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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연 Jun 25. 2024

병의 시작

암이라는 세포를 만나다


10년 전 자전거로 한강 라이딩을 하던 아빠가 가벼운 접촉 사고를 당했다. 병원으로 진료를 보러 간 김에 평소 불편을 느끼던 부분을 이야기했고, 그렇게 검사를 하던 중 PSA(전립선특이항원) 수치 이상을 발견하게 되었다. 정밀 검사를 할 때까지도 아빠의 건강엔 절대 문제가 없을 거란 확신을 갖고 있었다. 180에 가까운 키와 단단한 체격에서 뿜어져 나오는 건강미는 오려던 병도 도망가게 만들듯 했다. 체력도 30대의 사위와 아들보다 더 좋았다. 그런 아빠에게 병, 암, 환자와 같은 것들은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조직검사 결과가 나오는 날,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새엄마의 문자를 받았다.

‘아빠가 혼자 서울대학 병원에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갔는데, 나는 일이 있어 함께 못 갔어. 혹시 병원으로 가볼 수 있을까? ‘ 아닐 거라는 확신들로 머리를 꽉 채워봐도 작은 빈틈으로 불안한 감정이 비집고 올라왔다. 혹시라도 모를, 그 잔인한 통보를 받기 위해 떠난 아빠를 생각하니 도저히 출근을 할 수 없었다. 회사에 전화를 해 오전 반차를 내겠다 양해를 구하곤 택시를 잡아타 서울대학 병원으로 향했다.


때마침 2015년 메르스로 온 나라가 공포에 휩싸여 있던 시기였다. 병원에 도착하니 마스크를 나눠주며 소독을 하는 삼엄한 경비들이 보였다. 그 분위기 만으로도 나는 이미 겁을 잔뜩 주워 먹어버리고 떨리는 손으로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병원 로비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다 눈에 익은 아빠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를 보자마자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아니 여긴 어떻게 온 거야? 병원 분위기도 소란한데 뭐 하러 왔어??”

나를 보자 걱정의 말부터 쏟아내는 그의 손을 잡았다. 알 수 없는 묘한 떨림이 우리 두 사람의 손에서 손으로 전해졌다. ‘메르스, 암, 그런 게 뭐가 무서워. 나는 애도 13시간 진통하며 자연분만으로 낳은 여자라고. 겁낼 거 없어.’ 나는 그간 내가 이겨 내온 최악의 상황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스스로를 진정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듯 마스크 뒤로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 아빠 겁먹었을 까봐 손잡아 주러 왔지”


모니터를 사이에 두고 의사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립선 암입니다.”  

덤덤한 척 의사의 결과를 듣던 아빠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의사가 뭐라고 말을 하던 나의 온신경은 아빠에게 향해 있었다. 그가 어떤 표정을 짓는지, 어떤 질문을 하는지. 메르스로 세상 사람들이 공포에 질려 있었지만 이날 들은 암진단은 그에 비할 수 없는 더 큰 공포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환갑을 지난 아빠에게 생에 두 번째 시련이 찾아왔다. IMF로 마흔 후반에 부도와 이혼을 겪으며 어려운 중년의 시기를 보낸 아빠이다. 퇴직 후 안정된 노년의 시작을 보내기도 전에 암투병이라는 어려운 과제를 다시 받게 된 것이다. 나는 그날의 아빠를 떠올릴 때마다 움츠러든 어깨와 미세한 떨림이 전해준 한 남자의 두려움을 느끼곤 한다. 그날 아빠는 분명 수많은 굴곡을 넘어온 자신의 삶을 되짚어 보며 잠을 뒤척였을 것이다. 그날 밤의 내가 오래도록 잠에 들 수 없었던 것과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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