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방석이 사라졌다
과거는 상상 속으로 인도하고, 깜깜한 어둠 속에서 속닥이며 건물을 기어오르는 검은 형상들을 비춰준다. 사방의 눈을 가진, 이미 아는 자는 여유롭다.
'오호라~~ 니들이구나!'
*♡*
대입 학력고사의 부담으로 누렇게 뜬 심신으로 무미한 날들을 보내던 고 3의 늦가을, 어느 날.
지각은 여중 시절을 지나 여고 시절까지 이어져 버릇이 되었다. 그래도 고 3 때는 다른 학년 시절보다는 이른 시간에 등교했다. 3학년에 내려진 등교 시간에 지각이었다는 것이지, 다른 학년보다 늦게 갔다는 건 아니다.
이미 3층 복도는 새날이 시작되었고, 각 교실은 많은 친구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3층으로 오르는 계단부터 시작해 교실로 향하는 순간 뭔가 술렁대는 흥분과 긴장감이 돌았다. 다른 날이면 조용할 복도에 말이다.
우리를 상대로 공포를 조장하듯 협박과 공갈을 일삼던 이ㅇㅇ 학생부 선생님이 심각한 분위기로 잰걸음질하고 그 뒤로 울반 회장이 따라간다.
이후 임원들은 선생님의 지시로 교무실과 학생부실을 분주히 왔다 갔다 했다.
앗, 방석이 사라졌다!
"3학년ㅇ반 애들 방석이 사라졌대."
옆 반 애들도 덩달아 시끄러웠다.
교실 앞문에 비스듬히 한쪽을 기대고 한 다리를 다른 다리 위로 살짝 꼰 자세로 서서 이야기하던 학생부 선생님. 그날은 사태가 심각한지 교실 안까지 들어와 일일이 확인한다. 반쯤은 색 코팅이 된 선글라스형 안경을 끼고 올렸다 내렸다를 ㅡ그때도 그런 렌즈가 있었나... ㅡ 폼 내듯 하던 선생님은 예의 그 특유한 인상을 쓰며 꽤나 교실 앞에서 씩씩거리셨다.
"아니, 어떤 놈의 장난이야? 어디로 간 거야? 훔쳐 갈 게 없어서~~"
사태를 확인하시고는 수습을 위해 돌아가시고,
"아이~ 진짜 누가 가져간 거야? 내 방석~~ 새건데..."
친구의 짜증 섞인 투정이 터지고, 그날 아침은 시끌거려 자습은커녕, 내내 뒤숭숭했다.
방석도 웬만큼 사는 집 애들이나 깔고 공부한다. 난 잃어버릴 방석도 없었다. 다행이었다.
역시~ 학생부 선생님!
몇 시간이 지나니 학생부 선생님이 의기 당당하게 오셨다. 범인을 알아내신 것이다.
밤사이 남고 아이들이 우리 교실에 침입한 것이다. 건물 가장자리에 있던 우리 학급이 타깃이 되었던 것이지.
옥상부터 1층까지 이어진 수로 역할을 하는 금속관을 타고 기어올라왔단다.
전모가 드러났으니 수습을 해야 했다. 남고 학급 대 여고 학급의 일로 축소되었다. 두 학교 학생부 담당 선생님은 상황을 공유하고 사태 수습에 공조하셨겠지만, 학생부 선생님은 자치적으로 해결하기를 권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학급 임원으로 수습팀을 꾸렸다.
선생님의 명에 따라 그 방석 도둑들의 학급 대표와 우리 반의 대표들이 만나 사태 수습을 의논하기로 했다.
그들을 통해 들은 속설이다.
'여고 입시생 방석을 깔고 앉으면 시험을 잘 본다'라는 ㅡ흐흥~ 참 우스운 이야기지만ㅡ 생전 처음 듣고 지금도 그때 이후 못 들어본 소리인데 그들 학교에 풍문으로 돌았다 한다.
