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행과 완행의 버스가 들고 나고, 돌아오고 떠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분주한 곳. 그 옆 유리창 너머 마주 보고 앉은 너와 내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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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후, 너는 직장으로, 나는 대학이란 곳으로 서로 다른 방향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날 촌스런 다방 한 구석에서 처음 만난 거야. 너는 첫 월급을 탔다며 내게 용돈을 건넸지. 40년 전 만 원. 아마도 너는 월급의 십일조를 내게 준 것 같구나. 고마워~ 친구야!'
중학 3학년 때 당꼬 바지 교복 입었다고 그리도 나를 흘깃거리며 수군대던 그 애가 평생 친구가 되었다.
'너를 알지도 못했던 그때, 나도 너를 꽤나 못마땅해했지. 알긴 아니?ㅋㅋ'
평생 절친이 된 사연 갑니다.
그녀의 집은 내가 사는 지역과 동떨어진 곳이었다. 나는 읍소재지라 도보행, 그녀는 면소재지로 여중에 입학하면서 버스를 타고 등하교를 하였다.
나보다 체구도 작은 것이 날라리 같은 애들이랑 어울리며 나를 보고, 막말로 재수 없게 굴었다. 같은 반도 한 번 안 했는데 말이다. 내 눈에 그 애는 왕재수였다.
말은 안 섞었고 당꼬바지 교복으로 눈엣가시가 되었다. 말은 왜 그리 많고 애들이랑 어울리며 떠드는지... 그런 갸가
고등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이 되었다.
갸는 어떠했는지 몰라도 나는 교복 문제로 안중에도 없었다. 학년이 시작되고 몇 달이 지나도 사적인 말을 트지도 않았다. 그저 날라리 부류라 생각했다. 그러나 옆에서 보는 갸는 늘 밝고 유쾌했다. 많이 웃고 꽤나 익살스러워 급우들과 잘 어울렸다. 이상한 점은 날라리라 생각했는데 학교 생활부 선생님과 웃으며 아는 체하고, 말을 하는 본새를 보니 친하게 보였다. 공부는 별로인 듯하나 재능이 많아 보였다. 학년 봄 소풍 등 행사 때는 사회를 보기도 했다. 말솜씨도 보통이 아닌 듯. 그러나 나랑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교련 시간.
보통 교련 시간에는 제식 훈련 등 야외 활동이 많은데 그날은 교실에서 교과서로 공부를 했다. 여름이었던 것 같다.
그날 수업 시간, 우리는 무언가 선생님의 심기를 건드려 단체로 벌을 받게 되었고, 그 벌은 의자를 들고 서있기였다.
수업 시간 절반을 지나 슬슬 신음 소리가 나오려고 할 지경까지 왔다.
교단에서 여전히 화난 모습으로 서 계신 교련 선생님은 ROTC 출신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여고생들 사이에서는 은근 공포심을 가졌는데, 조금은 세련된 모습의 반곱슬이 잘 어울려 또한 은근 인기가 있었다. 작은 체구지만 꽤나 강단 있고 엄격해 보였다.
조용한 가운데 시간은 계속 흘렀다.
그러다 갑자기 의자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갸의 의자였다.
선생님은 여전히 엄격함을 유지해야 해서인지... 그 친구를 앞으로 불렀다.
"의자 떨어뜨린 사람, 앞으로 나와."
앞으로 나간 갸는 평소 내가 생각했던 모습과 달리 무서움을 느끼는 것 같았다.
"선생님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깍듯이 용서까지 비는 모습이 내게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선생님은 엄한 투로 말씀하셨다.
"반항하는 거야?"
"아녜요. 제가 의자를 일부러 그런 게 아니고 팔에 힘이 없어서 떨어뜨린 거예요."
갸는 떨리는 음성으로 ㅡ왜냐면 갸는 힘이 없이 지쳐 보였다.ㅡ 말했다.
그래도 선생님은 그 친구를 오해하시는 것 같았다.
그런 분위기에 우리들은 의자를 더 꽉 잡고 버텼다. 힘이 빠져 놓치면 더 큰 화가 미칠 것 같아서였다.
교탁 앞에서 힘이 없어 떨리는 목소리로 잘못했다고 용서해 달라고, 진짜 일부러 한 게 아니고 손에 힘이 없어서 떨어뜨린 거라고 애달프게 매달리는데도 선생님은 급기야 엄명을 내렸다.
"수업 시간 끝나고 교무실로 와."
그 친구는 진짜 오해를 풀기 위해 애원하듯 말했지만, 선생님은 부동이었다.
'에이 내 귀에는 쟤 말이 진심으로 들리는데, 왜 선생님은 안 믿는 거야...'
마음에서 뭔가 불뚝 올라왔다.
