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25> 인연의 흔적... 할아버지의 슬픈 치매

할아버지가 곁에 계셔 덜 외로웠다.

by 소망

영혼의 짝을 부부로 만나는 행운은 어떤 이에게 오는 것일까?


나름 부유한 집에서 자라나신 할머니에 비해 증조부모께서도 어려운 살림에 할아버지의 삶도 늘 고단하셨단다.

시골 살림에 부지런하신 것도 아니요, 살림에도 숙맥이셨던 할머니와 그저 가진 몸으로 일만 하실 줄 알았던 할아버지의 만남도 살가운 인연은 아니었으리라.


내 기억 속에 아픔으로 살아계신 인연은 할아버지셨다. 살가운 인연이 아닌 두분의 삶도 아픈 삶이었다.


또 하나의 물음.

욕은 유전되는가?

할아버지의 욕은 보편에서 좀 거리가 있다. 신체 장기를 하나씩 팔아야 하는 헬머니의 욕 수준도 있다. 할아버지의 욕이 아버지께 유전되었는지 신체까지는 아니어도 아버지도 욕을 잘하셨다. 그러면, 할머니나 새엄마는? 수직의 유전 말고 수평으로도 욕은 전염되는가 보다. 그래서 나는 욕에 저항했고 욕은 입에서 키우는 지렁이라고 세뇌했다. 그래도 60년 사니, 욕이 주는 찰진 정감이 있어 한 번씩 절친 사이에 쓰곤 한다. ㅎㅎ


할머니는 즐겁게 사셨지만, 내가 지켜본 할아버지의 남은 삶은 욕으로 분출되어 더욱 슬픈 것이었다.




연속되는 집안의 불운으로 우리 엄마인 며느리부터 생때같던 두 아드님을 연이어 잃으셨다.


할아버지는 큰 키에 많이 마르셨고 얼굴도 광대가 있는 긴 골격으로 완고해 보이셨고, 조용한 분이셨다. 늘 호박이 달린 전통한복 바지저고리를 입고 사셨는데, 옷은 흐트러짐 없이 늘 단정히 여미셨다.


2학년 때, 시골 살림을 접고 할머니는 읍내에 집을 한 채 사셨다. 이후 오빠와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살게 되었는데, 그때는 할아버지의 건강도 더 나빠지셨고 표정도 어두워지셨다. 치매증상도 점점 더 잦아졌다.

어두운 방에서 등불 하나 켜고 화투로 점을 치는 놀이로 소일하셨다.



요양사 공부를 할 때 치매교육을 받았는데, 생각해 보면, 할아버지의 기억이 들락날락한 것은 맞는데, 집을 못 찾으시거나 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아 심리적 충격으로 인한 불안 또는 기억소실 증세 같다. 그 시절, 할아버지는 분명 환자셨다. 그러나 어떠한 돌봄과 간호를 받은 일이 없다. 할아버지는 심리 불안정에서 온 단기 증세였지만, 케어 부재로 치매로 진행된 상태였다고 확신한다.


밝은 햇빛을 보고 바람도 쐬어야 생기도 얻는데 할아버지는 늘 안색도 분위기도 어두우셨다. 치매기가 발동하면 세상에 대한 울분이라도 터뜨리시는 듯 싸움쟁이처럼 욕을 해대셨다.



새엄마와 함께 살 때는 할아버지의 치매기가 새엄마를 향했다. 그러면서도 새엄마가 낳은 동생을 매우 예뻐하시고 살뜰히 챙기셨다.

그러나 나와는 조용한 평화 아니면 전쟁이었다.


할아버지께서 제정신으로 돌아오실 때는

"에미 없이... 이 불쌍한 것... 쯧쯧."

