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나름의 한 주 루틴들이 있다. 아주 체계적이고 정교하진 않지만, 한 주를 잘 흘러갈 수 있게 해주는 작고 느슨한 루틴이다. 이를테면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미리 다음 주 주간 계획을 세운다던가, 아침에는 어느 카페를 가든 상관없지만 카페에 가서 자잘한 일들을 처리한다든가 하는 것들.
한 번 삐걱대도 큰 상관 없지만, 삐걱대기 시작했을 때 알아차리지 못하면 갑자기 한 달이 지나서야 내 인생이 잘 굴러가나 싶어지기 때문에 평소에 잘 들여다봐야 한다. 요즘 좀 힘든 것 같은데 싶다 보면 아침에 카페를 못 간 지 오래된 경우가 많다. 혹은 최근에 일이 많이 밀리는데? 싶으면 한 주 계획을 급하게 써서 놓쳤을 가능성이 높다.
모든 게 한 번에 찾아오기도 한다. 신호는 계속 있었는데 내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동안 시간이 훅 흘러버린 경우다. 오늘 아침처럼.
평소보다 1시간이나 늦게 집에서 나와 점심시간을 30분 앞두고 카페에 도착했다. 최근 스케쥴러 체크도 많이 못 했고, 당연히 주간 계획도 못 세웠기 때문에 스케쥴러도 들고 나왔다. 도착해서 매일 쓰는 수첩을 펼치니 마지막 날짜가 6일 전이다. 내 머릿속을 비우는 모닝 페이지도 4일 전이 마지막 기록이다.
제법 많이 밀렸지만 괜찮다고 자신을 다독이며 스케쥴러를 펼친다. 그런데 머릿속에 밀린 일들이 펼쳐지지 않는다. 뭘 해야 하지? 머릿속에서 작은 버퍼링이 일어났다. 정신을 차려보니 스케쥴러가 눈앞에 없다. 스케쥴러를 펼쳤다고 생각했는데 몸과 머리가 따로 움직이고 있다. 늘 하던 일들인데 조금 밀렸다고 낯설게 느껴진다. 그런데 조금이 맞나?
큰일 났다. 뭔진 몰라도 이거 좀 큰일인데 싶은 순간 갑자기 모든 신호가 떠올랐다. 최근 며칠 한 번씩 스스로 들었던 의문이다.
'나 잘하고 있나?'
작은 신호인 데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의심이었기 때문에 살피지 않았던 질문. 그 질문이 최근 연달아 자꾸 들어오고 있었고, 나는 밀어내기 바빴다는 걸 깨달았다. 바쁘다는 핑계로 스쳐 지나갔던 이 감정을 지나치는 동안 일상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이 신호가 계속 내게 무언가 말하려 하고 있다고.
바빠지고부터 일정을 소화하기에 바빴고,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마감에 쫓기며 정신없이 달려오느라 이런 생각이 들어오기도 전에 밀쳐냈다. 철저히 외면한 신호들이 갑자기 선명하게 떠올랐고, 휩쓸려가지 않기 위해 시간을 내어야만 했다. 시간을 내야 한다는 것만으로도 조급해지는 걸 보니, 지금 무언가 잘못되긴 했나 보다. 생각하며 머릿속에 집중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가 되기로 했을 때, 분명 더 나은 무언가를 꿈꾸고 있었다. 내 이야기를 그리고 쓰고 싶었고, 꼭 그게 아니라도 좀 더 주체적인 삶을 살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어떤가? 주어진 일을 처리하기 바빠 숨돌릴 틈도 없다. 힘들 때면 "바쁜 게 감사한 거야"라고 중얼거리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이제야 이게 내가 원하던 삶이었나 하는 의문이 든다.
당연히 프리랜서로서 안정적인 수입이 중요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오래 버티려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그게 전부여서는 안 되었다. 내게도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 내 능력을 더 잘 발휘하고 싶은 일들이 있다. 누군가의 제안을 기다리거나, 올라오는 공고들을 확인하는 것뿐 아니라 내가 먼저 제안하고 싶은 일들이 있다. 거절 메일을 받거나 크게 실패하더라도 꼭 직접 부딪치고 싶은 그런 프로젝트들이 있다.
