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과 정체성, 사람이 산다는 것
6월 7일 지하철 계단 낙상사로 두 다리가 망가졌습니다.
왼쪽 다리는 비골과 경골이 부러져 철심을 박았고, 오른쪽 다리는 인대가 완전 파열되고 복숭아뼈가 안팎으로 금이 갔습니다.
두세 계단 굴렀다고 누구나가 저 같지는 않습니다. 소식을 들은 이들은 누구나 염좌나 실금 또는 심해도 단순 골절이라 생각했는지 나의 상태를 듣고 모두가 놀랐습니다.
두 다리에 깁스를 하고 절대안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니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병원에 입원해서 침상 생활을 하게 되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몰랐던 사실들은 새로 깨닫게 됩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유쾌한 에피소드는 없습니다.
119에 실려와 입원하고 병실로 옮겨졌다.
두 다리에 깁스를 하고 보니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상체뿐이었다. 그나마 부러졌던 손목이 무사해 다행이라 생각했다.
손목골절 수술 때는 몰랐던 문제. 화장실 사용 문제였다. 첫날밤, 당장 소변은 간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나, 대변이 문제였다. 놀란 마음이 진정되지 않음도 있었지만, 당장 화장실 문제로 밤새 잠이 오지 않았다. 전신 와상은 아니라 어찌하든 방법을 궁리했다. 당장 여성으로서의 성 정체성과 인간의 존엄 유지 문제에 봉착했다. 와상 환자를 위한 침대 개조를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침상은 이상적 침대는 아니었다. 어찌 극복할까를 생각 끝에 상체를 이용해 화장실 이용에 도전하기로 했다. 안된다고 하는 것을 사정하여 도움을 청하고 휠체어를 이용해 도전했다. 나는 성공해서 수치와 민폐는 면했다.
'모든 와상 환자들의 존엄을 위한 작은 몸부림이라도 지켜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문득 화장실이 가고플 때, 두 다리 턱 내리고 일어서던 때가 그리워졌다. 그리고 느꼈다.
'아차~ 안 되는 게 현실이구나.'
존엄 속 여성의 정체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아~ 지키고 싶은 것을 지킬 수 없는 것도 현실이구나.' 했다.
비참했다.
수치의 문제가 가장 근접한 존엄의 문제였다.
존엄의 가치는 육체적 수치로부터 지켜져야 하는 게 맞는가? 생각할 문제이나 일단 현실에서는 당면한 문제였다.
병원에 들어와 보면 나보다 더 아픈 사람도 많다는 것을 실감한다. 앙와위(바로 누운) 자세로 꼼짝 못 하고 있는 환자를 보며 얄궂게도 저 환자보다 내 상태가 낫구나 싶은 안도감. 긍정심도 아니고 비교하며 좋아할 일도 아니나 그 안도감마저 젖어드는 비애임을 느낀다.
사람이 얼마나 한없이 약해지는 존재인가를 절감한다.
내가 뭘 할 수 있다는 생각보다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아무리 건강했고, 장사라고 뽐내던 사람도 일주일, 이주일만 지나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너무나 적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병상 9일 차이다. 육체는 한 평도 안 되는 작은 침상 안에서 생명 유지를 위한 모든 걸 해내야 하는 애처로운 존재이다. 고귀한 정신을 빼면 와상인 채로 얼마 있으면 썩어갈 별거 아닌 유기물 덩어리의 작은 육체라는 생각에 비애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육체의 무너짐은 정신을 훼손시킨다. 한없이 약해져 가는 모습도 지켜봐야 한다. 포기와 좌절, 절망의 길은 그리 멀지 않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가 알게 모르게 열외 되어 살아간다. 특히 지체 부자유의 환자들, 약자들은 건강하게 움직이며 돌아가는 세상으로부터 특히 열외 되고 있다. 감정의 보살핌으로부터 더욱 그러한 듯하고 병원이라는 특수한 장소에서는 더욱 그러하게 보인다.
병원은 인간 본연의 정신적 가치가 없다면 존엄으로부터 열외 되는 장소가 아닌가 싶다.
많은 일이 타인의 손길을 받아야 가능하니 인간으로서 자신의 효능감은 추락하고 만다.
삶에 대해 깊이 사유하고 사람이 사는 이유나 의미 등을 늘 생각했으나, 부지불식간 맞닥뜨린 사고 앞에서 불확실한 삶과 우연성, 필연성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현실에서 보이는 나의 생각과 감정은 사유의 깨달음, 깨친 이론과는 늘 모순됨도 느낀다.
전지전능하신 분께 의존해 위로받고 희망을 가지나 순간순간 절망의 벽 앞에서 놀라곤 한다.
그래도 시시각각 들려오는 소리에 감각하며 살아 있음에 감사하기도 한다.
넷플릭스에서 보던 '빨간 머리 앤'을 보며 깔깔거리며 웃는다.
'Rivers of Babylon~' 팝이 나오니 누워서도 엉덩이를 들썩이고 손을 까닥 대며 어깨춤을 춘다.
도대체 사람이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말이다. 나의 물음은 늘 되돌이한다.
어둠 속에서 우울감이 들다가도 밝아지면 다시 기지개를 켜고 병상 위에서의 루틴을 시작하고
울다가도 웃고
고통 속에 있다가도 신나는 노래가 나오면 어깨춤을 추고
식사에 맛있는 것이 나오면 미각을 즐기며 푸짐히 먹고
전에는 전혀 개의치 않던 아주 사소한 일을 해내고 ㅡ화장실 볼일 같은ㅡ 너무나 기뻐 소리치고 자랑스러워한다.
세상 모순뿐 아니라 인간인 나도 모순 덩어리라 인식하고 있지만, 이토록 가벼이 널을 뛰니... 혹시 또 닥쳐올지 모르는 불행도 잊지 말라는 남편의 말은 잠깐씩 뒷전이 되고, 나는 매우 매우 철없는 아이가 된다.
삶은 주어진 로드맵을 생각하며 사는 게 아니라 닥치는 대로 사는 것이라는 생각에 또 이른다.
순간순간 올라오는
'나에게 이런 일이?'
아니, 나도 똑같다. 그러나 늘 자신에게는 이런 일이 없을 줄 착각 속에 사는 것이 우리 아닌가!
'왜?'
아니, 왜는 물어 뭐 하랴. 누가 안다고...
살인적 통증을 경험하고 나니 웬만한 통증은 쉽게 견딜 수 있고 결과는 참담하나 사고가 슬로가 아닌 인지할 수 없는 순간의 고통으로 끝났다는 것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느닷없이 당한 사고에 황당하고 참담하긴 하나, 죽는 문제가 아니고 불편한 시간이 흐를 뿐이라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