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뭐예요
오순이는 노을 진 저녁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있을까 생각했어요.
아버지와 함께 숲에서 나뭇잎들 사이로 보던 노을도 무척 아름다웠거든요. 그런데 북풍님과 함께 보는 지금의 노을은 황홀할 정도였죠.
붉은빛인가 하면 노란빛 같고 노란빛인가 하면 보랏빛 같고... 오순이가 알고 있는 색이란 색은 다 있는 것 같았거든요.
높은 하늘로 올라 보니 탁 트였다기보다 '넓고 넓은 바닷속이 이런 곳일까?' 생각할 정도로 북쪽으로 오며 보았던 끝없이 넓은 바다와 지금 보는 하늘이 많이 닮아 있었어요.
찬란한 노을과 아래로 보이는 세상이 너무나 아름다웠어요.
다른 때 같으면 기뻐서 소리라도 질렀을 텐데 소리마저 노을이 삼켜버릴 것 같았어요. 경건함이란 이런 것일까요? 오순이는 여행을 하며 배운 것이 참 많았어요. 자유로 느낄 수 있는 것들에 감사했죠.
마지막 넘어가는 해가 남긴 귀한 선물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았어요.
코발트색이 짙어가는 하늘에 하나 둘... 별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아래로는 밝은 세상의 빛이 하나 둘 번져갔지요.
성으로 돌아온 오순이와 바돌이는 북풍님께 여쭈었지요.
"북풍님, 아까 말씀하셨던 삶이란 무엇이죠?"
"흐흠~ 삶이란... 말이지... 살아가는 거라 했나? 운명이라 했나? 후훗~ 그래 받은 운명대로 태어나 살아가는 거지. 그래 그렇구나. 그러면 저기 아래 사람들이 사는 세상을 돌아보자꾸나."
오순이와 바돌이는 방금 본 하늘 광경에 취한 마음이 여전한데 또 사람들 세상을 돌아본다고 하니 기대로 가슴이 콩닥거렸어요.
성을 나와 사람들이 사는 세상 위로 나는 기분도 진짜 좋았어요. 전에 도시 거리에서 느꼈던 것과는 정말 달랐어요. 그때는 도시 거리가 무섭고 삭막하게만 느껴졌었죠.
처음 눈에 뜨인 것은 높은 건물 안에서 일을 정리하는 사람들이었어요. 그들은 곧 일을 마치고 퇴근할 사람들이었지요. 전에도 많이 봤던 모습이었어요.
좀 더 아래로 내려갔어요. 십자 표식이 있는 조용한 건물이 보였어요. 창으로 다가갔지요. 앙상한 뼈만 남은 노인들이 침상에 누워 이른 시간인데도 잠자고 있어요.
"북풍님, 저 사람들은 왜 벌써 잠만 자나요?"
"저분들은 삶을 다 살고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란다. 사람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생명을 가지고 태어난 것들은 반드시 죽는단다."
오순이는 아빠를 생각했어요. '죽음이란 슬픈 거구나...'
북풍님을 따라 또 다른 거리로 왔어요.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그 무시무시한 차들이 다니는 거리였어요. 그러나 여기 도로를 달리는 차들은 전에 보았던 거리와 달리 쌩쌩 달리지도 않고 얌전한 불독 같았어요. '아~ 이런 곳도 있네.'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은 조그만 가게지만 맛집이래요. 조용히 혼자 저녁 식사를 하는 사람, 여럿이 대화하며 즐기는 사람들... 다양한 모습들이 보였어요.
창 귀퉁이에 앉아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여 보았죠. 낮에 겪었던 일에 대한 이야기, 사는 게 힘들다는 이야기, 가족 이야기, 아기가 생겼다는 이야기, 여행 다녀온 이야기 등 많은 사연들이 오고 갔어요.
'아하~ 사람들은 저런 일들을 겪으며 사는구나.'
주방 안쪽에서 작게 들려오는 소리가 들렸어요.
"새벽부터 나와서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일했더니 몸이 만신창이야. 피곤해~~"
"그렇겠네. 그만 앞치마 풀고 퇴근해. 내가 마감까지 하고 들어갈게."
