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과 하드가 맺어준 인연
아버지께서 재혼을 하신 후, 살던 집을 팔고 관공서와 좀 더 큰 신작로가 뻗어있는 동네로 이사 왔다. 넓은 마당에 탁구대가 있고 대추나무가 있는 널찍한 신식집이었다. 파란 철제 대문이 있는 그 집은 우리 집이 아닌 주인집이고 우리 집은 그 집 대문 쪽 담장 옆으로 붙어있는 식당이었다. 부모님은 식당으로 성공은 못했기에 오래 하지 않았지만, 나는 살림집과 식당이 연결된 그 집에서 늦은 2학년 때까지 살았다. 그러다가 할머니가 근처에 집을 사서 이사오시는 바람에 할머니랑 살게 되었다.
부모님과 살 때는 육성회비를 못내 학교에서 쫓겨난 적은 있어도 특별한 결석 없이 학교에 다녔었다.
부모님께서는 작게 중국집을 하셨다.
그 시절 짜장은 우리 집 주식이었을까. 지금은 짜장면의 향수로 맛있게 잘 먹지만, 자주 먹어서인지 짜장면과 단무지는 그때 이후 40대까지 안 먹었다.
그러나 그 짜장면이 내게 남긴 단짝 친구와의 좋은 추억이 있다.
2학년에 올라가 만난 새 친구는 통통한 체구처럼 붉은 기가 도는 얼굴의 볼도 통통하고 건강해 보이는 피부를 가진 아이였다. 눈동자는 검고 컸으며, 머리는 완전 숏커트의 머슴아 같은 씩씩한 아이였다.
그 친구의 집은 이후 할머니가 사신 집 위쪽에 위치했는데 우리 식당과는 좀 떨어졌었다. 그래도 어린 시절 아이들은 건강하고 잘 달리니까 그깟 거리는 별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800m쯤 되었으려나... 그 시절 그 작은 동네는 왜 그리 넓어 보였는지, 그 좁은 골목길들은 왜 그리 넓어 보였을까. 지금은 몇 분이면 이동할 거리가 그 당시는 한참 달려야 하는 먼 거리였다.
그 친구와 나는 학교가 끝나면 둘이 함께 하교를 했다. 한 번은 친구 집에 들렀다 우리 집에 오고 한 번은 우리 집에 들렀다 친구 집으로 갔다. 서로 가방을 놓고 밖으로 놀러 다니기도 했지만 주로 친구집이나 우리 식당 주인집 마당에서 놀았다. 놀다가 배가 고프면 함께 짜장면을 먹었다. 짜장면으로 배를 채우고 놀다가는 친구 집으로 갔다. 친구 어머니는 키가 크고 짧은 머리에 펌을 하셨던 것 같다. 우리가 가면 커다란 냉동고에서 아이스바(하드)를 꺼내 주셨다.
그 냉동고가 있는 이유와 하드가 척척 나온 이유를 나중에 알았는데, 친구네는 아이스바 도매업을 하셨다.
여튼 우리는 짜장면과 하드를 무척 자주 먹었다. 여름날에는 친구집을 매일 드나들었다. 우리 새엄마도 푼푼하셔서 짜장면에 인색하지 않으셨고 친구 어머니도 하드를 척척 주셨다. 우리는 짜장면과 하드가 맺어준 인연이었고 그 솔솔한 재미로 우정도 깊어갔다.
이후 4학년 때까지 그런 절친이 없었다. 지나서 생각하니 국민학교 시절 중 2학년 그때가 가장 행복했던 때였다.
시원한 하드로 더운 여름을 지내고 가을이 왔다.
어느 날, 수업 2교시쯤이었다.
교실 앞문 밖에서 유리창으로 교실 안을 들여다보시는 친구 어머니 모습이 보였다. 아줌마를 발견한 몇몇 아이들이 밖을 보자, 선생님께서 알아보시고는 복도로 나가셨다.
교실 문밖에서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시는가 했더니, 잠시 후 선생님께서 들어오셔서 친구를 불렀다. 친구가 가방을 챙기는 동안 열린 문 앞에서 친구 어머니가 기다리고 계셨다.
" ㅇㅇ이 전학 간다."
연세 드신 남자 선생님의 건조한 한 마디가 끝나고 친구는 어머니 손을 붙잡고 갔다. 그 시절의 2학년 아이답게 돌아보지도 않고, 인사도 없이 갔다.
그 친구의 부모님은 우리와는 다르게 고향 토박이가 아니었고 사업차 이사 왔었던 것 같다. 그 동네를 떠날 것이 예견되어 있었던 듯했다. 이후 근처로 이사 가서 살게 되었던 나는 동네 분들께 그 아이스바 도매점과 친구에 대해 물었었다. 그러나 그 친구네를 기억하는 사람을 못 만났다. 그렇게 나는 꿈속에서 만났던 것처럼 그 아이를 잃었다.
외로움을 알기도 전인 어린 시절, 단짝이었던 친구가 갑자기 전학을 가게 되니 많이 허전했겠다. 무슨 재미로 지냈을까 싶지만, 어렸던 그 당시는 잘 모르고 지나가는 듯싶다. 그리움이나 외로움 같은 것을...
말 한마디, 인사 한 마디 나누지 못한 채 절친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2학년 때 어느 날 수업 중 일이었다.
내가 좀 더 영리하고 용감했었더라면... 늘 그대로 보내 잃어버린 친구가 그립다. 지금도 그렇다.
그 친구는 서울 도봉구에 있는 학교로 갔다고 나중에 선생님께 들었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기억이 있는 옛 동네, 어린 날 친구를 떠나온 후에 친구가 없던 꾀죄죄한 여자아이의 유일한 친구였다.
붉은 볼과 검은 큰 눈의 친구, 여전히 숏컷을 하고 있을까?
그 친구는 그 시절의 내가 어딘지도 모르던 서울시 도봉구의 어느 학교로 전학을 갔다. 친구 이름은 그 흔한 '김미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