을 보내주셨거든요.
내일 울더라도, 오늘 행복할게요.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