"일할 수 있을 때 열심히 일해야지. 기왕 태어난 인생, 이리 벌어먹고 자식들 키우고 여행도 하고 즐기며 사는 거지.
"돈 버는 것도 좋지만... ㅎㅎ 안 되겠어. 내일은 딸 생일이라 일찍 가서 미역국이라도 끓여 놓아야지."
앞치마를 푼 아주머니는 후다닥 뒷문으로 사라졌어요.
ㆍㆍㆍㆍㆍ ㆍ
큰 건물이 적은, 주택가 주변으로 왔어요.
기웃거리던 어느 집 안에서는 부부가 조용히 TV를 보고 있고, 어느 집은 엄마와 아들이 진지한 토론을 하고 있네요. 집안에 행사가 있는지 여러 가족들이 방문해 함께 즐기고 있는 집, 아이들 재롱으로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젊은 부부가 보였어요. 다양한 나잇대의 사람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었어요.
주택가를 떠나 다시 큰 거리로 나왔어요.
'엥 저분은?'
힘없어 보이고 몸집 작은 노인인데 커다란 리어카를 끌고 여전히 밤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어요.
"북풍님, 저분은 밤인데 왜 집에 안 돌아가고 계속 박스를 모으고 있어요?"
"저 노인도 그저 살기 위한 일을 하는 거란다."
"힘들어 보이는데 꼭 저렇게 살아야 하는 건가요?"
"몸이 작다고, 힘이 없다고 모두가 힘든 건 아니지. 저렇게 사는 것도 다 이유가 있고 나름대로 삶의 보람을 느낄 수도 있단다."
"저렇게 힘들어 보이는데 보람을 느낀다고요?"
"우리가 보는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이 다 다르듯, 그들의 마음도 다 다르단다. 겉으로 봐서는 그들의 삶이 옳다 그르다, 잘 산다. 못 산다고 말할 수 없지. 그들은 그 삶을 운명이라 받아들이고 충실히 살 뿐이란다. "
오순이는 삶이란 게 어떤 건지 좀은 알 것 같았어요.
"저분 힘들어 보이니까 우리 함께 밀어드려요."
"그러자꾸나."
셋은 힘을 모아 리어카를 밀었어요.
'어~~ 갑자기 리어카가 가벼워졌네!'
리어카를 끌던 노인의 표정이 밝아졌어요.
오순이와 바돌이는 기뻤어요.
"영차 영차 더 힘내자. ㅎㅎ"
둘은 힘차게 밀었지요.
오순이는 고갯길을 오르며 그동안 보지 못했던 달을 보았어요.
북쪽 여행을 떠나오기 전 눈썹 같던 달이 살이 통통해진 빵처럼 부풀어 올랐어요.
달도 모양을 바꾸듯, 사람들 삶의 모습도 변해가는구나 싶었어요.
갇힌 듯한 건물 안에서 매일을 살아내야 하는 사람들, 통증을 견디며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 삶이 주는 다양한 일들을 겪으며 기뻐하고 속상해하는 사람들, 그저 할 일에 충실한 사람들, 하루 일해 하루를 지내는 사람들, 자신의 삶이 행복인지 불행인지도 알 수 없이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러나, 오순이는 사람들의 삶에는 그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바로 웃음. 아이들의 재롱을 보고, 사람들과 어울릴 때 즐거워하던 모습. 그리고 가족을 생각하며 앞치마를 벗던 아주머니는 고단함도 잊고 딸을 위해 미역국을 끓일 거예요. 그리고 생일을 축하해 주겠죠. 일상적인 말속에 깊은 사랑이, 주는 사랑에 보람이 들었음을 조금은 알겠는걸요.
오순이는 이미 어른이 된 듯했어요. 자신의 생각은 이미 어린 자신이 아니었거든요.
저 멀리서 별님이 기특하다 반짝반짝 칭찬하는 것 같았어요.
처음 써본 창작 동화인만큼 부족함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제 분신 같은 작은새와 오순이의 이야기 '작은새 성장기'와 '오순이의 여행기'를 관심 있게 보아주신 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
진심으로 글 쓰시는 모든 작가님들을 존경합니다. 쓸수록 어려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