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과 부조리, 그리고 역설의 세상
모순과 부조리의 세상일 수밖에 없는 이유
모순된 모습들
부조리한 인생
모순과 부조리 속에서도 느껴지는 역설적 진리
참 아이러니합니다.
제 모습도, 제 마음도, 돌아가는 세상에서도 멀미 나도록 어긋난 것들을 봅니다.
카뮈는 신에 거역하고 끝나지 않는 벌을 묵묵히 받는 시지프를 통해 부조리한 세상에서의 인간의 한계와 삶을 극복해 가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끝나지 않는 벌에 대해 깊은 사유의 문제를 던졌습니다.
이 세상은 왜 그럴까?
왜 한 인간조차도 그 모순 속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시지프는 삶의 무게를 감당하지만 내려오는 길에서 깊이 탐구했겠지요. 신화 속 이야기는 지금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죄로 인함이 아닙니다.
프리드리히 니체가 그랬다죠. 신에게 고통으로부터 구원받기보다는 너 자신 스스로가 심오해지는 길을 선택하라고요.
그도 신부터 모순되었음을 알고 있었던 걸까요.
'인간의 상과 신의 상'에서 칼 융은 신의 상을 이리 분석하였습니다.
신은 가공스러운 이중적인 면을 갖고 있고 신 자체가 사랑의 대상인 반면 두려움의 대상이라는 대극의 면을 가진다고요.
'신이 내리는 은총의 바다는 끓어오르는 불바다에 부딪히고 사랑의 빛은 어둡게 타오르는 열기 위에 비춘다.' 은총도 주시지만 뜨거운 불바다 속에 공존하는 신의 상입니다. 누구도 알 수 없는 신이지만, 그 신도 모순되고 하나님 자체가 선이며 사랑이지만, 악에 눈감으신 분이며 인간을 고통으로부터 구원하시지 않습니다.
신의 모순은 인간을 대극으로 찢어놓고 겉보기에 해결될 수 없어 보이는 갈등에 놓이게 합니다. 즉 사랑과 두려움, 선과 악, 은총과 고난, 구원과 핍박을 함께 주시며 무한한 사랑을 주시지만, 예측지 못하는 시험적 고난도 주십니다. 그러면서 태연자약하십니다. 이것이 신의 모순입니다.
어두운 신은 원자폭탄과 화학 전쟁물질을 손에 쥐어주어 살생하게 하고 더불어 계명을 지키지 않는 인간들에게 분노를 일으키십니다.
그러할진대, 우리 인간이 어떻게 신격의 본질에 있는 감당하기 어려운 모순을 견디어낼까요? 융도 그리 말합니다.
인간의 문제는 신의 모순을 인정하지 않고 ㅡ저조차 그리 믿으려 했습니다.ㅡ 그저 기독교에서 말하듯 선하신 신과 인간 사이의 대극(對極)을 모든 선은 신으로부터 모든 악은 인간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내면의 모순과 부조리함을 영원한 죄성으로 인식하고 고통의 세상에서 고뇌마저 하게 되었습니다.
인간과 이 세상의 모순은 나의 사랑하는 하나님부터이며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문제입니다. 따라서 인간이 그 궁금증을 해결할 방법은 칼 융이 말한 것처럼 무의식 속 내면을 성찰하여 신과 인간상을 끝없이 탐구하여 이해하는 것이라 봅니다.
무의식에 들어있는 신성의 상징들을 분석한 융은 신이 인간을 선과 악으로 채운다고 봅니다. 이런 대극의 면에서 우리는 생활 주변에서조차 차고 넘치는 신과 우리의 모순된 삶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 신으로부터 창조된 인간도 모순되고 부조리한 인생 속 주인공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끝없이 고뇌하고 탐구하며 원인을 해결하려 하지만, 결코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한 세상은 그 자체를 인정하라 합니다.
그냥 그리 사는 것이 해답이겠죠.
이 세상을 보던 첫 생각들(기존에 썼던 글입니다.)
전도서 5장 20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인간은 자기의 생명의 날을 깊이 생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 기뻐하는 것으로 응답하심이니라.'
성경의 말씀은 왜 이리 모순적인지요? 문법상 해석이 어려워요.
허무함으로 시작되는 전도서의 첫 구절이 큰 위로가 되던 때가 있었습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
그러고는 해 아래 새것이 없나니....
전도서의 이 말씀을 묵상하며 이 세상을 그리 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니 치열하게 들끓던 제 마음에 포기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평범이의 눈으로 보면 왜 해 아래 세상에 새것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너무나 무력하다 느낀 저는 하나님 말씀을 믿고 세상을 보았습니다. 그러니 보이긴 했습니다. 그도 제가 보는 세상에 대한 견해이겠지만요.
부처는 공불이색, 색불이공이라 했는걸요. 세상은 불이(不二)가 아닌 하나라고 했는걸요... 이런 가르침이 우리 눈과 마음으로 보면 가당키나 한가 말입니다.
그러나, 먼저 믿어야 보이고 가능하다는 말은 신앙적으로 꼭 명심해야 할 말인 듯합니다.
