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27> 인연의 흔적... 나를 잊은 친구

by 소망

국민학교 시절 내 마음에는 단 두 명의 친구가 있었다. 두 친구의 흔적은 내 마음에만 남아있다.


한 친구는 연재 26>의 2학년 때 잃어버린 미영이이고 한 친구는 5학년 때 좋아했던 김ㅇㅇ이다.


5학년에 올라가 그 애를 만났다. 키 순서대로 번호를 정하던 때에 마른 편이나 나보다 조금 더 큰 그 애가 내 뒤 번호가 되었다. 아침마다 운동장 조회를 서던 때라 앞뒤로 줄을 서면서 더 친해졌다. 그 당시 나는 옷도 없이 꾀죄죄하고 얼굴에는 원인 모를 물사마귀가 잔뜩 있었던 때였는데, 늘 머리도 감아 깔끔한 그 친구도 나를 좋아해 주었다.


ㅇㅇ이는 얼굴은 건조해 보이고 피부는 붉기보다 노르스름했다. 얼굴이 더 그리 보였던 이유는 머리카락 색이 연한 갈색에 노란빛이 보였기 때문이다. 앞이마에는 가늘고 여리한 잔머리가 늘 가리고 있었고 단발머리에 흘러내리는 잔머리를 핀으로 꽂고 있었다. 말수가 적고 조용했으며 내가 말하면 배시시 웃기만 하던 친구였다. 그러나 말을 할 때는 자기 생각을 분명히 전했고, 목소리도 맑았다. 나는 조용하고 차분한 그 애를 좋아했다.


1학기 중 방과 후에 친구네 놀러 간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친구 집은 국민학교와 거리가 있었지만, 외할머니 댁 근처라 익숙한 동네여서 자주 가서 놀았다. 그 친구 집은 할머니 댁에 있었던 보리수 같은 열매가 없어 나는 담장 밖에서 따서 함께 먹기도 했다. 친구의 어머니는 친절하셨고 나를 반겨주셨다. 훤칠한 중학생 오빠와 귀여운 남동생이 있었다. 모두가 밝고 성품이 온화했다. 나는 친구의 화목한 가족이 부러웠던 것 같다.


2학기 들어 나의 결석이 잦아지고 장기 결석자가 되며 어쩌다 한 번씩 가는 학교는 낯선 곳이 되어갔고 친구도 점점 멀어져 갔다. 그래도 ㅇㅇ이가 늘 내 마음에 있었다.

5학년도 어린 시절이고 눈에 안 보이는 친구는 금세 잊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나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며 어쩌다 그 친구를 마주칠 때 내심으로 반가웠고, 달려가고 싶었다. 그러나 중학 재수를 하여 후배들과 함께 중학생이 된 나는 이미 나의 선배가 된 ㅇㅇ이 곁에 친구라 부르며 달려갈 수 없었다.


그 아쉬움이 그리움이 되었다.


각자의 길에서 연락 한 번 한 적 없었다.


그리고 나는 다행히도 교대를 진학해 교사가 되었고 안정된 생활을 했다.


고향을 찾으면 친구가 생각났고, 명절에 외가댁이라도 방문하면 그 친구네 가보고 싶었다. 그러나 12세 때 잠깐 만났던 친구라며 찾아가기엔 용기가 나지 않았다.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니, 꾀죄죄하고 소심했던 옛날보다는 친구 앞에 좀 더 당당하게 설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리운 친구를 어른이 되어 만나보는 것도 뜻있는 일로 생각되었다. 분명 ㅇㅇ이도 야무지고 성실하게 공부 잘했던 아이라 잘 살고 있을 거라 믿었다.


나는 내 마음을 말하고 웃으며, 회한하며 어른 된 우리의 만남을 즐기고 싶었다.


30대 중반이었다.

어느 날, 고향집에 혼자 방문하게 됐다. ㅇㅇ이를 만날 수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날은 꼭 친구 집에 가보리라 마음먹었다. 이사 가지 않았다면 어머니라도 뵐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면 연락처라도 받아 꼭 만나 봐야지 했다.


차를 몰고 낯익은 그 동네로 갔다. 친구 집은 옛날 모습 그대로였으니 좀은 낡아 산뜻한 맛은 없어졌다.


"아주머니~~"

주춤거리며 대문 앞으로 다가갔다.


잠시 뒤 부엌문이 열리며 나오는 젊은 여인이 보였다. 순간 ㅇㅇ이 오빠가 결혼해서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나 하고 생각했다. 고개를 드는데 ㅇㅇ이었다.


"어~~ "

반갑긴 한데 놀라서 순간 아무 말 못 했다.


친구도 몇십 년 만이니 놀랄 것 같았으나, 집까지 찾아와 준 나를 반갑게 맞아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기대는 완전 어긋났고 나도 지혜롭게 처신하지 못했다.


친구는 아무 표정 없이 날 보며 아무 말 없다가

"왜?"


표정 없이 왜 왔느냐고 물으며 생뚱맞게 곧 연 문을 닫을 참이었다.


나는

"아니, 그냥 와 봤어."

"어, 그래?"


들어가 차 한 잔이라도, 아님 밖에서 이야기라도 해보고 싶은 게 내 맘이었다. 그러나 아무 반응 없는 상대를 보니 내 맘이 무색해졌다. 민망했다.


"으응~ 잘 있어!"

그리고는 뒤로 돌았다. 내가 도는 순간 친구도 문을 닫았다.


내 마음에 찬 바람이 쉬잉 불었다. 실망을 넘어 부끄럽고 또 다른 상처가 그어졌다.






내 그리움에 찾아간 친구, 서로 다른 감정이었음을 확인만 했다. 차 한잔 못하고 어색함만 느끼며 돌아왔다.


30대에도 40대에도 50대 중반까지도 난 성숙하지 못했다. 널 그리워했다는 감정 하나 만으로 친구가 반가워해주고 고마워해 줄 거라 생각한 것이다. 상대의 처지나 환경, 살아온 과정과 감정 등은 전혀 고려할 줄 몰랐다.


지금 생각하면 오히려 미안하고 부끄럽다. 그날의 실망감으로 친구를 잊어야 했다. 그리움과 또 다른 상처 속에 머물러 있고 싶지 않았다. 가족도 아닌 5학년 때 몇 달 친구였던 사람에게 말이다.


그러나, 그 후 다른 동창을 통해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가슴이 미어졌다. 나는 그리움에 대한 회포도 풀지 못한 채 그녀를 보냈고, 그녀는... 아마도 그런 그리움마저 사치라 생각하며 떠났을 수 있다. 그렇게 그녀는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표정에 감정이 없던 친구. 왜 없었을까?


친구는 늘 이름을 불러보고 싶은 인연이다.

"경옥아! 경옥아, 5학년 때 잠깐이었지만, 나는 널 몇 십 년째 가슴에 묻고 산다. 평안히 영면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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