서너 명의 간 큰 녀석들이 수로를 타고 올라와 되는대로 의자에 놓고 간 방석을 걷어간 것이다. 엄연한 도둑질이긴 했지만, 뭐 ~지금 생각하면 참 귀엽기도 하네. 주범의 얼굴은 못 봤지만, 예감상 대표 중에 주범이 끼어 있었지. 아마도 딱 주동자로...
지금은 웃을 일이지만, 그 시절 우리는 진지했다.
방과 후 6인이 제과점에 앉아 서로 상황 설명을 나누고 사과를 들었다. 고등학생 여섯이 빵집에서 마주 보고 앉았던 장면을 생각하니 흑백영화 한 장면을 보는 듯도 하고 얼마나 예쁘게만 생각되는지... 그날의 진지함조차 웃음을 짓게 한다. 그리고 사과의 표시로 우리 학급에 합격떡을 보내주기로 했다. 그 후 그들은 학급 애들끼리 모금해서 떡을 맞추어 우리 학급에 전달을 해 왔다.
그렇게 사라진 방석은 돌아왔고, 합격떡으로 사과를 받았고 화해가 되었다.
며칠간의 심각했지만 우스운 해프닝이었다.
아무도 모르는 뒷이야기가 있다.
남고 학급 대표가 개인적으로 내게 만나자는 연락을 해 왔다. 제과점에서 만났다.
사귀고 싶다는 말은 직접 안 했지만, 학력고사가 끝난 주일에 함께 영화를 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그 당시 시골이어도 영화관 하나는 있었다.
'게서 보자고 하는 거겠지. 어쩌나...' 이도 고민이었다.
미남은 아니지만 키도 크고 공부도 잘하는 것 같고 척척 빵도 사주고 영화도 보러 가자니 살만한 집안 자식이군. 말하는 본새도 당당하고 정중해서 호감은 갔다.
말없이 고민 중일 때 그는 말했다.
"우리 서울 가서 영화 보고 오자."
' 헐~~ 서울? '
순간 고민조차 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
서울 가서 영화를 보고 온다면 돈이 얼마나 필요한 거야? 내게는 자존심 문제로 떠올랐다. 입고 갈 옷도 없이 교복을 또 입고 갈 것인가? 어른들 손에 이끌려 가 본 경험 외에는 없었고, 게다가 나는 멀미가 엄청 심하다. 어른이 되어서도 멀미약을 사 먹을 생각도 못했다.ㅡ 분명 돈이 드는 멀미약을 산 적이 없어서 살 줄도 몰랐고 돈 드는 일이니 몸으로 쭈욱 때우며 산 것이다.ㅡ
마음은 설렜으나 서울이라는 말에 마음은 이미 접었다. 아마도 큰 민폐를 끼치고 넝마가 되어 돌아올 것이 뻔했다.
난 한 칼에 거절했다.
그도 그 한 번의 거절이 자신에 대한 거절이라고 받아들인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깔끔하게 받아들인 그는 나보다 훨씬 자존감 높은 애였다.
방석 건으로 요런 뒷이야기가 생긴 건 아무도 모른다.
잠깐의 설렘이 오래도록 이 마음을 촉촉이 적셔주고 있다.
그는 지금 여전히 현직에서 우아한 부인과 아주 잘 살고 있다는...
지난 저녁 산책을 나갔다.
천변으로 장미가 띄엄띄엄 피어올랐다.
이미 이른 날에 핀 장미는 만개 후 스러져가고
아직 피지 않은 봉오리는 여전히 수줍어 자태를 드러내지 못한다.
적당히 꽃잎을 열어낸 장미가 고왔다.
내 마음을 훔친 건 바로 위 장미였다.
풋풋하게 뻗은 잎이 향기마저 아름다울 듯.
코를 대어보았다.
향기로왔다.
고귀해서 절대 만질 수도 없을 것 같았다.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이 충만했다.
딱 고 시절, 설레던 마음이 장미로 피어난 듯.
멈추고 싶은 시절이다.
그때는 몰랐다.
과거의 흔적을 찾아 열두 번째 문으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