한동안은 헛되고 헛된 세상을 왜 살라 하실까? 새것 아닌 재활용된 세상에 왜 살고 있는가? 까지 생각했습니다. 그런 생각만큼 저의 살과 뼈가 녹아내리는 듯 무력함을 느꼈습니다. 힘이 계속 빠졌습니다. '진정 헛된 것인가?'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제 생명이 이 세상에 발붙이고 있는 한, 실명함을 걱정하시는지 미세한 빛으로 인도하고 계심을 알았습니다.
결코 헛된 세상이 아니니 헛되다 생각하고 살지 말라는 역설의 뜻임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을 닮았지만, 나약해 흔들리고 또 흔들리는 인간이기에 세상 바라보는 눈을 한결같이 그리 가지며 위로받으라는 뜻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담긴 사랑법입니다. 큰 뜻이라 생각했습니다.
해 아래 새것이 없습니다.
과학 상식인 물리적으로 보더라도요... 휴지가 나무로 만들어져요. 휴지는 새거라 말합니다. 그러나 진짜? 나무는 새것인가요? 새로 태어난 나무는 진짜 새것인가요? 그 속에 들어있는 입자가 새것 맞나요?
사람도요... 유전자가 새것이라 말할 수 있나요
생각해 볼 일입니다.
다시...
'인간은 자기의 생명의 날을 깊이 생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 기뻐하는 것으로 응답하심이니라.'
이 말씀에 대한 제 생각은요...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한 것과 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옵고~'와 형식이 오버랩됩니다.
그리고
부모님들이 자식에게 하는 가르침 중에 특히 이런 말요.
언제는 '사람을 믿지 마라. '
또 언제는 '사람을 믿고 살아라.'
도대체 자식을 사랑하시는 부모님의 말씀인데, 어느 장단에 맞춰 살아야 한답니까.
믿지 말라는 말도 믿으라는 말도 틀린 것 아니라고 다들 생각하실 겁니다.
다 맞는 말이잖아요.
그래서 모순되지만, 타당하고요, 이는 역행과 역설의 의미를 담고 있지요. 이 세상을 보는 눈은 그런 눈이어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닮은 형상으로 만드셨기에 모든 권한도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는 기독교적으로 원죄라는 것을 주셨죠. 신의 창조로부터 세상은 모순된 세상이었다 봅니다.
그러니, 인간이 흔들리는 세상에서 살 수밖에요. 모순되고 부조리한 세상은 인간 스스로 만들었으며 돌을 올리는 시지프처럼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인정하여 달게 받을 일입니다. 자숙하고 말씀을 지키며 사는 인간을 하나님은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 안에 계실 하나님이 이미 우리 죄를 용서한 것처럼 서로를 용서하라는 주기도문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세상은 새것 없고, 헛된 세상, 모순되고 부조리한 세상이니 그 덧없는 세상에 너무 마음 쓰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생명의 길고 짧음도 개의치 말고 그저 기뻐하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그리 사는 인간에게 기쁨을 주십니다.
날은 셀 것도 없이 하루하루를 기쁨으로 살도록 충만한 은혜를 이미 내려주심이죠. 이 말씀에도 모순이 그득합니다. 우리 인간에게 현실의 시간들은 너무나 길게도 느껴지는데요. 게다가 행불행이 들락날락하는데 기쁨이 은혜라니요..
모순의 삶 속 자세
알려는 노력이 필요할까요?
그리 이해하고 인정하고 살랍니다.
모순, 타당
옳고, 그름
이도 맞고 저도 맞습니다.
그런데도 다툼이 일어나니, ㅡ이도 모순 같지만ㅡ옳게 보는 시각을 가져야 하고 깊이 사고하여 보는 마음의 눈도 필요하긴 합니다.
하나님의 뜻도 역설을 담고 있는걸요. 인간은 오죽할까요. 세상은 온통 모순덩어리입니다.
그를 인정하고 모순되는 생각과 행동을 고쳐보는 자세를 취하는 것도 지혜겠지요.
진짜 머리 좋고 학습력이 좋은 사람은 많이 외워 시험 잘 보는 사람보다 자세와 삶의 방향을 틀 수 있는 사람이라잖아요.
이도 맞고 저도 맞으니 가능한 다투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그도 힘들다는 것도 물론 인정합니다. 그 한 스텝 떼어 나아가야 할 길이 그러니 먼 것이겠죠!
그러니 세상이 공정하고, 타당하게만 돌아가지 않는다고 불만일 것도 없고, 말도 안 된다고 반박할 것도 없는 듯합니다. 신도 모순인걸 우리 인간이 어쩌라고요... 인정하고 살아야겠습니다.
세상엔 완전히 맞는 것도 완전히 틀린 것도 없는 것 맞아요. 1+1=2를 말하는 것 아니고요. 우리네 삶 속 이야기입니다.
역설도 위트 있게 풀어가는 방법인 것이죠. 재밌잖아요!
다리가 부러지는 불행이 왔지만, 또 올지도 모를 행운을 생각하면 힘도 생깁니다. 정답 있는 똑 떨어진 세상이라면 이런 우연의 기회들도 기대하지 않을 듯합니다만... 님들은 어떠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