나도 모르게 조용한 분위기에서 내질렀다.
난 확실히 그 친구보다 말은 못 했다.
"일부러 그런 거 아니라잖아요..." 말을 했지만 끝은 흐지부지다.
순간 흐느끼듯 하던 갸도 조용해졌다.
"누구야?"
선생님의 큰 외마디가 들렸다.
나는 조용히 있다가 '에라~' 하고는 줄줄이 나오는 대로 말을 이었다. 참 지금 생각해도 웃기다. 친한 친구도 아니고 말이지. 그럴 이유가 없는데 왜 그랬는지. 인연이 되려고 했나.
나는 나 자신도 황당하게스리 예를 든다고 들었는데 영~~~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아도 이런 예였다.
'아이가 밥상 앞에서 수저를 떨어뜨렸다. 아이가 아버지께 실수로 떨어뜨렸다고 말하면 아버지는 그것을 일부러 했다고 생각하지 않고 믿어주지 않는가. 오히려 수저를 바르게 잡으라고 다시 가르쳐 주실 것이다.'
나도 선생님이 무서웠고 분위기에 얼어 있어 좀은 횡설수설했지만, 이런 예를 들며 구시렁거렸다.
나는 선생님의 불호령을 감당하리라 의연한 결기를 다지기는 했다. 그러나 예상외로 선생님은 내 말이 끝나고도 잠시 침묵하셨다. 오히려 종알거리듯 하는 내 얘기를 들으신 것 같았다. 이미 한참 중얼거려서 어느 쪽에서 누가 한 말인지 들통은 다 났다. 지금 생각하면 기분 나쁘게 생각하셨을 수도 있는 얘기였다. 역시 선생님들은 어른이셨다.
수업 시간이 흘러 종 치기 전,
"됐어. 들어가."
갸는 교무실 행에서 풀려났다.
선생님은 나에게도 아무 말씀 없으셨다. 종이 울리자 조용히 나가셨다.
그다음 날부터 갸는 내게 다가와 친절을 베풀었다. 갸 역시 똑똑해. 공부 머리는 몰라도 사회성과 분별력은 우수한 인간임을 알았다.
그 후에 갸는 나를 자기 집에 데리고 갔다.
가만히 하는 짓을 보니, 참 착한 아이였다. 어머니께 하는 행동을 보고 내가 가졌던 생각이 편견이었음을 알았다. 마음 씀씀이가 참 예쁜 아이였다. 내게도 참 친절했다. 늘 도와주고 협조적이었다. 우리는 쭈욱 친구가 되었다. 그 친구가 바로 내 고 3 첫 모의고사 수학 답지에 쓰라고 번호 불러준 친구이다. 내게 빙신이라고 불러도 봐 줄 만한 친구.
지금까지도 의리 하나는 끝내준다.
나를 늘 격려해 주는 여장부 같은 담담한 친구이다. 이제 나이 들고 친정 식구들의 이런저런 사별을 겪으며 슬픔 속에 허덕대는 것을 보니 마음이 세심하고 여린 부분도 있었구나 싶지만 말이다.
내가 고민할 때 그 친구는 늘 말했다.
"ㅇㅇ야, 제발 신경 좀 끄고 살아."
이제 나는 신경 끄고 사는 법을 안다. 내가 편하게 사는 것을 보면서 친구는 흐뭇할 것이다.
23년에 손목 부러졌을 때 김장 담가 보내주고 이것저것 살뜰히 챙겨 보내주었다.
사람은 진짜 겪어봐야 안다는 걸 가르쳐 준 귀한 친구이다.
진짜 지혜롭게 산다는 것, 현명하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친구이다.
똑똑하다는 것은 기억력이 좋아 시험 문제만 잘 푸는 게 아니라는 것을 내게 증명해 보여준 친구. 위트가 넘쳐 늘 웃음바다로 만드는 재주를 가진 친구.
나를 무한 신뢰해 주는 평생 친구.
그 친구, 팔힘과 앙력이 약한 것 맞다. 거짓을 말하는 친구 아니다. 내 평생 인연으로 점찍어 보내주신 것이지.
이런 사연으로 우리는 평생 친구가 되었다.
그 다방에서 친구가 준 용돈을 쉽게 생각하고 받았다. 물론 거절은 했으나 친구는 양보 없이 웃으면서 권했다. 그 마음이 얼마나 귀한지를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다.
그 후 그 친구는 자녀들을 키우면서 그 어려운 방송통신대학에서 공부를 이어갔다. 참 대견스럽고 자랑스럽다.
사람됨됨이와 진심을 보게 되면 변함없는 우정을 쌓게 되더라니......^^
추억의 흔적을 찾아 열네 번째 문으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