치매기가 발동하시면

"이 x야, 내 ㅇㅇ 어디 뒀냐? 다 갖다 버렸냐?" 하며 뭔지 모르는 소리를 하셨다. 치매 때문인지도 몰랐던 내가 말대꾸를 했고, 할아버지는 익숙한 행동처럼 이미 손에는 지팡이를 휘두르며 나를 쫓아 달려 나오셨다. 온 집안을 숨바꼭질하듯 뛰어다녔다. 후에 생각하니 톰과 제리의 쫓고 쫓기는 장면 같아 웃음만 나왔다. 그런 일이 수시로 있어 따로 운동하지 않아도 운동이 되었고 영화는 못 봤어도 긴장과 스릴을 느낄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마른기침과 가래를 늘 달고 사셨다. 동생의 분유통을 가래침통으로 쓰셨다. 방에서 거의 나오시지 않았고 캭~캭~ 하며 늘 침을 뱉으셨다. 치매가 올 때는 늘 화를 내셨는데, 그때는 조심해야 했다. 안 그러면 가래통이 날아오기 때문이었다. 그 통을 매번 비우고 버리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 그때는 너무나 싫어서 억지로 했다. 담배를 계속 피우시니 담뱃재와 가래가 함께 섞여 있어 정말 더러웠다. 어른이 되어 보니, 좋은 마음으로 해드리지 못한 것이 죄송하다.



할머니가 서울에 자주 가셔서 집안 살림을 해야 할 때는 장기 결석을 하며 할아버지와 동생을 돌보아야 했다.


어느 겨울날, 동생이 오줌을 싸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이불 홑청을 벗겨 빨아야 했다. 오전에 미적거리다 오후에 하게 되었다. 따듯한 물에 치대기만 하고 찬물로 헹구고 있는데 갑자기 할아버지께서 나오시더니 오밤중에 재수 없이 빨래한다고 욕을 하시며 빨던 이불 홑청을 빼앗아 길거리에 버리셨다. 더 큰 후환이 두려워 말대꾸는 못하고 울면서 흙과 범벅된 빨랫감을 주워다 몰래 다시 헹궈야 했다.


내참~~ 지금은 헛웃음만 나온다. 할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모든 일들이 슬픔으로 다가오고 무지의 삶이 안타깝다.




중1학년 과정을 쉬면서도 집안 살림을 도왔다. 할머니가 안 계실 때에는 할아버지와 동생을 챙겨야 했으니까. 아버지와 오빠도 그때는 기억 속에 있다. 중학생인 오빠 밥도 해 줘야 했다.


할아버지와 나는 떨어진 적이 없었다.


어느 날부터 할아버지는 자리 보존하고 누우셨다. 환자에게 좋은 환경이 아니었다.


가을의 어느 날 저녁.

부엌에서 밥을 하고 있었다. 할머니께서 나를 부르셨다.

"ㅇㅇ야, 빨리 들어와라~"

어떤 상황인지 조차 난 아무것도 몰랐다. 내가 방으로 들어가니,

"할아버지가 눈을 안 감으신다. 널 보고 가시려나 보다. 얼른 할아버지 봐라." 하셨다.


"할아버지~" 외마디만 했다.

그러고 나서 뒤로 물러섰다. 죽음에 대해 생각도 못했고 늘 나를 괴롭히신 할아버지께 잔잔한 정도 느끼지 못했었다. 그저 할머니께서 뵈라고 하니 가까이 가서 불러보았을 뿐이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께 말씀하셨다.


"이젠 ㅇㅇ 봤으니 눈 감고 잘 가시우."

잠시 후 할아버지는 눈을 감으셨다.


난 고약하게 구셨던 할아버지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해 별 감정이 없었는데, 할아버지는 그렇지 않으셨나 보다.


그날 그렇게 나와 끈끈하게 엮여있던 인연의 한 끈이 떨어졌다.




30대 중반, 딱 한번 할아버지를 꿈에 뵈었다.


놀이터에서 어린 내가 할아버지와 술래잡기를 했다. 할아버지는 생전에서처럼 꿈에서도 한복을 입고 계셨는데 깔끔했다. 환하게 웃으시며 나랑 놀았다. 생전에 어미 잃은 손녀랑 놀아주시고 싶었나 보다 했다. 그 꿈 꾼날에 내게 좋은 일이 있었다. 그 후 할아버지를 또 꿈에서 뵙길 바랐지만 다시는 뵙지 못했다. ^^


할아버지가 뵙고 싶다. 따뜻한 말 몇 마디 건네드리고 싶다. 사시느라 애쓰셨다고, 사랑한다고, 그리고 할아버지가 함께 계셔주셔서 덜 외로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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