물론 지금 당장 그 일들을 할 순 없다. 프리랜서에게 수입이 중요하듯, 주어진 일감의 처리는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 좋은 컨디션으로 일을 처리해야 하고, 그 일들은 기한 내에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개인 프로젝트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주도권을 내어주는 것과 같다. 아주 바쁠 땐 개인 프로젝트가 뒷전으로 물러나더라도 인지는 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기록이라도 해두어야 한다. 계속해서 꿈을 꿀 수 있도록.
꿈을 꾸는 동안에는 더 힘이 난다. 눈코 뜰 새 없이 바빠도 내가 오늘 해낸 일들을 알아차려 줄 정도의 기력이 생긴다. 그저 '아, 오늘도 일 잘했겠지.' 하고 누워 자는 게 아니라, '오늘 이것도 하고 저것도 했네. 내일은 그거 해야겠다.'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일이 나를 움직이는 게 아니라, 내가 일을 해야 한다.
요즘 부쩍 드는 생각인데, 프리랜서들은 모두 비슷한 고민을 한다는 것이다. 아마 내가 잘하고 있나? 하는 이 고민도 모두가 하는 고민일 듯싶다. 더 나은 삶을 바라고, 프리랜서의 앞면과 뒷면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으려고 애쓰고, 그 과정에서 프리랜서에게도 선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는 직원이자 사장이라는 것.
얼마 전 프리랜서 인터뷰를 하며 더 명확해진 것도 있다. 우리는 고민을 해결해 줄 사람이 필요한 게 아니다. 모두가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는 사실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그 안에서 공감하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힘이 된다. 그래서 또 한 번 깨닫는다. 아참, 나도 그래서 프리랜서 성장 일지를 연재하게 되었지?
그러니 지금 이 마음의 신호를 알아차린 건 축복이다. 나는 아직도 길을 찾아가는 중이고, 이 여정은 앞으로도 평생 계속될 것이다. 프리랜서를 하는 동안에도, 어쩌면 다시 회사로 돌아가더라도. 때로는 발길이 닿는 대로 움직이는 것도 필요하지만, 지금이 그럴 타이밍이 맞나? 하며 멈춰서서 확인해 볼 이성이 생겼다는 거니까.
흔들림 속에서 흔들리고 있다는 걸 스스로 알아차렸다는 사실 자체가 성장했다는 증거가 되어주는 오늘, 요즘의 내 상태를 기록함으로써 다른 이들에게 전할 수 있다는 게 감사하다.
오늘도 내가 원하는 삶을 향해 한 걸음씩 걸어가는 분들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여정에 서 있는 우리는 모두 혼자가 아니라고 전하고 싶다.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동료예요.
몇 일 전부터 또 오랜만에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 잘 하고 있나?
최근엔 바쁜 와중에도 스스로를 잘 지켜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이 질문이 신호라고 생각하지 못 했어요.
그냥 그저 또 찾아오는 질문이라고 느껴서 가볍게 넘겼던 것 같아요.
잘 하고 있어, 파이팅!
정답은 없어, 그냥 하는거야!
이렇게 두 가지 답변만 하느라 몰랐는데 그게 다 신호였더라고요.
잠시 멈춰서 네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들여다보라고.
아니나다를까, 바쁘다고 일에 주도권을 그냥 내어줬더라고요.
마치 제 삶의 목표는 일인것마냥.
바쁜 시기가 지나고나면 다시 또 제가 원하는 걸 꼼지락댈 수 있도록,
스스로의 마음도 잘 챙기며, 꿈도 잘 간직하며 기록을 계속 해야겠어요.
지금 이 마음과, 여전히 하고 싶은 것들과, 그에 대한 계획들이 떠오르는 걸 막지 않고,
일을 하면서도 모두 모두 기록해두어야겠습니다.
물론 제가 일하는 것들도 모두 잘 기록해두고요.
훗날 그 때 뭘 했던 거지? 하지 않도록요.
갈수록 사담이 길어져요. 어느덧 브런치에도 정이 많이 들고 있나봐요.
오늘도 편안한 하루 보내세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