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2]건강하다의 이해-체력과 멘탈은 분리되지않는다

I. 과목명: 어른의 기술

by 고임

나는 스물두 살까지 몸무게가 60KG으로 말랐었다. 내 직업 특성상 밤샘 작업이 많았지만, 적어도 체력에 대해선 걱정 없던 혈기왕성한 젊은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밤샘 합주를 마치고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는데 달달달달 다리가 떨려 계단을 못 내려가겠는 게 아닌가. 근거 없던 체력에 대한 자신감은 그날 큰 수치심으로 돌아왔다.

이튿날 바로 헬스장을 등록했고, 그게 벌써 14년째 이어지고 있다. 처음엔 몸무게가 늘지 않아 많이 고생했다. 대형마트에서 초코바 100개, 200개씩 박스로 사서 하루 세끼 사이사이에 간식으로 먹었다. PT 트레이너는 살이 찌려면 밤늦게 자기 전에도 꾸역꾸역 라면 한 개 끓여 먹고 자라고 했다. 그렇게 꼬박 3년 동안 20kg을 벌크업 했다.




그렇게 힘들게 만들어낸 체격은 서른이 넘으면서부터 진가를 발휘했다. 흔히 말하는 3대 웨이트를 400까지 끌어올린 고강도 근력 운동의 결과물과, 꾸준한 러닝, 축구, 등산, 배드민턴등의 유산소운동으로 길러진 심폐능력은 웬만한 일상에서의 피로정돈 끄떡없는 몸을 만들어주었다. 나는 다양한 일을 병행하는 N잡러다. 이동 거리도 많고, 순간순간이 바쁘게 흘러간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어떻게 그렇게 바쁜데도 지치지 않을 수 있냐"는 말을 들을 때마다 이따금 14년 전의 나에게 감사한다. 나는 원하는 만큼 잠만 잘 자면 늘 일정한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고, 이건 내 정말 큰 강점으로 뭐든 소프트웨어만 따라주면 다 해낼 수 있었다.

요즘 인기 있는 책 순위에 있는 자기 개발서에서 자주 보이는 말이다. ’ 체력이 곧 자산이다 ‘, 체력적으로 쉽게 지치지 않는 것은 어떤 일을 해내는 데 있어서 정말 가장 강력한 무기다. 남들보다 더 긴 시간들을 활용할 수 있으며, 맑은 정신의 상태로 일들을 소화할 수 있고, 화를 잘 참고 짜증을 내지 않는 능력도 생기게 된다.




이런 체력을 기르기 위해선 운동을 해야 한다. 운동을 하고 싶어서 한다면 너무 행복하고 운이 좋은 사람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엔 운동하는 게 너무나 큰 스트레스일 뿐이다. 공부를 그냥 하다 보니 재미가 붙어 계속하게 되었다는 친한 서울대 대학원 박사 중인 드럼 레슨생만 봐도 가장 큰 원동력은 무언갈 재밌게 즐기는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벌써 주위 여러 지인들을 각자의 운동으로 전도(?) 해본 경험이 있는데, 그중 한 친구는 서울에 학군 좋은 동네에서 학창 시절 내내 공부 학원만 뺑뺑이로 다녔다고 했다. 남성인데도 불구하고 제대로 축구를 살면서 단 한 번도 안 해봤다고 했다. 내성적인 성격 탓에 남들에게 자기 얘기를 잘 안 하는 친구였음에도 30대가 되면서 체력적 문제를 느끼면서 나에게 운동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다. 문을 박차고 나가 당장 운동을 해야 하는데 도저히 집 밖을 나서기가 어렵고, 운동할 생각만 하면 심장이 빨리 뛰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이다.

내 조언은 이랬다. 연애초기에 여자친구를 만나러 가기가 귀찮은 적이 있었는가. 수련회 가기 전날 밤 설레는 마음을 느껴본 적 없는가. 그런 일들에 대해서는 기대하고 고대하지 않았는가. 운동도 똑같다. 분명 좋아하는 운동을 찾게 되면 알아서 눈이 떠지고, 알아서 현관문을 나서고 있을 것이다. 그게 설사 운동자체가 재밌어서든, 함께하는 이들과의 유대감이 던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토요일밤 술 약속으로 새벽까지 만취하고도 일요일 오전 일찍 눈이 떠져 축구를 가려고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 모습이나 새벽 수영장을 들어설 때, 새벽 배드민턴 체육관 문을 열 때, 그 사람들의 에너지와 열정이 이 가설을 증명한다.

그렇게 이런저런 운동들을 배워보며 반년쯤을 보냈던 그 친구는 결국 러닝에 정착했다. 나의 예상대로 새벽 다섯 시 반에 일어나 한강변을 크루원들과 함께 달리는 멋진 남자가 되어있었다. 주말엔 종종 마라톤 대회에 나가 꽤 준수한 페이스로 완주하며 크루원들 사이에서도 중심적인 입지를 갖게 되었다는 이야기와 허리는 4인치, 몸무게는 15킬로가 빠졌다며 말하는 친구의 입꼬리가 씰룩 올라가는 걸 봤다.

이렇게 체력을 얻어내면 무엇이든 해볼 수 있는 시간과 여유가 생긴다. 시간이 없어서 뭘 못해보는 것이 아니라 체력이 없어서 쉽게 시도하지 못하는 것이다. 힘들고 값지게 얻어낸 체력은 우리 사는 세상의 재화처럼 돌아와 내가 무엇이든 더 해볼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준다. 그 여유는 마음에도 크게 작용해 인간을 더 안정적으로 만들어준다.

단단한 사람, 우직한 사람, 믿음직한 사람. 이런 표현들이 바로 체력을 바탕으로 괜찮은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우리가 부르는 방식 아닐까?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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